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명의 영화 평론가와 기자 그리고 TV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시리즈 부문 작가로 <더 글로리>의 김은숙이 호명됐다. <파리의 연인> 이후 20년간 김은숙는 “대중들이 대사를 곱씹게 만드는 말맛”(진명현)으로 “작가의 워터마크가 박힌 모든 대사를 신드롬으로 만드는”(남지우) 장기를 증명했다. <더 글로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시청자의 결핍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고드는 기교가 절정에 달하고”(김소미) “사회와 인간에 대해 품은 의문이 시리즈 전체에 잘 녹아든”(김송희) 진일보한 스토리를 선보이며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 이런 장르도 무척이나 잘하는 작가라는 것을 입증”(김송희)해냈다. 그렇게 “김은숙이 못 다루는 장르가 없으리라는 굳은 신뢰를 하게 만든”(이다혜) <더 글로리>는 그가 “명실상부 대중의 작가”(김소미)임을 확고히 한 작품이다. 차기작 대본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김은숙 작가가 <씨네21> 시리즈 결산을 기념한 만남에 응했다. <더 글로리>를 포함한 그의 전작을 돌아봤던 대화를 소상히 옮긴다.
- 우선 <씨네21> 기자,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린다. 이에 대한 소감은.
=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기분이 너무 좋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고 많은 질문들을 받게 될지 몰라서 조금 괴롭기도 하다. 저 지금 되게 신나요~. 인터뷰하면서 천천히 말라죽어볼까요? (웃음)
- “엄마, 내가 누군가를 죽도록 때리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더 글로리>의 출발점이 됐다고 알려진 딸의 질문은 이후 대본을 쓸 때 어떤 역할을 했나.
=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했기에 주인공 캐릭터를 팔로할 수 있었다. 문동은(송혜교) 혹은 자료 조사를 하며 읽었던 실제 학교 폭력 피해자가 진짜 내 딸이라고 가정하며 대본을 썼다. 어떤 신을 쓸 때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이때는 시원한 쾌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른바 ‘고구마’는 짧게 가고 빨리 반격하자는 등의 기준을 잡게 해줬다. 딸을 가진 엄마의 마음이 많이 들어가게 됐다.
- 어린 동은이 당했던 폭력이 ‘파트1’ 1회에서 충격적인 수위로 묘사된다.
= 폭력의 수위가 높을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감독님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방송에서 가능한 최대치의 수위로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시청자들이 대리로나마 느끼며 함께 분통해야 이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다. 더 중요했던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지 괴롭지만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카메라를 돌리지 않고, 소리로만 짐작하지 않게 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후에 드러난 실제 사례들이 훨씬 잔인해서 많이 놀랐다.
- 가해자 집단이 화려한 외모를 가진 부자들이라 자칫 이를 동경하는 시청자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럴 여지와 ‘싹’을 잘라버린 듯한 인상도 받았다.
= 그렇기도 했고 시청자들의 안목과 신념을 믿었다. 가해자들의 옷과 아파트, 그들이 몰고 다니는 차를 동경할 수는 있지만 가해 행위 자체를 동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만약 그들을 동경했다면 가해자의 대표자인 연진(임지연)의 결말까지 동경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결국 부와 권력을 선망하게끔 만든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더라. 좀더 세심하게 대본을 살폈어야 했나 생각했다.
- 남편과 딸은 <더 글로리>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 남편은 “원래 이렇게 욕을 잘했냐?”고 묻고 딸은 자신의 지분을 요구했다. (웃음) 내가 <더 글로리>를 쓸 때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게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에 더 기뻐한다. 사실 <더 글로리>는 잘 안될 거라고 생각하며 쓴 드라마였다. 처음 쓰는 장르물이고 내가 잘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사전 제작이다 보니 시청자 반응도 알 수 없고 말이다. 송혜교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지만 드라마를 재미로만 소비하는 분들에게는 재미가 없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내게도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국 시청자들이 드라마 보는 안목이 뛰어난 것 같다. (웃음)
- 좋은 드라마라는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썼던 <시티홀>은 작가주의가 아니냐는 공격까지 받은 적이 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로맨스 드라마는 대중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건드렸다고 비판받았다. ‘잘 만든 드라마’와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드라마’ 사이의 고민이 작가에게 늘 있었을 것 같은데 <더 글로리>를 쓸 때는 어땠나.
= 예전엔 밤 10시에 지상파 3사 드라마가 동시에 방영돼 시청률을 줄 세우고 성패가 결정됐다. 요즘은 드라마 성공 기준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시청층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더이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드라마는 나올 수 없다. 전체 시청률만 보는 게 아니라 2049 시청률을 살피고 4%에서 10% 정도만 나와도 성공했다고들 한다. <시티홀>은 정치에 대한 사심도 많이 들어갔던, 내가 무척 좋아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김은숙 이제 망했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작가주의’라는 표현을 돌려서 썼다. 사실 정답은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드라마를 잘 만들면 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시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 정말 재밌게 본 드라마를 다시 보면 어떤 가치가 편향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지 않나. 그래서 ‘재미’와 ‘의미’ 중 하나라도 얻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더 글로리>는 흥행과 상관없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였다. 결과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작 결과가 좋아서 연연하게 됐다. 사람 일은 모른다, 진짜. (웃음)
- ‘나 이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야. 보여줄게’ 하는 마음으로 집필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웃음)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작품 아닌가.
