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를 한번 보고 쓴 글이다. <노량>을 다시 보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러지는 않을 작정이다. <노량>이 전쟁영화라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전쟁영화를 여러 번 관람한다는 것은 전쟁영화광이 아니라면 고문에 가깝다. 영화평론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견뎌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부디 없기를 바란다. 있다면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곧 크리스마스가 아닌가(이 글은 크리스마스 이후 공개되겠지만, 내가 이 글을 쓰면서 크리스마스를 지났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평론가라면 모름지기 <노량>보다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 관해 쓰고 싶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참모총장의 거듭되는 부탁에 원치 않던 수도경비사령관 직을 수용한 이태신(<서울의 봄>)이라도 된 듯 짐짓 결연한 자세로 말이다. <노량>은 비평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시작한 이유도 단지 쓰지 않을 결심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장면과 저 장면이 뒤섞이더니, 종국에는 흐릿한 잔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파괴되어버렸다. 그냥 거기에서 끝장나버린 영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영화, 그렇게 느꼈다. 이 지면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쓸 수 없음을 증명하는 글을 마구잡이로 써내려가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피어올라 제법 꼴을 갖춘 글이 되고 있었다. 이미 다들 눈치챘겠지만, 그다지 비평 같지는 않은 형태로….
오래된 미래
<노량>은 전쟁영화다. 당연한 사실을 되짚는 이유는 이순신 영화와 전쟁영화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순신은 전쟁 영웅이며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늘 전쟁보다 크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죽음을 불러오는데, 그 죽음은 그저 이순신의 고뇌와 지략을 위해 활용되거나 잊힌다. 그러나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과 전쟁영화를 양립하고 싶어 한다. 이순신이 전쟁 영웅이기보다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는 이순신을 지금 여기 되살리는 영화의 명분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전쟁에 연루된 자이지만 전쟁에 비관적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더 큰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큰 그림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이때 미래는 오늘날 관객을 호명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으나, 1598년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의 미래는 그보다 넓다. 이를테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역시 영화 내부의 시점에서는 미래다. 굳이 한국전쟁을 언급하는 이유는 전쟁에 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실은 최근 한국전쟁을 다룬 50, 60년대 영화 4편을 몰아 본 탓이 크다. <자유전선> <피아골> <주검의 상자> <5인의 해병>까지 네편의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제2회 나도! 비디오 에세이스트’ 영상비평 공모전에서 비평 대상작으로 선정한 작품이다. 사운드가 유실되면서 의도치 않은 무성의 축복을 받은 <주검의 상자>를 논외로 하면 대부분 ‘자유’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내세운 철저한 ‘반공’ 사상 교육 영화다. 우리 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한편, 공산주의에 물든 적군의 위악성과 폭력성을 강조한다. 영화를 통해 부르짖는 ‘자유’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상에 복종한 이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당대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창구로서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명량> <한산: 용의 출현>과 비교해 <노량>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조선군과 왜군 사이의 대결 구도가 명을 포함한 삼국 수장이 얽힌 관계로 다변화된 점이다. 적군과 아군의 명징한 구도 대신 협상에 의한 지정학적 외교 관계가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왜군과 명나라 군대 사이,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 사이의 번역을 통과한 대화와 설득이 빈번히 묘사된다.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을 필두로, 왜군 시마즈 요시히로를 연기한 백윤식,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 역의 정재영과 부도독 등자룡 역의 허준호까지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열연한다는 사실 역시 영화가 삼국의 균형을 향하고 있음을 보증한다. 한국 배우가 일본인이나 중국인 등 외국인을 연기하는 경우는 자주 있으니, 여기에 연출적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노량해전과 한국전쟁을 나란히 놓아볼 때, 표면상 삼국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해도 다른 사상을 지닌 민족의 분열상을 은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노량>이 전투의 쾌감보다는 상실을 돌아보는 데 상당 부분 초점을 맞춘다는 것 역시 이러한 감상을 부추긴다.
앞서 언급한 한국전쟁 관련 네 작품 중 <피아골>은 빨치산 집단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보아도 파격적인 작품이다. 영화가 반공을 그리는 방식은 빨치산 집단을 분열하고 내파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간과 살인, 배신자 숙청 등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로 인해 빨치산은 스스로 몰락한다. 빨치산의 손에서 탄생한 위장 폭탄이 결국 빨치산 비밀 기지를 폭발하는 데 쓰이고 만 아이러니를 그린 <주검의 상자>는 그런 의미에서 당시 전쟁영화가 빨치산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명징한 요약이다. 빨치산과 우리 군 사이의 전투가 전면화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의 논리상 빨치산은 우리 군을 초토화하는 괴물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빨치산은 우리보다 사악하되, 나약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 군은 선하면서도 빨치산보다 강해야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가해자 편에 설 순 없기에 강함과 약함은 각각의 구역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제약된다.
