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올해의 시리즈 베스트5
2023-12-15
글 : 임수연

1위 <무빙>

“한국적 신파의 좋은 사례.”(이다혜) “스케일과 디테일의 훌륭한 조화.”(진명현) “비밀과 초능력의 서정성을 발명해낸 올해의 드라마.”(남지우) 디즈니+를 살린 구원투수로 평가받는 <무빙>이 필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올해의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역사와 정서 면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서사를 서양 히어로물과 결합”(박현주)한 <무빙>은 “할리우드 히어로 문법에 기생하지 않고”(남지우) “신기한 능력을 지녔지만 거창한 히어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을 위해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배동미)를 담았다. 이 스토리를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선도 악도 아닌 어중간한 인물이 아니라 명확한 선악 구도로 배치돼 안정감”(이자연)을 주었고, “한국 배우군의 깊이와 넓이를 재확인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 플레이”(남선우)를 통해 “앙상블 캐스트의 가장 성공한 사례”(남지우)를 남겼다. 그렇게 “대담한 구조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릭터의 관점을 통해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고 또다시 ‘움직이게’(moving) 한”(피어스 콘란) <무빙>은 “액션물, (청소년)로맨스물, 누아르, 첩보물, 히어로물 등 다양한 장르가 알맞게 배치”(오수경)된 종합 장르물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이 발명한 최고의 콘텐츠 IP는 남북분단임을 재증명하며 부모세대의 정서적 역사를 재해석”(남지우)한 냉전 드라마로서의 성취는 <무빙>의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빙>이 올해의 시리즈로 강력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역시 “신파, 히어로, 가족애, 첫사랑 등에 부과된 식상함의 오명을 벗기고 잘 다듬어진 전형의 저력으로 시청자를 감동”(김소미)시켰다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무빙>은 “관객을 사로잡을 요소들과 서사를 잘만 구성한다면 숏폼 시대에 맞지 않는 느린 호흡도 용인될 수 있고, 요즘 관객이 싫어한다던 신파도 여전히 유효타를 날릴 수 있음”(조현나)을 확인한 작품이다. “이제는 무가치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하는 캐릭터 빌드업에 시간을 들이며 모든 캐릭터가 자기 서사를 부여받은” (이유채) 점도 특기할 만하다. <무빙>은 “뿌린 씨앗은 반드시 추수하는 강풀 작가의 스타일은 확실한 보상을 주고, 인물들의 고양된 감정과 개인사 역시 반드시 다시 한번 연결되고 열매 맺는”(유선주) 구조를 취해 우려되는 단점을 상쇄하며 관객을 설득하는 노련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단연 “서사의 위기 시대에 이야기의 힘을, 인간성 상실 시대에 휴머니즘의 가치를 증명하여 우리 시대 서사의 위기가 곧 인간의 위기라는 진실을 일깨워준”(김선영)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위 <더 글로리>

“시청자는 물론 모든 매체가 주목”(이자연)하며 “학교 폭력에 대한 주의를 다시 환기할 만큼 사회적 여파가 컸던”(박현주) 작품의 주인공, <더 글로리>가 올해의 시리즈 2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을 휩쓴 <더 글로리> 열풍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캐릭터 이름과 명대사를 인지하게 만들고 나중엔 학교 폭력을 대체하는 대명사처럼 활용되는 진풍경”(이자연)을 만들어냈다. 특정 드라마가 이 정도 반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생물적인 카타르시스로 대중을 사로잡은 신명나는 복수극”(남지우)으로서 재미를 보장하면서 작가의 사유를 내밀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자신의 인생을 짓밟은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가장 오래된 소문’이 되기로 결심한 문동은(송혜교)이 교원 자격증을 따고, 바둑을 배우고, 스스로 흥신소가 되는 과정을 흡인력 있게 그리며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복수’”(복길)를 제시하지만 결국 “강인한 인내심과 성실한 노력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더 잃을 것도 없는 피해자의 ‘죽은 시간’에 불과”(복길)하다는 본질을 망각하지 않는다. “복수자의 사고체계를 거의 완전무결한 수준으로 건설”(남지우)하며 “복수의 카타르시스로도 재생시킬 수 없는 그 영구적인 상처를 비추며 가해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했고, 그와 동시에 피해자에게도 당연히 ‘내일’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과 희망을 암시”(복길)하는 사려를 보여준다. 그렇게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의 인장처럼 인식되던 “‘로맨스’와 ‘오글거리는 대사’를 걷어낸 자리에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연대, 존엄과 구원 등에 관한 묵직한 고민과 통찰”(오수경)을 채워 넣어 무거운 소재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진정성 어린 태도를 보여줬다. “이제 더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는 세상에서 이 처절하고 지독한 고백 앞에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은”(복길) 필력은 <시티홀> 이후 김은숙 작가의 기술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토록 흡인력 있는 김은숙의 뉴월드”(진명현)가 조성된 자리에 진입한 “더없이 놀라운 배우들의 매력 배틀”(진명현)은 “박성훈, 차주영, 정성일, 김건우, 김히어라 등 향후 주연급으로 성장할 것이 확실한 라이징 스타들을 대거 등장” (남지우)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가히 “좋은 대본, 좋은 연기, 좋은 연출”(이다혜) 삼박자가 어우러져 “김은숙 작가와 넷플릭스의 조합이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물”(오수경)이다.