= 그렇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부지런히 글을 쓰지 않으면 계약을 다 털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을 써야 할까. 사실 TV드라마를 하면서 시청률을 받아 보는 일이 그간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OTT에서 작품을 하게 된 거다. 칼을 갈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나는 욕심껏 무언가를 잘해내서 계속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작가다. 한번 잘하면 그다음 것을 더 잘해내야 하는 상황에 많이 지쳐 있었다. 어차피 이제 망한 것 같은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욕심 없이 써보고 싶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플랫폼이라 오히려 부담을 버릴 수 있었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가려고 의식하다 보면 오히려 대본이 밋밋해진다. <더 글로리>는 사회적 이슈도 있었고 여러모로 운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게 봐준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가 매번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재미와 의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단연 드라마는 재미가 먼저다. 우리가 드라마 얘기를 할 때 “그 드라마 재미있지 않냐?”고 하지 “그 드라마 정말 의미 있지 않냐?”고는 안 하지 않나. 후배들에게도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라 수학이다. 섬세하게 계산해서 써야 한다”고 늘 얘기한다.
- 전세계에 동시 공개되고 몰아보기가 가능한 OTT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TV드라마 대본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었나.
= 없었다. 처음에는 넷플릭스에서 19금으로 찍을 수 있으니 더 높은 수위에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나눴는데 어쨌든 한국 시청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넷플릭스여도 한국 시청자가 가장 많이 봐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다시 작업했다. 다만 몰아보기가 가능하다 보니 모험적인 캐스팅을 할 수 있었다. 원래 각인되어 있지 않은 배우라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연배우들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었다. 하도영 역의 정성일씨가 그중 하나다. 그리고 직접 경험해보니 나와 넷플릭스가 잘 맞는다. 주 2회씩 방송되던 드라마는 짧게는 두달, 길게는 세달 동안 매주 평가를 받으며 작가가 소환되어야 한다. 20년 동안 그런 부담을 짊어지다 보니 많이 지쳤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한번에 비판이든 찬양이든 관심이 집중됐다가 다른 신작이 공개되면 소강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힐 수 있어서 너무 좋다.
- 과거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그리는 철칙을 묻자 “범법자가 주인공인 것은 싫다”고 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복수를 위해 법을 어기는 인물이 주인공이 됐다. 철칙을 어긴 이유는 무엇인가. (웃음)
= 내가 그때 어려서 한치 앞을 못 봤다. (웃음) 시대가 변하고 가치가 달라지면서 ‘안티 히어로’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어떤 인물을 범법자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 잘 설명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대중도 학습하게 된 거다. 지상파가 아닌 OTT로 간 데에는 <더 글로리>가 사적 복수를 다룬다는 이유도 있었다. 어쨌든 과거의 내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웃음)
- 가해자들은 과거의 잘못이 아닌 현재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다. 문동은의 복수는 다른 사람의 힘을 동반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반격하지만 여전히 이 드라마가 권력을 욕망한다고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 일단 가해자들은 현재의 잘못으로 벌을 받았다기보다는 반성하지 않고 삶의 태도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그런 결말을 맞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있던 악행이 현 시점에 터지게 된 것이다. 반대로 동은은 공장에서 만난 동료, 양호 선생님, 집주인 할머니, 현남(염혜란)과 그 딸, 그를 배신한 친구 경란까지 켜켜이 쌓여 있던 선의와 선행이 복수를 실현시켜준다. 착한 일 하면 복 받고 나쁜 일 하면 벌을 받는다는 심플한 권선징악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권력은 마당히 피해자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고,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여정(이도현)과 하도영의 도움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게 아니라 권력이 잘 쓰인 결과다. 사실 현실에서 문동은의 복수는 거의 불가능하다. 문동은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가해자들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글로리>를 쓰면서 이 작품이야말로 내가 쓴 가장 판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 <파리의 연인> 때부터 당신이 다뤘던 계급 이야기는 현실에서 불가능하기에 판타지로만 가능하다는 역설을 담고 있지 않나. <시크릿 가든> 17회 충격적인 엔딩이 떠오른다. 혼수상태에 빠진 길라임(하지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내어주기로 결심한 재벌 김주원(현빈)이 빗속으로 질주하지 않나.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은 육체를 내어주는 기적을 동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의미 아니겠나. 개인적으로 “여기서 드라마가 끝나면 <시크릿 가든>은 걸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 눈치 챈 분들도 많더라. 사실 <시크릿 가든>의 원래 엔딩은 그게 맞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파리의 연인2>냐면서 나를 뜯어 말렸다. 작가가 작업에 몰두하면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리뷰를 받았더니 모두가 안된다고, 지금 작가만 주인공을 죽이고 싶어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무책임한 엔딩을 내면 안 된다는 말에 나도 마음이 바뀌었다. 대중들은 함께 웃고 울고 응원했던 캐릭터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해피 엔딩을 썼다. 지금도 내가 결말을 바꾼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발리에서 생긴 일> 마지막 회 같지 않았을까. 계급과 구조는 결국 죽음이 아니고선 극복될 수 없다는 서늘한 엔딩이 됐겠지.
= 사실 나도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엔딩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 <파리의 연인>은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엔딩은 아니다. 신데렐라 판타지는 ‘꿈’에서나 가능하다는 냉소를 담고 싶었던 걸까 짐작했다.
= 그보다는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한 평행 세계를 설득해내지 못한 거였다. 어느 세계에 사는 강태영(김정은)과 한기주(박신양)는 행복하게 살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강태영와 한기주는 다시 또 만난다는 구상이었는데 그렇게 반발이 심할 줄 몰랐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이건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선택을 반성한다는 인터뷰까지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