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노량: 죽음의 바다’, 죽음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죽음을 택한 숭고의 딜레마
2023-12-20
글 : 임수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 혼란한 일본에서는 조명연합수군의 수세에 밀려 거듭 패배하던 왜군을 철병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사로병진 전략을 밀어붙이면서 조선에 남아 있는 왜군을 섬멸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이규형)는 명나라 군을 이끄는 진린(정재영)을 찾아가 이미 끝난 전쟁이니 더이상의 출혈을 막아야 하지 않느냐며 퇴로를 열어 달라 간곡히 요청한다. 한편 이순신(김윤석)은 막내아들을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아들은 물론 지난 7년간 죽어나간 병사들과 백성들을 떠올리며 전쟁을 이대로 끝내서는 안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진린이 고니시의 뇌물에 넘어가 퇴로를 열어주고 왜군 수장 시마즈(백윤식)가 고니시의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나서면서 오히려 조명연합수군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퇴각하려는 왜군과 이를 막아내 그들을 섬멸하려는 조선과 명이 노량해협에서 최후의 전투를 시작한다.

<명량>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이순신 3부작’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명량>이 12척의 조선 배가 330척의 왜군을 어떻게 무찌를 수 있었는지 민초의 호국정신에 주목했다면, <한산: 용의 출현>은 ‘거북선’으로 상징되는 이순신의 전술이 주는 쾌감을 향해 질주한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7년간의 전쟁이 개인과 국가에 어떤 의미였는지 차분히 돌아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영화다. 노량해전은 조명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잃었고, 그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전하며 고결한 리더십을 보여준 전투로 유명하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이 죽음을 불사하고 왜군을 섬멸하고자 한 뚝심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살핀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일본과 명나라, 조선의 정치·외교가 전쟁에 미친 영향을, 국가의 탐욕이 부른 폭력에 유린당한 백성의 비극을 알아야 한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명장의 지략과 전투, 무엇보다 승리의 쾌감에 집중했던 전작과 달리 장군의 신념을 이해하는 쪽을 선택한다. 해상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전개를 고집하며 이순신이 화친을 거부해야만 했던 이유를 납득해보고자 한다.

노량대첩은 임진왜란 7년 중 유일한 야간전이었다. 러닝타임 150여분 중 100여분에 할애한 해상전은 위장 공격과 화공, 백병전 등 인상적인 이미지로 확장되며 전투의 박진감을 전한다. 하지만 ‘이순신 3부작’의 마무리답게 단지 스펙터클에만 집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의 허무함과 비극성을 서정적으로 연출한 몇몇 시퀀스에서는 역사를 초월한 반전(反戰)의 메시지까지 느껴진다.

“장군께서 우리를 독려하고 계신다.”

이순신의 유언이 남긴 의미를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읽어내고자 한 장면.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을 현 시대에도 유효한 허구로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상적인 길잡이로서의 ‘대장별’을 제시한다.

CHECK POINT

<명량> 감독 김한민, 2013

‘이순신 3부작’ 중에서도 <노량: 죽음의 바다>과 짝패 같은 위치에 있는 작품은 2014년 여름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명량>이다. 12척의 조선 배가 330척의 왜군을 무찔렀던 기적은 각자 위치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내던진 백성들의 희생정신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백성을 폭력으로 유린한 전쟁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