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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끝, (보아, 2002)
2024-03-07
글 : 복길 (칼럼니스트)

학교에 신입생이 들어올 때마다 사는 곳을 캐묻고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건배를 하기도 전에 늘 먼저 취해 있던 선배의 주사는 ‘강남’에 산다는 신입생을 만날 때면 더욱 징그러워졌다. 집이 논현동이라고? 몇평에 사니? 아버지는 뭐 하시니? 선배가 그럴 때마다 모두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안 해? 말하기 싫어?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네? 술판의 주도권은 윗사람에게 있으니 싸늘한 분위기의 원인도 그에게 추궁해야 맞는 데 어째서인지 언제나 혼나는 쪽은 우물쭈물하는 신입생들이었다.

건물의 값, 땅의 가격, 그리고 그것이 매겨지는 이치를 남보다 빨리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부자가 나쁜 거야? 나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일 뿐이야. 해장국집의 껌뻑대는 조명 아래 ‘부’를 선망하는 이들의 철학이 수없이 설파되었다. 그런 것을 몰라도 그만, 알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나는 그저 식당 직원들의 눈 밑에 나의 시커먼 피로감을 함께 묻었다.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비관할 때에도, 부자들의 삶을 증오할 때도, 마침내 부자가 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졌을 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논현동에 대한 나의 마음이었다. 논현동은 마치 게임 속 중앙광장처럼 늘 내게 열린 동네였다. 나는 수당 없는 자발적 야근을 불사하며, 24시간 운영하는 ‘행복한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마셨고 야간 콜센터 근무를 마친 친구와 ‘스파레이’ 사우나 수면실에서 함께 쪽잠을 잤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지만 어쩐지 논현동에 있으면 전혀 서글프지 않았다. 모두가 잠들지 않았는데, 누구도 잠들지 못한 이유를 묻지 않으니 나의 감정과 직접 마주할 일 또한 없었다. 누군가 그곳에 값비싼 저택들이 있다고 일러주어도 그 안에 누군가가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세상은 내가 사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논현동은 내게 어디까지나 ‘고단한 삶’이라는 체념이 지탱하는 말도 낭만도 없는 번화가였다.

언젠가 새벽에 홀로 논현동 골목 내부를 걸었다. 한번 걸으니 미용실이 나왔다. 거기가 <비스티 보이즈>에 나온 곳이란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진 결핍과 불안은 왜 매력적일까? 그 위태로움이 아무런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공간과 누구도 말하지 않으려는 시간 속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알아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을까? 나는 생각만 했다.

두번 걸으니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고깃집과 술집들이 온갖 잡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고기를 익힌 숯에 알코올과 향수 냄새가 섞이니 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가슴을 진정하려고 눈을 돌리면 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무수히 깔린 바닥이 보인다. 여길 걷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짓밟으며 비틀거린다. 세번 걸으면 그 전단지가 인도하는 주점들이 나온다. 네번 걸으면 외제 차가 빼곡히 주차된 원룸촌이, 다섯번 걸으면 ‘만’(卍)자 간판을 세운 점집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땅값이 높아서인지 허투루 생긴 것이 없다. 모든 공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골목이 만드는 서사에 내가 속하는가? 나는 스스로 묻고 아니, 하고 답하지만 내 삶도 이 동네의 구조와 다를 바 없는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를 걷고, 도시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끔 구역질이 난다. 그러나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감정을 끝까지 추궁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Listen to My Heart>를 듣는 것으로 그것을 해소해왔기 때문이다. ‘만 13살에 데뷔한 소녀 보아가 일본 시장을 점령하고 그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톱 아이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고대사’ 같은 것이다. 그래서 ‘J팝’이란 말은 있어도 ‘K팝’이란 말은 없던 고대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Listen to My Heart>는 현대에도 논쟁이 된다. 한국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일본어 가사로 일본 작곡가가 만든 곡이니 당연히 ‘J팝’이라 보는 게 맞겠지만, ‘해외에서의 인기’가 큰 척도인 ‘K팝’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한국어 버전의 <Listen to My Heart>와 이 곡이 속한 2집 앨범 《No.1》은 ‘K팝’의 기원이라 불리기에 손색없기 때문이다.

<Listen to My Heart>는 일본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이 모두 좋지만 가사에 맞게 강약이 배치된 일본어 버전이 곡에 더 어울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조금은 어색한 번역투가 느껴지는 한국어 버전인데 그 이유는 왠지 더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보아는 그대를 향한 마음이 끝이 없음을 고백하고 당신이 원하는 결말에 내가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아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끝을 따라 걷다 멈추지 않는 바람과 속삭여지는 빛을 따를 뿐이다. 이 노래가 표현하는 대도시의 슬픈 풍경은 무언가를 선언하는 듯한 10대 시절 보아의 창법과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사가 만나 완성되는 것이라 느낀다.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의 본질은 무엇일까? 완전히 연소한 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동네? 아파트 단지를 보자마자 ‘호갱노노’를 켜서 집값과 평판을 보는 행위? 그렇게 집값을 알게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무력감?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왠지 손해보고 있다고 느끼는 박탈감? 이렇게 질문하듯 수많은 답을 내놓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것은 그중 무엇도 내가 머물고 싶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정답을 찾게 되면 삶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결국 나의 고독을 파고드는 일이다. 세상은 가끔 쉽게 결론을 내리라 부추기지만 나는 그 끝을 영원히 모르고, 내 몸 바깥의 고독에 내가 머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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