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LTNS' 임대형, 전고운 감독, 더 용감하게 표현할 욕망
2024-02-22
글 : 이자연
사진 : 오계옥

한 공간에 같이 누워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한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은 여느 날처럼 아무 굴곡 없는 평범한 날을 보낸다. 익숙함과 지루함 사이에 텐션을 높여주는 건 다름 아닌 친구의 외도 사실. 자신의 비밀을 은닉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3천만원을 내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호텔리어 우진은 밝은 묘수를 떠올린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조리 기록한 치부책을 활용해 불륜 커플을 협박 및 갈취해보기로 한 것이다. 계획은 간단하다. 증거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 협박 메시지와 함께 돈을 요구하기만 하면 된다. 수금 요구를 따르지 않거나 경찰을 부르면 폭로해버릴 거라는 강력한 한방까지 잊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짧고 굵은 스릴을 즐기는 직장인 커플, 산행 속에 한눈파는 중년 커플, 알고 보면 레즈비언의 정체성으로 외도하는 맏며느리 등 <LTNS>는 다양한 입장에 놓인 불륜 관계를 오가며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기존 시리즈와 영화가 선한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기 위한 장치로 불륜을 선택했다면 <LTNS>는 주인공들이 그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정면으로 목도하도록, 그래서 시청자가 이들의 눈을 빌려 비틀린 관계를 직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지런히 추궁하는 부부와 성실하게 숨기는 연인의 엇박자가 표면적으로 경쾌해 보이더라도 그 안에 담긴 찜찜함과 의문스러움을 쉽게 거두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초반에 청소년관람불가의 안전지대에서 음란한 농담이 폭발하듯 쏟아지던 것과 달리 후반에 도달할수록 우진과 사무엘은 오랫동안 웅크려왔던 문제를 뒤늦게 직면하며 주요 질문을 힘겹게 고백한다. <LTNS>의 특징은 이런 식이다. 작품이 자체적으로 정답을 정해두기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기꺼이 내어준다. 도덕적 결함과 부부관계의 모호성, 악의 평범성과 사적 제재까지 개인의 불가침 영역을 진솔하게 드러내길 선택한 것이다.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과 <소공녀> 전고운 감독의 만남은 예측 가능한 기대를 모았다. 섬세한 연출과 아름다운 이미지, 현실 세계를 위트 있게 반영한 블랙코미디와 그것이 추구하는 다양성까지.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충격도 전한다. 노골적인 유머와 끝을 알 수 없는 서사적 질주, 파멸처럼 용솟음치는 대사들. 임대형과 전고운, 둘이기에 완성될 수 있는 화학작용이 여기에 있다.

- <LTNS> 전체 회차가 공개되면서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었다. 그 여정을 돌아본다면.

임대형 창작자로서 기획부터 작품 공개까지 전 과정에 함께했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조금 헛헛하고 허무한 마음도 든다. 하루는 정진영 배우가 늦은 밤 문자를 보내셨다. 1, 2화를 보고 “졸라 재미있다” 하시더라. (웃음) 그리고 마지막 화가 공개된 이후에는 “예술했네”라고 짤막하게 덧붙여주셨다. 그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전고운 시리즈가 공개되고 나서 영화 개봉과는 달리 마음이 편했다. 주변으로부터 들었던 “저질스러운데 세련됐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이 무척 좋았다. 그게 우리가 의도하고 싶었던 바이기도 하니까. 또 부모님이 딸의 새 작품이 나왔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차마 말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너무 통쾌했다. (웃음)

임대형·전고운표 코미디의 규칙

- <윤희에게>와 <소공녀>의 만남이다. 임대형 감독과 전고운 감독의 협력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전고운 어느 영화제의 시나리오 심사를 하다 처음 만났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각자 글쓰기에 조금 지쳐 있던 상황이라 내가 시나리오를 같이 써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탈고가 목표였다. 진짜 시리즈를 완성하는 건 너무 먼 얘기인 것만 같았다. 그냥 타인으로부터 평가라도 받고 싶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결과 티빙과 함께하게 되었다. 어떤 점에선 우리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초고를 탈고하는 과정이 길어질 즈음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기획개발비를 지원받아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둘 다 독립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지원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적으로 잘 알아서 그걸 활용하고 발판 삼을 수 있었다. 또 그게 우리에게 데드라인을 주기도 하고.

임대형 마감형 인간의 숙명이다. (웃음)

- 첫 번째 시리즈다. 영화와 시리즈의 차이를 어떻게 체감했나.

