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 나의 세번째 챕터, 배우 박서함
2024-03-12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오랜만입니다.’ SNS에 남긴 간결한 인사와 함께 배우 박서함이 돌아왔다. 언제 자리를 비웠었냐는 듯 그는 금세 팬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추위가 누그러지는 3월, 계절에 걸맞게 <너를 위한 삼월>이라는 제목의 포토에세이도 출간했다. 2016년 아이돌 크나큰의 멤버로서 무대 위에 올랐던 박서함은 도전해보지 않은 영역에 발을 들이며 자기 세계를 차근히 확장해가고 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웹드라마 <한입만> 시즌2 촬영이 들어가기 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카메라를 찾는 버릇이 있어 많이 혼날 것 같다”고 답한 바 있다. 당시의 걱정이 무색하게 이제 그는 어떻게 캐릭터를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액션을 익힐지 한층 깊은 층위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스스로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서함의 “미래를 기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우 박서함의 새로운 챕터가 이제 막 펼쳐졌다.

- 얼마 전 같은 소속사 배우 신은수, 양병열과 호주에 다녀왔더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 배경은.

= 소속사 유튜브 채널 콘텐츠 중 <네모여행>이 있다. 그 일환으로 가게 됐는데 배우, 스탭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주를 처음 가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광활해서 놀랐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 풍경 사진을 자주 찍어 올리던데, 자연경관 보는 걸 즐기나보다.

= 좋아한다. (웃음) 프레임에 걸리는 피사체 없이 딱 풍경만 보길 좋아한다.

- SNS를 보니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 홀로 집에>를 관람했더라. 이 영화를 특별히 애정하나.

= <나 홀로 집에>를 보고 있으면 특유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보다 드라마,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 <미녀는 괴로워>를 다시 봤는데 류승수 선배님이 정말 풋풋한 모습으로 나오시더라. 변해가는 모습을 꾸준히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이다.

가수의 꿈, 배우의 꿈

- 2022년 <씨네21>과 인터뷰하고 난 뒤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떤 변화를 체감하나.

= 많은 게 달라졌다. 우선 소속사가 생겨서 여러모로 안정감을 느끼고, 그런 현재에 감사한다. 물론 <시맨틱 에러>를 촬영할 때 회사 없이 현장에 나간 것도 내겐 큰 인생 공부였다. 언제 또 그렇게 혼자서 의상을 챙기고 일촬표(일일촬영계획표)를 정리해보겠나. 그리고 2년 전 인터뷰를 할 때엔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나이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 <시맨틱 에러>로 큰 주목을 받았을 때 곧바로 공백기를 가졌다. 아쉽거나 불안하진 않았나.

=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시맨틱 에러>가 공개됐을 당시, 그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게 활동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대로 실감하기도 전에 공백기가 생긴 게 아쉽고 슬펐다. 그런데 문득 하늘에서 재정비의 시간을 좀더 가지라고 기회를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때 다른 작품에 운 좋게 곧바로 들어갔어도 잘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오히려 숨을 고르면서 스스로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돼 다행이다. 아쉬움만 갖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주시는 사랑을 감사하게 받으면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 해나가려고 한다.

- 올해로 데뷔 8년차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서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정작 학창 시절엔 얌전한 학생이었다고.

= 그땐 더 겁쟁이여서 정말 조용하게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가 “너는 사춘기가 없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까. 예전에 SNS 라이브 방송을 할 때 팬들에게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나는 정말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만약 내가 불량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그런데 팬들이 내 졸업사진을 올리면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하더라. (웃음) 그 정도로 꾸밀 줄도 모르는 학생이었다.

- 멋 부리는 데에 관심 없던 조용한 학생이 어떻게 가수의 꿈을 꾸게 된 건가.

= 친한 친구 중에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애가 있었다.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간다기에 따라갔는데 거기서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꼭 수학여행에 간 것처럼 연습생 친구들과 생활하고 춤과 노래 연습이 일상이 된 게 즐거웠다. 월말 평가를 받으면서 점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고3 때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된 거다. 그전까진 장래희망이라는 게 없었다. 근 20년 만에 생긴 꿈을 포기할 수 없었고, 데뷔가 미뤄져도 버티고 버텨서 결국 무대에 서게 됐다.

- 아이돌 시절부터 연기를 병행해왔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비슷한 무렵에 가졌나.

= 처음엔 없었다. 아이돌로서 인정받는 게 우선이었다. 연습생 때 매번 들은 이야기가 “넌 모델상이지 아이돌상이 아니”라는 거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게 어딨어?’ 오기가 생겨서 오히려 더 다른 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 오디션을 볼 기회가 왔을 때 부담감 없이 편하게 임했고 제작진은 그런 내 모습을 오히려 좋게 봐주셨 것 같다.

-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가 배우 데뷔작이다. 그룹 활동만 하다 배우로서 혼자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을 텐데.

= 혼자서 모든 걸 해내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가 져야 했다. 의지할 곳이 없으니 두려웠다. 연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 <20세기 소년소녀>에서는 안소니(이상우) 아역으로 짧게 등장한 반면, 웹드라마 <한입만> 시즌2에선 주우경 역으로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 그렇게 많은 대사를 해본 게 처음이었다. 시즌1에서 주우경을 연기했던 배우가 사정상 하차하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시청자들 입장에선 내가 낯설 텐데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 연기 레슨도 제대로 안 받고 혼자 연습해서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몰랐다. 그렇게나마 한 작품을 완주하고 나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용기도 생겼다.