사악함에 필연적으로 달라붙는 강함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적군 묘사의 불균질함은 미군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미군과 우리 군의 관계가 비교적 선명히 드러난 <자유전선>에서 전투에 지친 군인들은 미군의 도움을 기다린다. 우리 군의 군사력이 열등한 탓이 아니라 그저 계속되는 전쟁에 지쳤음이 강조된다. 결코 우리 군을 해쳐서는 안되는 적군은 대신 마을에 남은 노인과 장애인, 여성 등 약자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스크린 너머의 공분을 불러오는 역할을 도맡는다. 여성들은 공산주의에 물든 적의 비겁함을 강조하는 역할과 함께 미군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상호 원조 관계를 심리적으로 실현하는 균형추 노릇을 한다.
한편 빨치산에 대한 잔혹한 묘사는 우리 군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어볼 여지가 있다. 우리 군을 대놓고 비판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아마도 여전히) 불가능했(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흠집만으로 누군가를 매장하거나 살해할 수도 있는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기에, 누군가의 이미지를 완벽히 빚어내려는 욕망을 탓할 수만은 없다. 대신 반대편으로 몽땅 내던져진 사악함이나 잔혹함, 비겁함 역시 모두 우리 안에 내포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 김윤석과 여진구, 그리고…
<노량>이 아버지와 아들의 영화라는 점은 전쟁영화라는 정의만큼이나 자명하다. 특히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들과 <노량>을 나란히 두고 볼 때 아버지와 아들 서사는 하나의 ‘이즘’이라 할 만하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영화가 내세워온 ‘자유’와 ‘반공’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낡은 대의가 여전히 유령처럼 떠도는 상황은 논외로 하자) 가족주의만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고 해야 할까. 가족은 특수하고 폐쇄적인 군인의 사연이 시대를 건너 관객에게 가닿기 위한 일종의 번역기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중 <5인의 해병>은 다른 작품들보다 6년의 격차가 있다.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가족이 강조된 점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가족의 사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병사 각각의 사연이 편지와 회상의 형식으로 드러나며, 그 대상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 아내 혹은 연인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연은 함께 전선에 참여한 부자의 사연이다. 중령인 아버지가 형과 자신을 차별했다는 원망을 지니고 있었던 소위는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 오해를 풀고 아버지와 화해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아 돌아올 것을 명하지만, 소위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고 만다. 둘의 사연은 영화의 핵심 파토스를 만든다.
하지만 50년대 영화와 오늘의 영화를 번갈아 볼 때, 가족주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진짜 아버지와 아들을 마주하게 된다. <노량>에서 등자룡을 연기한 허준호의 아버지인 배우 허장강은 <피아골>에서 빨치산을 연기했다. 허장강이 연기한 만수는 영화에서 가장 사악한 캐릭터다. 그는 부상한 동료를 강간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른 동료를 무참히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뒤 불명예스럽게 죽는다. 반면 등자룡을 연기한 허준호는 하얗게 센 수염을 빛내며 용감하게 칼을 휘두르다 적의 칼에 부끄러움 없이 죽는다. 허준호와 허장강의 실제 혈연관계에 기초해 다시 허구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허준호의 연기는 대를 이은 소망의 실현으로도 읽힌다. 당시의 아버지보다 늙어버린 배우는 시대를 거슬러 조선군과 협력한 명나라 군을 연기하면서 배신과 파국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명예로운 방식으로 되갚는다.
하지만 <피아골>과 이순신 사이에는 다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피아골>에서 고뇌하는 빨치산을 연기하며 데뷔한 배우 김진규는 몇편의 전쟁영화를 거친 뒤 <성웅 이순신>(1971)과 <난중일기>(1977)에서 이순신을 연기했다. 그는 제작비로 자산을 탕진할 정도로 이순신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 데 매달렸다. 여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저 계속되는 실패가 도리어 목표를 만들었던 것 같다. 이순신의 영화화가 곧 한국영화계의 숙원이라고까지 이야기된 상황은 단순히 민족주의라고 치부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감흥을 남긴다. 김진규가 참여한 두 영화는 모두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 실패로 기록되었고, <난중일기>가 그나마 호의적인 평을 얻었다는 것이 씁쓸한 위안이 되었을 뿐이다. 이순신 영화의 성공과 시리즈의 안착은 어느 죽은 배우가 온전히 보지 못한 미래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노량>의 이순신에게 미래는 곧 막내아들 이면(여진구)이다. 설사 그 미래가 아비보다 일찍 죽어버렸다 해도 말이다. 이면은 이순신의 꿈속에 등장해 적에게 칼을 맞고 죽어간다. 사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해도, 이순신의 죽은 아들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강조한 연출은 전체 시리즈의 맥락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순신의 이면에 대한 애도와 미안한 감정이 전쟁영화로서 <노량>이 내세우는 대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이해한다 해도 말이다.