3위 <사랑의 이해>

3위 <사랑의 이해>는 “배경 차가 남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조현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형편이 다른 네 사람의 연애 사건을 중심으로 동료, 가족, 친구 사이의 감정적 역사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사회파 로맨스”(남선우)다. “인물과 인물간의 작은 공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의 감정선에 골고루 같은 무게를 안배하는 작가의 기묘한 능력”(복길)은 <사랑의 이해>가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 밖에 수없이 존재하는 진짜 한국 남녀의 일과 사랑을 섬세하게 구현”(복길)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사랑투정과 계급투쟁의 유비와 대비를 치밀하게 묘사”(김성찬)하며 “조금의 스킵도 허락할 수 없는 섬세한 몰입도”(진명현)를 보여준 결과 “시청자마다 자신이 이입하는 캐릭터와 이유가 각기 다른”(조현나) 풍경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랑의 이해>는 “네 남녀의 울화가 치미는 멸렬한 연애를 통해 결혼과 사랑, 계급과 빈부의 함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고 소름 돋게 그려낸 역작”(정재현)이다. 때문에 <사랑의 이해>는 2003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 19년 만에 “‘사랑은 계급을 넘어설 수 있을까?’를 16부작 내내 끈질기게 탐구하는 한국 드라마”(정재현)로 정의되기도 한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직접 입으로 말하던 <발리에서 생긴 일>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사랑의 ‘조건’과 ‘자격’을 논하는”(복길) 이 작품은 “사랑과 돈, 가장 아름답고 추한 것들의 만나 마음이 금세 끓고 단숨에 식기를 반복”(이우빈)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며 “명실상부 2023년의 사랑법”(이우빈)을 탁월하게 보여줬다. 형식적으로는 <사랑의 이해>가 지닌 고전성을 주목하는 의견도 다수 등장했다. 빠른 전개가 선호되다 못해 숏폼으로 시리즈를 소비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답답하고 올드하다 말할 수 있는, 입을 떼기 위해 수십번 침을 삼키고 계속 뒷걸음질치다 겨우 한 발짝 떼는”(이유채) 전개를 보여줬지만 “이 시리즈만의 느릿한 호흡은 이해받고 사랑받기에 충분”(이유채)했다. “현대사회에 걸맞은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고전적인 멜로드라마 장르의 공식, 즉 계급을 넘어서 사랑이란 판타지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 미덕”(배동미)을 갖춘 <사랑의 이해>는 “언제나 동시대적으로 기능하는 주제”(남선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사랑 이야기가 귀해진 2023년, 사랑을 사랑만으로 지탱하기 힘든 세대의 초상이 여기 기록”(남선우)되어 있다.

4위 <연인>

4위 <연인>은 “사극의 탈역사화가 점점 심화하는 가운데, 여전히 사극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역사를 재해석해 현재에 맥락화하는 것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작품”(김선영)이다. “장현(남궁민)은 비혼주의자이자 여성의 선택과 결단을 존중하는 면모를 지녔고, 길채(안은진)는 전란의 상황에도 남자주인공의 도움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민폐 캐릭터로 전락하지 않는”(이자연) 등 동시대에 맞게 해석돼 안전하게 볼 수 있는 로맨스였다. 지금 한국 사회와 청년들에게 유효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대의’를 앞세워 억압과 차별을 공고히 하고 불필요한 혐오를 부추기는 세상에서 불온한 혁명을 꿈꾸는 청년 장현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에 저항하기 시작한 청년 길채의 모습” (복길)은 “역사가 제한하고 있는 시대적 한계를 현대적 가치로 극복”(복길)하게 만들었다. 또한 “백성과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며 내세우는 유교적 명분의 허위를 드러내고 왕으로도 아비로도 시대의 지성 역할도 변변치 못했던 가부장의 면면을 폭로”(유선주)한 점은 조선 시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토지>의 서희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투쟁과 생존이 삶의 목적인 사극 속 여성주인공”(정재현)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여성의 관점으로 재인식하게 하고 환란 가운데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살리고자 한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서 재구성”(오수경)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5위 <박하경 여행기>

“올해 가장 즐겁게 본 시리즈”(듀나), “올해의 드라마이자 올해의 숨구멍”(오수경). 5위 <박하경 여행기>는 “유난히 대자본이 투입된 작품, 무거운 주제를 품은 서사, 자극적인 화면이 넘실댔던 드라마 세계의 틈새로 빼꼼히 등장해 ‘힐링’을 담당했던 드라마”(오수경)였다. “초과로사회 한국을 가까스로 버티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일용할 위로”(김선영)를 담아 이 작품을 보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내딛는 적정 온도의 인간 박하경의 태도에 감화할 수 있는 드문 체험”(남선우)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여행을 다녀왔는데 인생이 급변하지 않는다”(이유채)는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이라면 느낄 법한 일상의 피로와 외로움, 사라지지 않는 절망과 슬픔의 단면을 사려 깊게 그려내며 자신을 돌볼 틈과 타인을 향한 이해와 존중의 공간을 넓혀주는”(오수경) 드문 성취를 거뒀다. “주말마다 일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의외의 시간을 만난다는 설정”(오수경)과 “에피소드당 25분의 미드폼 편성 등 드라마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전에 없던 것”(정재현)이라 형식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는 여자> 이후 마침내 배우 이나영을 걸출하게 활용한 최상급 사례”(정재현)이기에 “<박하경 여행기> 시즌2든 ‘박하경 학교 생활기’와 같은 스핀오프든”(이유채) 이나영 주연의 또 다른 후속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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