[스페셜2]
[기획] 존재한 적 없는 사건을 상상하며, <나폴레옹>이 역사를 각색한 방식
2023-12-14
글 : 김철홍 (평론가)

영화와 역사는 떼놓을 수 없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충만한 역사적 사실에 영화 창작자와 관객들은 늘 매료되어왔다. 그러나 영화마다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적확한 고증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적극적인 각색을 통해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거장 리들리 스콧의 신작 <나폴레옹>은 후자에 가깝다. 위대하고 거대한 황제 나폴레옹의 모습을 강조했던 20세기의 영화들과 달리 인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촐한 면모를 새로이 발굴했다. 이에 김철홍 평론가가 리들리 스콧이 왜 이러한 방식을 택했는지 영화의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해온 감독의 연출론에 따라 분석했다. <나폴레옹>은 Apple TV+의 오리지널 영화다. 12월6일 국내 극장 개봉 이후, Apple TV+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그의 마르지 않는 야망의 원천은 대체 무엇일까. 어느새 자신의 28번째 장편영화 <나폴레옹>을 발표한 감독 리들리 스콧에 대한 얘기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심지어 매번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있는 스콧 감독이 이번엔 Apple TV+의 손을 잡았다. 최근작인 <하우스 오브 구찌>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그리고 <올 더 머니>까지 계속해서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이번엔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영화화하기에 이른다.

위 영화들의 주인공 파트리치아 레지아니(<하우스 오브 구찌>),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 그리(<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진 폴 게티(<올 더 머니>)와 나폴레옹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리들리 스콧은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들의 잘못을 만천하에 까발리고 단죄하는 단두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비주얼리스트 혹은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연출가이다.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볼만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자 하는 욕망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아티스트다. 여태 주인공 삼은 역사적 인물들의 화려한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세(<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와 콜럼버스(<1492 콜럼버스>), 그리고 로빈 후드(<로빈 후드>)까지 전부 소위 말해 각 분야의 ‘업계 최고’만을 다뤄왔던 스콧 입장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인물은 그의 감독 인생 중 절대 놓치기 싫은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아직 만들지 못한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폴레옹”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고 한다.)

리들리 스콧의 의도된 실패

영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 당시 대위였던 시기로부터 시작해 그의 죽음까지를 다룬다. 영화의 오프닝은 1793년 10월16일, 프랑스 파리의 혁명 광장(현재는 콩코드 광장으로 불린다)에서 시작된다. 그 날짜와 위치를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이제 곧 이 광장에 설치된 그 유명한 단두대에서 프랑스 왕국의 왕비인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이 조국을 망친 왕족의 참수를 열망하는 가운데, 이내 반전 없이 왕비의 몸으로부터 머리가 분리되고야 만다. 처형인이 그 머리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자 시민들은 광기에 가까운 환호성을 내지른다. 이 모든 광경을 제복을 입은 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모두가 광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에 급급한 이 순간, 오직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만이 이곳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본다. 혼란 속에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길을 찾아낸 사람, 이것이 프랑스 제1제국의 초대 황제인 나폴레옹 1세의 시작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앞서 묘사한 <나폴레옹>의 오프닝은 분명한 픽션이다. 이 영화는 11월 프랑스에서 개봉되자마자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을 받았었다. 그중 가장 큰 비판은 <나폴레옹>이 실제 나폴레옹의 생애를 철저히 고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몇몇 장면들이 언급되었는데 오프닝 신이 바로 그 첫 예시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모습을 당시 젊은 나폴레옹 대위가 실제로 목격한 역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리들리 스콧은 오프닝에서부터 벌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지금껏 그의 다른 영화들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 실패가 분명 감독의 의도된 결과물임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 계획된 실패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 영화는 나폴레옹을 널리 알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천명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첫 장면부터 당당히 사실과 다른 정보를 관객들에게 들이밀 이유가 없다. 아니 그 태도가 너무 뻔뻔해서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컨대 이건 “당신은 과연 나폴레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묻는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군의 앙숙이었던) 영국인의 도발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서두에서 언급했듯 리들리 스콧은 단지 나폴레옹을 ‘이렇게’ 묘사하는 게 영화적으로 더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임의의 정답을 정해놓은 채 <나폴레옹>를 관람하는 건, 분명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데 방해 요소가 될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나폴레옹의 과정’들

