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거장의 어깨 옆에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2024-01-10
글 :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예술 작품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하게 하며 상반된 답들 사이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충실히 거장의 경전 구절에 복무한다. 그래서 모호하다. 음악 팬들은 브루노 발터의 대타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는 25살 레너드 번스타인(브래들리 쿠퍼)의 모습에 가슴이 뛰다가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같은 브로드웨이 하이라이트와 베를린장벽 붕괴 기념 음악회 등 중요한 순간이 축소된 영화를 당황스럽게 바라본다. 번스타인이 1973년 케임브리지 일리 대성당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말러 교향곡 2장 롱테이크 신 정도를 제외하면 클래식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기는 장면은 거의 없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연극 혹은 뮤지컬처럼 느껴진다. 극의 주인공은 번스타인 혼자가 아니다. 번스타인과 그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캐리 멀리건)의 부부 관계가 핵심이다. 매튜 리바티크가 촬영하고 미셸 테소로가 편집한 결과다. 화면 전환은 화려하고 시간 전환은 비선형적이며 배우들의 연기는 고양되어 있다. 흑백 화면과 박스 화면비율로 펼쳐지는 과거 신은 뉴욕의 좁은 아파트와 운명의 상대 펠리시아와의 첫 만남, 뮤지컬 <온 더 타운> 속 한 장면을 빌려 소개하는 로맨스로 장식된 거장의 젊은 날이다. 실제 번스타인은 이 시기 뉴욕 필하모닉 지휘 이후 찾아온 꽤 긴 무명의 시기를 견뎌야 했지만, 영화는 그런 갈등보다 펠리시아와의 행복한 한때와 대가의 편린, 그 와중에도 동성 애인에게 눈물 어린 이별을 고하는 번스타인의 복잡한 자아를 조명한다.

“개성이 너무 강하다 보면 독이 될 수도 있거든. 레니가 기뻐하거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면 못 맞춰줄 것도 없잖아? 대신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거야. 희생하게 되면 내가 사라지니까.” 바로 이다음 장면에서 펠리시아는 두려움과 경외감의 눈빛으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하는 번스타인의 그림자에 삼켜진다. 그런데 대가의 실루엣 가운데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펠리시아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힘찬 날갯짓에도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번스타인으로 인해 상처받는 펠리시아가 역으로 번스타인의 삶을 구원하며 그를 견인하는 인물임을 짐작게 하는 장면이다. <스타 이즈 본>의 잭슨 메인은 저물어가는 컨트리 가수로 그를 사랑하는 엘리에게 모든 것을 바쳤으나, 레너드 번스타인과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의 실제 삶은 할리우드의 고전 시나리오보다 훨씬 복잡했다.

테크니컬러 화면으로 전환되며 색이 돌아온다. 반대로 생동감은 꺼진다. 펠리시아와의 관계가 번스타인의 이중성으로 흔들린다. 희생하는 관계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극의 진행은 더없이 차분하다. 대저택 파티에서 번스타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젊은 남자에게 키스하는 광경을 목격한 펠리시아는 변명하는 남편에게 “머리 모양 좀 고쳐”라 말할 뿐이다.

펠리시아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의 동등한 주인공이다. 실제로도 그는 1940년대부터 브로드웨이, 극장, 텔레비전을 섭렵한 스타였으며 여성 인권 운동과 흑표범당을 후원하는 등 사회 활동에 열정적이던 스타였다. 번스타인이 1950년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CBS 음악 시리즈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때도 펠리시아는 파티를 통해 미국의 저명인사들과 만나고 서신을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나갔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펠리시아의 사회적 활동을 소개하는 대신 그를 번스타인의 곁에서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파트너로 설정했다. 번스타인의 갈등과 비범한 성격을 평가하는 대신 가장 오래 곁에서 그를 지켜본 인물로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번스타인의 동생과, 번스타인의 딸과, 번스타인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번스타인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영화 속 펠리시아가 번스타인을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흑백 화면 속 좁은 연극 연습 무대 위 두 사람은 서로를 동경한다. 초현실적인 <온 더 타운> 뮤지컬 신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끝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고백하는 번스타인에게 펠리시아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번스타인의 양성애 성향을 묵인하고 갈등하는 컬러 화면에서 펠리시아는 번스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애초에 번스타인이 바빠 만날 일도 많지 않은 데다 중요한 대화는 자녀들을 통해 전한다. 번스타인이 거대한 대서사시 <미사>를 완성하는 순간에 펠리시아는 수영장에 몸을 던져 깊이 잠수해 귀를 막는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스타 이즈 본>으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이룬 브래들리 쿠퍼와 전기영화 전문 작가 조시 싱어가 각본을 썼다. 조시 싱어 전기영화의 주인공은 사회와 갈등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며 도전하는 인물이 주를 이룬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 팀은 지역사회와 종교 역사에 뿌리 깊이 내린 악을 고발하는 언론 자유와 기자 정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베트남전쟁의 추악한 비리가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손에 쥔 <워싱턴 포스트> 신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리프)은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1960년대 미국 사회의 고정된 성 역할을 깨트리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평생 다시 하지 못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퍼스트맨>의 닐 암스트롱은 숱한 정치적 회의론과 동료를 잃는 슬픔,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했던 제미니 우주선 탐사를 극복하고 달에 착륙하여 인류에게 위대한 도약을 선사한다.레너드 번스타인은 어떨까. 그는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미국 사회에서 당당한 공산주의자였고 양성애 성향을 숨기지 않았으며 펠리시아 역시 사회적 투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예술인이었다. 단 하나의 대사건과 업적으로는 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믿기 힘든 경력의 탑을 다방면에 쌓아올린 거장이었다. 번스타인은 시뻘건 용광로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천재적인 창작의 결과물을 제련해냈다.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살았던 그에게 절제와 고민, 갈등은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이상적 가정을 형성하고 이성애에 충실하여 아내를 보살폈으며 가정을 홀대하지 않았다. 펠리시아는 번스타인에게 상처받았지만, 그의 비범함에 경의를 표했다. 아이러니하다. 상반된 답을 준다.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이 파토스의 영역을 극으로 옮기는 데 탁월한 인물이 브래들리 쿠퍼다. <스타 이즈 본>에서 자기 파괴적이고 늙은 컨트리 가수 잭슨 메인을 연기하기 위해 1년 이상 음악을 배워 고유의 보컬 톤까지 개발한 그는 번스타인의 삶을 위해 지휘자 야니크 네제새갱에게 교습을 받고 가즈 히로에게 6시간 이상의 분장을 받아 20세기의 문제적 인물을 완벽히 소화했다.

마침내 둘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펠리시아는 “당신의 진심은 새빨간 거짓말이야. 생기란 생기는 다 빨아들여서 남은 사람조차도 자기 본모습을 지키고 살 수가 없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사랑하고 인정하다 보면 그래”라며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번스타인의 성스러운 말러 교향곡 2장 성당 지휘를 지켜본 펠리시아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혼신의 지휘를 펼치고 땀범벅이 되어 돌아온 그를 끌어안고 감격한다. 강력한 예술의 최면이자 불가사의한 사랑의 힘이며, 논리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망각의 영역이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그래서 혼란스럽고도 아름다운 레너드 번스타인의 전기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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