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이후 4년 만의 연출작이다. 어느덧 88살의 노장이 된 켄 로치 감독은 신작 <나의 올드 오크>에서 영국 북동부의 한 폐광촌으로 시선을 옮겨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래된 술집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는 갑작스레 이곳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을 배척하지 않는 몇 안되는 주민 중 한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켄 로치 감독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자신의 신념을 이번에도 올곧게 지킨다. 거장의 마지막 연출작이라 알려진 <나의 올드 오크>를 기반으로 60여년간 구축된 켄 로치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았다.
“예전엔 이 동네에 탄광이 있었어”라는 대사를 내뱉으며 TJ는 펍의 안쪽 문을 연다. 열쇠로 꽉 잠긴 그 방은 거의 20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그곳의 벽에는 “폐광은 죽음이다”라는 내용의 액자들이 잔뜩 걸려 있다. 야라(에블라 마리)에게 TJ는 이 흑백사진들은 모두 1980년대 중반에 그의 삼촌이 직접 찍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88살의 켄 로치가 만든, 아마도 그의 마지막이 될 영화 <나의 올드 오크>(2023)에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특유의 직설화법이 그대로 묻어 있다. 사진을 매개로 낙후된 영국 북부의 마을에서 인물들이 만난다. 먼저 TJ는 석탄 산업의 쇠퇴로 인해 가족들과 흩어져 사는 인물로, 그가 사는 곳에 시리아 난민들이 유입된다. 그중에 야라가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카메라를 들고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전쟁으로부터 도망친 약자를 대표하는 야라의 상황을 TJ가 도우면서 두 그룹이 소통한다. 다소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상황의 대치를 통해 영화는 묻는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겠냐고. 이 영화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켄 로치가 이전에 만든 무수한 영화들과 맞닿아 있다.
사실주의가 강조된 켄 로치의 미학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그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63년
TV영화가 아니라 공식적인 장편영화 데뷔는 <불쌍한 암소>(1967)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영화는 장차 켄 로치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현실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리고 1970년 <케스>(1969)로 그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받는다. <케스>는 매를 길들이면서 힘든 일상을 잊으려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로, 이 두 번째 장편영화가 영국의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이후 본격적으로 <가족 생활>(1971)을 통해 그는 해외에서도 유명해진다. 당시 <가족 생활>은 단순한 사회학적 가치를 넘어 일종의 로베르토 로셀리니적 연출법으로 조명받는다. 형식적으로는 ‘일반 다큐멘터리’의 방식을 차용하지만, 인터뷰를 병치해서 ‘시네마베리테’ 기법을 활용하며, 문제의 본질을 폭로하기 위해 TV영화의 ‘픽션’ 방식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구성적 독창성을 보인다. 동시에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대상을 뒤쫓지 않는다는 특징도 지닌다.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감독은 철저히 사건을 방치한다. 액션 자체보다 이후의 해설이 더 중요한 영화, 담론 중심의 리얼리즘이 그렇게 시작된다.
