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여기는 아미코’, 불러도 대답없는 무응답의 세계에서 혼자 크는 아이를 보는 공포
2024-02-28
글 : 이유채

히로시마의 바닷마을에 사는 초등학생 아미코(오사와 가나)가 자기소개를 하면 귀를 기울일 친구는 드물 것이다. 성실한 선생님인 예쁜 엄마(오노 마치코), 다양한 선물을 사오는 멋진 아빠(이우라 아라타), 친구 같은 오빠와 함께 살며 곧 태어날 동생을 기다린다는, 익숙한 가족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란한 가정은 어느 날 아미코로 인해 파탄난다. 엄마의 유산으로 집 안 분위기가 암울해진 와중에 아미코가 동생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걸 본 엄마는 충격으로 정신을 놓는다. 시간이 흘러 아미코는 중학생이 되고, 자기 방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아미코는 이 소리가 귀신이 된 동생이 내는 소리일 것이라 추측한다.

채도와 명도가 높은 쾌청한 공간에서 주인공이 자연을 벗삼아 뛰놀고, 그 배경엔 동요와 같은 귀여운 사운드가 흘러넘친다. 이 정보만 놓고 보면 <여기는 아미코>는 꽤 사랑스러운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의 분위기는 <카모메 식당>보다 <미드소마>에 가깝다. 나름 평화로이 굴러가는 세계 안에서 어린이인 아미코가 은근히 배제되는데, 이 상황이 소름끼칠 정도로 불안감을 안기기 때문이다. 아미코의 부모는 관심을 갈구하는 딸의 신호에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엄마는 딸의 기행에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고개를 돌려버리고 아빠는 다쳐서 피투성이가 된 아미코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면서도 결코 자초지종을 묻지 않는다. 아미코에게 진심으로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 이는 그와 전혀 무관한 행인뿐이다. 그렇게 부모는 표현에 서툰 보호자를 넘어 무기력한 방관자로서 자리한다. 동생 귀신의 목소리를 좇고 상상 속 인물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미코의 일상에는 외로움에 지쳐 자기 자신과 놀아주기를 택한 어린아이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가족 역할을 맡은 배우들 모두 호연을 펼치지만 그중 아미코 역의 오사와 가나가 특히 반짝인다. 연기 경력이 거의 없음에도 오사와 가나는 사랑받을 거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능적으로 표현한다. 감독은 희망과 낙담이 교차하는 어린이 배우의 얼굴을 스크린에 가득 채우는 것을 통해 관객들 곁에 있는 어린 존재를 눈여겨봐주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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