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행 비행기 안에서 2월13일
1월25일 첫 촬영을 시작으로 한국 분량 촬영이 끝났다. 어느덧 방콕 촬영 분량만 남아 있다. 유독 이번 촬영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분량을 촬영한 2주 동안 카메라 안과 밖에서 감지되는 현상과 변화를 바라보고 소화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김세인이라는 개인의 삶과 직업인으로서의 감독의 삶, 양 측면에서 현재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계속하여 자각했다. 지난 에세이에 언급했던 고민들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어떤 실마리 정도가 내 발밑으로 자꾸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다.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촬영장에서 내내 뛰어다녀야만 했다. 심지어 조급한 마음에 컷을 하기 직전에는 모니터 룸 입구에 서서 모니터를 지켜봤다. 컷과 동시에 모니터 룸 문을 열며 밖으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오케이컷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뛰고 또 뛰었다. 이번 촬영에서는 그 한정된 시간이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힘으로 발휘되었다. 오롯이 우리의 현장, 장면 안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감각. 단순한 상태가 되는 즐거움. 잽싸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물론 시간 내에 신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과 긴장은 있었지만 그 또한 발목의 모래주머니가 아닌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는 상쾌한 바람 정도로 작용되었다. 지난 작업들에서 보통은 컷을 하고 적합한 말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어떨 때는 꼭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모니터에서 배우와 스탭들이 있는 곳으로. (이러한 현장에서의 부담감에 대해 공감하는 연출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상에서조차 매사 그다지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이런 기질은 현장에서도 스멀스멀 나타나곤 했다. 매 작품 촬영이 끝나면 역시 나는 감독이라는 직업에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판단하게 되었고 다른 직업을 찾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 현장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 적은 아주 찰나의 순간뿐이었기 때문에 한차례 작업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음 작업을 시작할 기운을 모으는 시간, 소위 ‘쿨타임’이 차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빨리 다음 작품을 찍고 싶다’, ‘다작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말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의미의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한 회차, 한 회차가 지나갈수록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참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감독으로서 비로소 전환점에 들어섰다. 감독의 디렉팅을 갈구하는 배우들과 스탭들의 눈빛을 보며 최대한의 속도로, 더 빨리 그들에게 뛰어가고 싶었다. 그들에게 지금 이 화면 안에 스친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온전히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자신을 던진다는 것. 그런 순간들이 이 작품에 놓여 있다. 예상보다도 <대도시의 사랑법>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 비행기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촬영하며 좋았던 순간들, 슬펐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바닷물 속에서 춤을 추는 모래알처럼 우리는 잠시 파도를 탔던 거겠지.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스탭들의 머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방콕 클럽 안에서 2월22일
이상한 꿈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처음으로 촬영장 꿈을 꿨다. 촬영장에서 나는 극 중 주인공 ‘고영’의 팬티를 입은 채 누군가와 키스했다. 묘하고 이상하다.
아, 이래서 그런 꿈을 꾸었던가. 도착한 방콕 클럽 현장은 그야말로 사랑의 용광로였다. 흥 넘치는 엑스트라들은 컷 사인에도 무아지경으로 춤을 멈추지 않았다. 클럽 무대 위로 뛰쳐올라가 손을 휘저으며 ‘컷!! 컷!!!!!’ 여러 차례 외치고 나서야 그들은 ‘우린 춤을 계속 추고 싶어’라고 말하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실제 클럽인 양 서로를 스캔하고 신호의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가 임의로 짝지어준 파트너를 거부하고 ‘난 저 친구와 춤을 추고 싶어’를 명확하게 요구했다. 서로가 맘에 드는 자를 픽해 자율적으로 파트너가 되었다. 카메라가 돌기 전 이미 키스를 시작하고 정해주지 않은 공연을 벌이며 환호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이었다. 음악을 끄지 않은 채 촬영감독, 조감독, 인물 조감독, 통역사와 나는 춤을 추는 그들 사이를 헤집으며 카메라에 그 모습들을 마구 담아냈다.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로 스냅 촬영을 계획한 부분을 촬영하기 전 촬영감독이 나에게 디지털카메라를 건넸다. 직접 찍어보라고. 클럽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암흑의 클럽에서 음악이 울리고 우리는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춤을 추는 엑스트라들의 머리 언덕 위로 저 멀리 촬영감독의 플래시가 빛났다 사라졌다. 모두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촬영감독의 플래시와 내 카메라의 플래시가 멀어졌다가 교차되기도 하고 왼쪽이었다가 오른쪽이었다가 마치 전쟁터의 총알처럼 튀어올랐다. 내 카메라에 촬영감독의 어깨가 찍히기도 하고 스탭이 찍히기도 했다. 촬영감독의 카메라에도 분명 내가 찍혔겠지.
이 클럽 신을 찍기 전, 남윤수 배우와 진호은 배우에게 당신들의 유일무이한 청춘의 찰나를 찍겠다고 말했다. 성공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건 배우들의 유일무이한 찰나는 물론이거니와 이 작품을 함께한 스탭들, 엑스트라들, 그 모두의 청춘의 찰나였다.
이것을 찍기 위해 이 작품이 존재했던 거구나. 그렇게 모든 본 촬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