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새 집행위원장이 지명됐다. 지난해 12월12일 독일 문화부 장관 클라우디아 로트는 베를린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절대 적임자”라며 미국 출신의 트리시아 터틀을 새 집행위원장으로 소개했다. 트리시아 터틀은 2025년부터 베를린영화제를 이끌게 된다. 이로써 2024년 베를린영화제는 2인 공동집행위원장인 마리에테 리센벡과 카를로 카트리안의 마지막 무대라는 게 기정사실화됐다. 그렇다면 신임집행위원장 터틀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미국 노스캐롤리아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지난 25년 동안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영국 필름아카데미에 몸담았으며 영국 퀴어영화제에서도 활약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런던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치른 경력이 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미국영화계와의 두터운 네트워크가 터틀이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뽑힌 데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새 집행위원장이 할리우드의 화려함을 베를린영화제에 옮겨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터틀은 영화산업계 스폰서링 및 마케팅 부문과 영화 프로그래밍 등 총 두 부문의 과중한 자리를 기꺼이 떠맡았다. 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창 발전 중인 흥미로운 독일영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화려하고 정치적이고 도발적인 베를린영화제를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베를린영화제는 최근 예산 축소와 차기 집행위원장의 공석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있지만 공석이 채워지니 관계자들은 한시름 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클라우디아 로트는 기존 예술부문 집행위원장인 카를로 카트리안과는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클라우디아 로트가 베를린집행위원장 1인 체제로 바꾸면서 지금까지 경영부문과 동등한 관계에 있던 예술부문 집행위원장은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카트리안은 지난해 1인 체제에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의를 베를린영화제 홈페이지에 표명한 바 있다. 그 후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롯해 크리스티안 페촐트 등 영화인 400여명이 클라우디아 로트의 처사를 “비도덕적”이라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베를린영화제를 향한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베를린영화제가 2월15일로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와 전쟁의 불황을 지나온 두명의 집행위원장의 시대는 5년으로 저물고 말았다. 그들의 마지막 베를린영화제인 74회 베를린영화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또 새로운 집행위원장과 함께하는 내년 베를린영화제는 어떻게 변할까. 계속되는 위기 속에 베를린영화제의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