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사랑은 낙엽을 타고’, 모던 타임즈에 응답하는 시린 영혼의 로맨스
2023-12-20
글 : 김소미

두 해고 노동자들이 헬싱키의 한 노래방에서 마주친다. 안사(알마 포이스티)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기다 해고되었고,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술을 마신 채 건설 현장에 나갔다가 잘린 상태다. 절제된 배경과 데드팬 코미디를 노련하게 구사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세계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한 남녀가 끝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제외하면 대체로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미장센은 동시대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알린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그 어둠과 균형을 맞추려는 듯, 회색 조의 영혼에 희망의 빛이 들어차는 순간을 향해 어느 때보다도 부단히 나아가는 로맨스영화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너무도 냉혹한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결국 사랑하는 일뿐이라는 사실을 유머처럼 던진다. 너무나 동화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감동시킨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나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것을 작품의 정수로 못 박는다. 짐 자무시의 SF 좀비 영화 <데드 돈 다이>를 데이트 무비로 선택하는 커플 위로 영화사의 훌륭한 동료들의 장막을 드리우는 거장의 솜씨 또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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