여기에서 논의의 초점을 이순신과 이면에서 부자 관계를 연기한 두 배우로 옮겨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배우 김윤석과 여진구는 <노량> 외에도 세 작품을 함께했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와 <1987>, 그리고 <타짜-신의 손>이다. 이중 두 사람이 유사 부자 관계를 연기한 <화이>가 적절한 비교 대상일 테지만, 함께 보기를 제안하고 싶은 작품은 적대 관계를 연기했던 <1987>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다룬 실화 소재의 <1987>에서 김윤석은 공권력의 핵심인 박 처장을, 여진구는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박종철을 연기했다. 박종철이 가혹한 물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박 처장은 증거를 인멸할 것을 지시하며 그를 두번 죽인다.
<노량>에서 이순신과 이면의 관계는 생략적으로 묘사되기에 이런저런 덧붙임을 허용한다. 그렇기에 이순신이 아들 이면에게 애통함과 미안함을 드러내는 순간이 <1987>에서 박 처장이 박종철에게 못한 사과를 여기에서 대신하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순신과 이면의 관계는 이입이 가능한 플래시백 속 일화로 고정되는 대신, 이순신이 꾸는 꿈속의 환상 장면으로 유폐된다. 이 때문에 이면의 죽음은 이순신 개인의 상실이 아니라 상징적인 죽음이 된다. 꿈속에서 이면과 함께 등장하는 장소는 얕은 계곡이다. 반쯤 물에 박힌 채 눈을 뜬 이면의 얼굴은 무언가를 호소한다. 꿈속의 물은 이면이 임진왜란 중에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배우의 관계가 가리키는 또 다른 영화를 염두에 둘 때 물은 어느 대학생을 죽인 폐쇄된 욕조에 담긴 더럽고 축축한 물이라 상상할 수 있다. 거대한 해전을 구현한 CGI의 물은, 꿈속에서 이면이 죽어가던 얕은 계곡이 되었다가, 인간을 고문할 때 쓰인 검은 물로 번역된다. 노량이 죽음의 바다라면, 그 바다는 이순신 혹은 임진왜란으로 죽어간 많은 이들보다 더 많은 죽음을 품어야만 한다.
욕망과 강박의 북소리
<노량>에서 해전의 스펙터클을 압도하는 것은 이순신의 북소리다. 북채는 이순신이 휘두르는 최후의 칼이고, 북소리는 적을 제압하는 포탄과도 같다. 북소리는 다른 언어 사이 통역을 필요로 하는 영화에서 통역이 필요치 않은 거의 유일한 소리이다. 북소리는 조선의 해군만이 아니라 왜군이나 명나라 군대에도 가닿아 영향을 끼친다. 물론 그 소리는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통역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북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 처음 북소리의 울림을 느꼈을 때 그 소리가 전쟁 중단을 요청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싸우던 이들 역시 동작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곧이어 통역이 이어지면서 소리의 의미는 교정된다. ‘장군님이 우리를 독려하신다!’ 군인들은 외치며 남은 힘을 쥐어짠다. 그렇다면 전투를 고취하기 위한 소리를 종전의 소리라고 오해한 것에 불과할까. 마냥 오해만은 아닌 건 그 소리가 이순신이 존재함을 드러내며 적군에게 보내는 경고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을 친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 행위다. 같은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전투의 무망함을 알릴 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투력을 고취한다. 다르게 읽힌다는 것은 그것이 예술임을 증명한다. 북소리는 자동기계적인 전쟁의 이미지가 휩쓸고 난 뒤에 등장하는 반전의 사운드다. ‘이순신 3부작’에도 자주 보이는 전쟁영화의 상투적 편집은 “발포하라!”라는 외침과 발포의 간격을 가능한 한 좁히는 것이다. 명령과 동시에 실행이 이뤄지는 마술 같은 트릭은 전쟁이 생각을 허용하지 않음을 체험케 한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홀로 생각이라는 거대한 물음표를 떠안으며 존재한다.
북 치는 이순신의 이미지는 전쟁의 종결과 투쟁 의식의 고취라는 이중의 의미와 이순신의 죽음을 극화하는 장대한 피날레를 각인한다. 여기에는 영화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여줄 것, 그러나 여기에 도취했다는 인상을 주지 말 것. 이것은 세련된 예술적 방식으로 치장된 오늘날의 욕망이다. 전투력은 충만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옳아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욕망에 가깝다. 이러한 욕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한 뒤 승리한 쪽에 옳다는 푯말을 박아 넣으려는 비뚤어진 세계를 낳았다. 우리가 시리즈와 함께 떠나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마저 속인 반(半)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