켄 로치의 영화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소재를 반사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것이 1970년대 켄 로치가 이룩한 미학의 본질이다. 실상 이 방식은 일찍이 로셀리니가 설명한 ‘현실의 촬영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대중을 유혹하고 싶지도 않고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제안하고 싶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이다.” 로셀리니의 전통적인 리얼리즘 코드가 켄 로치의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영화에서 관객들은 상황과 등장인물의 논리가 끝날 때까지 그저 지켜만 본다. 오락영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프로파간다의 방식은 더더욱 아니다. 이처럼 미장센이 아닌 카메라의 앞에 놓인 그대로가 중요해지는 사실주의를 일컬어 질 들뢰즈는 “이건 투시적 영화이지, 더이상 액션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사회적 사실주의라고 정리되는 이러한 창작법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감금’의 상황을 겨냥한다. 켄 로치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오직 상황 내에서만 고통받는다. 그리고 상황의 바깥으로 결코 탈출하지 못한다. 행정적 시스템에 따른 사회의 비밀스런 사실성은 매우 단단하게 인물을 감싸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극이 전개되는지 혹은 구성되는지가 아니라, 인물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중심으로 관찰해야 한다. 심지어 켄 로치는 “정부가 사람들을 빈곤에 빠뜨리려는 고의적인 잔인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반복된 형식을 통해 드러낸 메시지
이번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서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84년은 마거릿 대처의 집권기이다. 사실상 켄 로치는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마거릿 대처의 반사회적 정책에 반대한다. “1960년대까지 사람들은 낙관적이었다. 급여는 낮았지만 안전이 보장되었고, 직업을 가진 이들이 모두 생계를 꾸릴 수 있던 시대였다.” 그는 그 시대를 대처가 망쳤다고 주장한다. 사실 켄 로치와 마거릿 대처는 둘 다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이고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로치가 보기에 대처는 철저하게 특권층 지향적이었다. 2016년 프랑스 일간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대처의 시대를 포격했다. “가장 나쁜 점은 대처의 이념에 독창성이 없다는 것이다. 시카고학파의 이론을 유럽으로 수입한 것뿐이다. 1970년대 이미 실패한 자본주의 형태를 1980년대에 되살렸고, 기업간 경쟁에서 비용 때문에 직원 수를 줄이고 실업률을 높이는 것을 방치했다.” 대처식 자유주의경제 정책의 폐해는 영화 <하층민들>(1990)과 <레이닝 스톤>(1993)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살기 위해 인물은 저임금으로 착취당하거나 사회적 불의에 희생당한다. <뉴욕타임스>의 소개처럼 켄 로치는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영화 제작자’이다.
그가 국제 무대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아일랜드 분쟁이나 스페인 내전, 니카라과의 사회주의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 메시지만큼 미학적으로도 크게 인정받는다. 그 결과가 칸영화제 수상으로 이어진다. <숨겨진 안건>(1990)과 <레이닝 스톤>이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내 이름은 조>(1998)는 남우주연상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가 다시 한번 심사위원상을,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가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그에게 안겼다.
간혹 그의 영화가 너무 심심하다고 투덜대는 관객을 발견한다. 주제가 겹치지 않더라도 영화적 형식이 반복되는 것을 피로해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번 영화 <나의 올드 오크>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빈곤의 희생양들이 영화 중심에 등장하고, 이후 그 인물들이 도망칠 방법이 없어지며 갈등이 심화된다. 결국 시스템의 반복이다. 사회의 방치로 유발되는 상황, 하지만 영화는 그 원인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으로 훼손된 어떤 삶의 일부를 묘사할 따름이다. 서사의 중심에 인간성과 개인을 배치한 뒤, 영화는 모든 관심을 일부의 현실로만 따돌린다. 그렇게 사회적 문제를 타파할 방법은 오직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무자비한 자유주의에 짓밟힌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기존 시스템보다 더 강해지는 것, 이 방법뿐이다. 영화 초반부에 드러나는 사진 속 ‘더럼 광부 축제’는 영화의 말미에 ‘용기 연대 저항’으로 변신한다.
생각을 공유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영화, 대신 그 속에는 뜨거운 진정성이 담겨 있다. 켄 로치가 형식적인 반복을 회피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모든 갈등의 근원을 동일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태도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 속 잉글랜드 북부의 소외된 주민들과 시리아 전쟁에서 탈출한 난민들은 모두 고통받는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질서를 들추어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극의 순간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 순간들이 매우 평범해 보인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무명 배우를 유명 배우로
진정성을 연출하기 위해 켄 로치는 비전문 배우들을 선호한다.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인생을 산 사람들을 캐스팅한다. <나의 올드 오크>의 주인공 데이브 터너(사진)는 약 30년간 소방관으로 일했고, 잉글랜드 더럼의 펍에서 근무했다.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오디션을 보았고, 이후 <미안해요, 리키>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으며, 이번에는 주연배우가 됐다.
조연급 배우가 켄 로치의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로버트 칼라일은 <하층민들>을 통해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했고, 피터 뮬란 역시 같은 작품으로 활동한 뒤 <내 이름은 조>의 주연이 됐다. 이 작품으로 그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배우 경력이 있는 축구선수 에릭 칸토나는 <에릭을 찾아서>(2009)에서 본인 역할로 등장한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배우로 활동한다. 켄 로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단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킬리언 머피다. 사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배트맨 비긴즈>(2005)인데, 켄 로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의 캐스팅 조건은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일 것’ 단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