임대형 영화가 이미지 중심이라면 드라마는 대사 중심인 것 같다. <LTNS>는 말맛이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 작업하는 과정엔 큰 차이가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정도? 촬영 현장에서 즉흥성을 요구받는 순간들이 많았다.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마치고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뜨겁게 찍었다.

전고운 영화와 드라마 사이엔 큰 차이가 없지만 관객 태도엔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영화는 날 잡고 좋은 옷 입고 외출해서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면 드라마는 그보다 더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소구된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이게 여러 회차에 걸쳐 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구애의 마음을 펼쳤다. 끝까지 봐달라고, 사랑을 요구하는 시도를 했다.

- 19금 코미디는 국내 시리즈의 주요 소재로 흔하게 활용되지 않는 편이다. 이를 다루는 게 워낙 어렵기도 하고 소재 자체가 대중 사이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LTNS>가 안정적인 성인 코미디를 구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임대형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우리도 용기를 내서 만들었다. 다만 우리는 작품을 만들기 전부터 성별이나 계층, 성 지향 등에 따라 혐오하지 말자는 대원칙을 세우는 데 합의했다. 그래서 표현은 지향하되 노출은 지양했다. 성인용 콘텐츠이지만 베드신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미 세상엔 너무 많은 성적 대상화 이미지가 넘쳐나는데 <LTNS>가 거기에 더 힘을 보탤 이유가 있나, 생각했나.

전고운 기존 콘텐츠 시장이 너무 안전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사람들의 삶과 일상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래서 더 용감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별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도 있었다. 각자 놓치는 것들을 보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 둘 다 젠더 감수성에 기민하지만 또 저돌적이고 야성적인 면이 있어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다. 만약 혼자 썼더라면 10에 그쳤을 것들을 더 밀고 나가 20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함께여서 더 용기낼 수 있었다.

- 둘이었기 때문에 보완할 수 있었던 장면을 예시로 말해준다면.

전고운 우리에겐 이야기의 현실성이 무척 중요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나 자세를 두고 현실에 있을 법한지 계속 토론했다. 베드신에서도 “이 자세가 가능해요? 너무 불편하지 않아요?” 하는 내용을 아무도 웃지 않고 진지한 과학자처럼 의논했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공중에 붕 뜬 이야기는 참을 수 없으니까.

임대형 우진과 사무엘이 의논하는 장면은 대부분 우리가 실제로 회의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에서 나왔다. 불륜 커플에게 얼마를 요구할지 결정할 때 “2천만원은 너무 많은 거 아냐?” “만약 주차장에 경찰이 잠복해 있으면 어떡해?” 은 내용 모두 우리의 고민이고 상상이었다. “고운 감독님, 500만원 달라고 협박하면 줄 거야?” 하는 주제로 내내 회의를 했다.

쉽게 단언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 불륜이라는 소재를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미화하지 않고, 당사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이 관계에 진심인지를 드러낸다. 상반된 개념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과정에 어떤 고민을 담았나.

전고운 <LTNS>가 무엇도 단언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형 감독님과 내가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LTNS>는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시작한 작품은 아니다. 또 둘 다 쉽게 재단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해서 그 태도가 작품에 자연스레 반영된 듯하다.

임대형 도덕적 잣대는 남한테가 아니라 나한테 들이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에겐 양면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입체적이다. 작가가 특정 사안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버리는 순간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 불륜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나.

전고운 공부를 많이 했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얻을 수 없는 소재라 생각보다 자료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글이 안 써질 때에는 불륜 명소를 찾아가보기도 했다.

임대형 미행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히치콕 영화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히치콕 영화를 참고하는 건 불가능했다. 드라마는 숏을 많이 활용한다. 히치콕 작품은 똑같은 숏으로 길게 가면서 서스펜스를 쌓아가는데 시리즈에 통용되기에 반겨지지 않는 장치였다. 사람들이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외에 불륜 장면들은 통계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창작된 상상이다. 이를테면 점심시간에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밀회를 즐기는 에피소드는 이토록 바쁜 와중에도 패스트푸드 같은 사랑을 즐긴다는 일종의 풍자다.

전고운 자동차 천장에 머리가 닿아 고개가 꺾인 건 정재원 배우가 키가 커서 예기치 못해 나타난 것이지만 생각해보니 너무 급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풍기는 우스꽝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 <LTNS>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는 장면들이 많다. 파도 탄 듯 자연스럽게 쫓아가다가 웃게 되는 힘이 강하다.

