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먼스웨어의 시작점이자 프랑스 패션사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코코 샤넬. 그녀의 이름을 짊어지기에 쥘리에트 비노슈보다 더 적합한 배우를 상상하기 어렵다. 추악한 기회주의자의 추락 곡선 위를 우아하게 활강하는 그녀의 연기는 미워하기 힘든 인간 샤넬의 다층적 실루엣을 유려하게 재단한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렛 더 선샤인 인> <두 세계 사이에서> 등에서도 개성과 품위가 공존하는 인물들에게 깊이를 더해온 프랑스영화의 아이콘은 이제 Apple TV+의 <더 뉴 룩>을 통해 새로운 무대에 도전한다.
= 줄곧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작업 환경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2년 반 전쯤 안토니오 캠포스 제작의 <스테어케이스>에 출연했지만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제작 전 과정을 완주한 <더 뉴 룩> 촬영은 본격적인 마라톤에 임하는 기분이었다.
- <더 뉴 룩>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뭔가.= <더 뉴 룩>의 쇼러너인 토드 케슬러와 화상 회의를 했을 때 그의 열정과 진정성에 감탄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하이패션을 선도하는 두 브랜드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창립자들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하려는 야심에 대해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코코 샤넬의 상반된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패션계는 물론 시대적 배경과 개인사를 폭넓게 탐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 제2차대전 당시 샤넬의 행적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많은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 수많은 자료는 제각기 다른 관점으로 그녀를 조망한다. 주변인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기회주의자로 묘사하기도 하고, 코르셋과 거추장스러운 의복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선구자의 면모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 인물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료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바라보며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노력했다.
- <더 뉴 룩>은 샤넬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 인색하다. 때문에 독선적인 그녀의 성격을 시청자에게 설득하는 작업이 까다로웠을 것 같은데.
= 샤넬은 말하자면 수많은 형태의 삶을 동시에 품은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성격을 구성하는 모든 층위를 섬세히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오만한 외피와 혼란한 행보의 이면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개인사가 자리한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유년기, 실패로 끝난 영국인 아서 카펠과의 첫사랑 등의 상처로 말미암은 그녀의 연약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샤넬의 추락이 마냥 통쾌하게 그려지는 것만은 아니다. 연기하는 인물에 대한 애착과 도덕적 정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나.
= 샤넬의 끝없는 에너지와 도전정신은 항상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하는 나와 분명 닮은 점이 있다. 외로운 어린 시절이 그녀에게 남긴 트라우마를 살펴보며 깊은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의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오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