나폴레옹은 사망한 지 2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그에 관한 새로운 논의가 전개될 정도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면을 지녔던 인물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각본가 데이비드 스카파와 함께 그려낸 다소 코믹스럽고 어리바리한 모습의 나폴레옹 역시 그러하다. 그는 그의 인생을 뒤바꿀 결정적인 순간에 자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지만, 어찌 됐든 결과적으론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뚝딱뚝딱 만들어내고야 만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전투 신인 ‘툴롱 전투’ 신이 대표적이다. 전투 전, 기습하지 않고 당당히 승리하겠다고 동생에게 밝혔던 나폴레옹은 그날 밤 말을 뒤집는다. 영국군이 야간에 방심한 사이를 틈타 자신의 포병부대를 이끌고 요새 함락에 나선 것이다. 그는 작전을 지휘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떠는 모습을 보이더니 심지어 본격적인 진격을 하기도 전에 공격을 받아 낙마까지 한다. 이어지는 근접전에서도 영 시원찮게 행동하지만 그는 결국 요새를 탈환한 공을 인정받아 단숨에 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호아킨 피닉스의 둔탁한 육체로 표현된 나폴레옹의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좋든 싫든 나폴레옹의 유산을 물려받은 대다수 프랑스인에게는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아무리 그 뒤를 창대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관계없다. 결과는 원래부터 사실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과정이 그 결과까지를 오염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버전의 <나폴레옹>을 긍정적으로 볼지 부정적으로 볼지에 대한 판가름은 바로 이 부분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제공하는 ‘나폴레옹의 과정’들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로 말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영미권과 프랑스의 반응이 대체로 대조적인 것 또한 이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제핀과의 과정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준비한 ‘나폴레옹의 과정’ 속 또 하나의 주요 포인트는 바로 그의 연인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이다. 극 중 조제핀(버네사 커비)은 1794년 국민공회 의장이었던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공포정치가 막을 내린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공포정치의 여파로 남편을 잃고 감옥까지 갔다 온 다음 새 인생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때마침 나폴레옹의 눈에 들어 그와 인연을 맺게 된다. 영화엔 파리의 한 사교장에서 이뤄진 둘의 첫 만남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이때도 나폴레옹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상대방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조제핀에게 자신이 툴롱 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이렇듯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이 평생 사모했다고 알려진 조제핀이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 한번 세상이 알고 있는 나폴레옹의 위상을 재조정한다. 그러나 이 조정은 결코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황제가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건, 누군가에겐 분명 매력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기에 그렇다. 물론 역사에서 두 사람의 결과는 2세를 얻지 못한 것으로 말미암은 이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나폴레옹의 업적과는 정반대다. 나폴레옹은 일 적으론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사랑에 있어선 안타깝게도 결과가 좋지 못했다. 다만 그 과정만큼은 좋았다고, 영화는 말한다. 물론 <나폴레옹>이 보여준 러브 스토리의 결과물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적으론 추후 Apple TV+를 통해 공개 예정인 감독판 편집 버전에서 그 부분이 보완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게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영화가 둘의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소환한 수많은 러브레터가 현재까지 보관되어 증거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이 현대에 남긴 반박 불가능한 수많은 업적만큼 둘의 사랑을 믿을 수 있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마르지 않는 야망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에 뒤지지 않는 야망의 소유자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렇게 이번에도 또 한번 볼만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나폴레옹> 속 전투 장면들

<나폴레옹>은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의 영화인 만큼 전투 장면의 묘사가 단연 돋보인다. 감독은 특정 장면에선 최대 11대의 카메라까지 동시에 운용하는 방식으로 18~19세기 당시의 난잡하고 땀냄새 나는 전투의 생생함을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나폴레옹이 포병 장교였다는 특징을 살린 점을 주목할 만한데 전투마다 대포가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 전투 장면의 관전 포인트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각각의 전투마다 그 개성을 살려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전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전투들이기도 하다. 1805년 오스트리아-러시아 제국 연합을 상대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선 얼어붙은 호수 위의 전투를, 1815년 영국 연합군을 상대한 나폴레옹 황제의 최후의 전투인 워털루 전투에선 사각 형태로 밀집해 있는 방진을 공략하려는 프랑스군 기병의 안타까운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전투 장면은 아니지만 나폴레옹이 한때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그곳에서 도시가 불타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과 이집트 원정 중 대포로 피라미드를 쏘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참고로 피라미드에 대포를 쏘는 것 또한 실제 일어났던 일이 아닌, 리들리 스콧의 상상이 발휘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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