임대형 안재홍 배우가 코믹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많이 웃었다. 시나리오 쓰면서 이미지를 상상하다 눈물나게 웃었던 건 3화 백호(정진영)와 영애(양말복)의 첫 만남 신이다. 영애의 가발이 바람에 휘날려 날아갈 때 너무 웃겼다. 정작 촬영장에선 아무도 웃지 않는다. 힘드니까. (웃음) 가발이 왜 안 날아가지? 왜 진짜처럼 날아가질 않지? 이런 얘기만 나올 뿐이다.

전고운 <LTNS>를 작업하면서 다양한 웃긴 일들이 있었다. 내가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될 때마다 어머니가 절을 찾아 기도를 올리신다. 스님께 작품 제목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입으로 외면서 기도를 드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기도를 드리기 위해 어머니가 절을 찾았는데 <LTNS>의 전체 제목을 물으시더라. 그래서 <Long Time No Sex>라 답했더니 “ 그냥 <LTNS>라고 할게” 하시는 거다. (웃음) 그러고선 다음날 어머니가 갑자기 새로운 제목을 나에게 제안했다. “그런 단어 쓰지 말고 ‘쓸모가 없어졌다’ 어때?” 하고. 심지어 내 대본을 보지도 않았는데. (웃음) 더 웃긴 건 그 제목과 실제 작품 내용이 어느 정도 맞다는 거다.

- 반면 사무엘과 우진의 갈등을 끝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특히 6화의 연출이 무척 은유적이다. 비가 내리던 2년 전으로 돌아간 둘의 상황을 이어받듯 이들의 집에서도 그대로 비가 내린다. 촬영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임대형 모두가 예민하고 힘들어했다. 물에 닿으면 안되는 기기 장비도 무척 많고. 배우들도 입술이 파래진 채 촬영에 임해야 했다. 부부는 싸우면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곤 한다. 이들이 회피하고 외면해온 2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때, 현재의 시간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연출을 하고 싶었다. 또 문제를 직면한다는 것은 부부에게 재난과 같다. 직면하는 순간 붕괴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재난을 이미지화하는 데에도 집을 침수시켜 비를 내리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전고운 둘 다 플래시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납작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 자체도 정말 길다. 거의 연극무대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배우들이 뛰어난 집중력으로 몰입해주었고 그 덕에 감정적 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솜과 안재홍의 얼굴을 담아낼 수 있어 연출자로 기뻤다.

다양성·다각화,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 <LTNS>는 동성애, 중장년층의 사랑, 현실적인 여성의 성욕 등 다양성을 담아낸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LTNS>를 어떻게 넓혀줬다고 생각하나.

임대형 상업드라마에서 다양한 형태의 커플을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현실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지 않나. 젊은이만 연애하지 않고, 헤테로의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실제 이야기를 반영했을 뿐 우리가 문화적 지평을 넓혔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왜 이런 게 미디어에 더 드러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전고운 우리 작품도 다양성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대표적인 사례만 넣은 느낌이 강하다. 다만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용기도 낼 수 있으니까.

- 우진, 영국 등 인물들의 이름도 중성적이다. 특히 초등학생 영국이는 어른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면서도 자기 몸집보다 몇배 큰 책상에 앉아 듀얼 모니터를 돌려 주식을 한다. 잠시 짧게 스쳐가는 인물에게도 통통 튀는 개성을 부여했다.

전고운 이름에서 성별을 지우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발휘하고 싶은 건 우리 둘 모두 동의한 방향이었다. 우진과 사무엘 부부와 반대되는 가정이 바로 영국이네 집이다. 유복해 아이를 키울 여력이 되고 주식과 재산에 관심이 큰 아이가 등장하는 가정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 가정에 해당된다. 영국이가 어른의 말을 잘 듣고 예의 바르지만 뛰어놀기보다 주식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낀다. 아이의 귀여움이 가리지 못한 사회적 그늘 같은 것이다. 이렇게 <LTNS> 곳곳에 틈틈이 풍자를 넣으려 노력했다.

- 우진과 사무엘은 보편적으로 정의된 성역할과 거리가 멀다. 잠자리를 시도하는 것은 우진, 사랑 없는 관계는 싫다는 사무엘. 이런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임대형 미러링하고 싶었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편견은 현실과 많이 다르다. 현대 사람들은 이제 성별 이미지와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는데 미디어는 그것을 채 담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와 현실 세계의 변화 속도가 차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LTNS>에 등장하는 남녀 인물들은 그 이미지가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가상 현실을 상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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