- 이후로 웹드라마 <필수연애교양> <7일만 로맨스2>에 연이어 출연했다. 전부 로맨스물이고 맡은 캐릭터들이 대체로 FM 스타일의 바른생활 사나이다. 본인에게 그런 역할이 계속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던 것 같나.

= 실제 성격과 비슷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우경(<한입만> 시즌2)이나 윤수(<필수연애교양>) 둘 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순하다. 내 성격 자체가 FM은 아닌데 외적으로 바르게 생겼다는 이야길 종종 들어서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주신 것 같다. 성격은 비슷해도 연기는 어려웠다. 가령 윤수는 로봇 같은 캐릭터인데 딱딱한 말투의 정도를 맞추는 게 어렵더라. 그래서 다른 배우나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보는 식으로 캐릭터 말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이든이(<7일만 로맨스2>)를 특히 재밌게 연기했는데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내면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나랑 다른 성격이라 그걸 표현하는 게 재밌었다.

- <시맨틱 에러>의 김수정 감독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있을 만큼 성실하고, 수용력이 좋아서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는 배우”라고 박서함 배우에 관해 말한 바 있다. 이런 성실함은 수년간의 아이돌 생활로 길러진 게 아닐까 싶었다.

= 그렇다. 특히나 크나큰은 그렇게 활동이 많은 그룹이 아니어서 스케줄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했다. <시맨틱 에러> 현장에선 감독님을 포함한 모든 스탭들이 나보다 선배였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말했다. 많이 알려달라고, 배우겠다고. 특히 김수정 감독님이 슛 들어가기 전에 고려하면 좋을 것들이나 연기 연습 방법을 많이 조언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면 현장에 일찍 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배우로서의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

= 아직 찾아가는 단계고, 찾고 싶다. 2년 전만 해도 ‘배우’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금은 스스로 배우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 무게감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버티는 힘 하나만큼은 강하다. 힘든 연습생 시절도, 크나큰 활동도 그렇게 버텼다. 끈기와 성실한 태도만큼은 계속 가져가려고 한다.

- 가수 생활을 하다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 중에서 음반을 내는 등,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고픈 마음이 있나.

=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다시 음악 방송에 나갈 자신이 없다. (웃음)

또 다른 행운을 기대하면서

- 포토에세이 <너를 위한 삼월>이 출간됐다. 책은 출판사 제안으로 쓰게 된 건가.

= 그렇다. 처음엔 고민했다. 책을 아무나 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팬들이 즐겁게 볼 책이라면, 자신 있었다. 처음에는 포토북만 내려다가 더 정성스럽게 만들고 싶어서 글도 길게 썼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는데 그래도 첫 책치고는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왔다. 팬들도 좋아하실 거라고 믿는다.

- 제목은 직접 지은 건가.

= 원래 지었던 제목은 ‘삼삼하게 무쳐낸 날들’이었다. (웃음) 개인적으로 3이란 숫자를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책에서 나의 일상을 주로 다뤘다보니 사진이나 내용이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마치 나물 무치듯 ‘나의 날들을 삼삼하게 무쳐봤다’는 의미로 그렇게 지어봤고 최종적으로는 <너를 위한 삼월>이란 제목이 선택됐다.

- 책에도 풍경 사진이 많다. 이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을 꼽는다면.

= 벚꽃 사진들이다. 금방 폈다 금방 지지만 만개했을 때의 모습이 좋다. 반복해 여러 장이 들어갔는데 빼고 싶지 않아서 결국 전부 넣었다.

- 얼마 전 팬미팅을 진행했다. 현장에서 ‘나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데, 사실 나쁜 역할의 범위가 넓지 않나.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해보고 싶은지 궁금하다.

= 특정 장르나 캐릭터를 떠올려보진 않았고 입체적인 악역을 해보고 싶긴 하다. 얼마 전에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착한 줄 알았던 캐릭터가 알고 보니 범인이었다. 그 설정이 내겐 충격적이었다. 그런 입체적인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다.

- 로맨틱코미디에도 관심이 있다던 예전 대답은 지금도 유효하나. = 관심 완전 많다! 그동안 로맨스물을 많이 해오긴 했는데 항상 즐겁게 촬영해서 또 도전하고 싶다. 정통 멜로도 마찬가지다.

- 영화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까.

= 당연히 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막연하게 ‘영화 해보고 싶다’ 정도로 말하고 싶진 않다.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해서 차근차근 내공을 쌓을 거다. 그러다 좋은 작품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전부 쏟아붓겠다.

-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주일의 대부분을 액션과 승마 수업을 받으며 보낸다. 이건 정말 큰 스포일러라고 강조하고 싶다. (웃음) 살면서 누구랑 싸워본 적이 없어서 액션이 문제이긴 한데…. 승마 수업에선 재능 있다고 칭찬도 받았다. 거의 2년 만에 작품으로 뵙는 거기 때문에 팬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도록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있다.

- 연초부터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은 한해의 계획도 들려준다면.

= 차기작 촬영이 시작되면 남은 한해는 훅 지나가지 않을까. 그렇게 이번 해를 마무리하면 내년을 정말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데, 내년에 33살이 된다. (웃음) 데뷔 8주년이 되던 날 예전 사진들을 쭉 살펴봤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 예전의 힘든 일들도 지금 와서 보면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삶에는 행운과 불행의 사이클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힘들 때마다 내게 찾아올 행복을 기다린다. 예전에는 미래가 두려웠는데, 요즘엔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

박서함의 사계

봄 -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TWS(투어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연습생이던 시절에 <벚꽃엔딩>이 수록된 앨범이 발표됐다. 그때 다른 연습생들과 한강에 가서 앨범의 1번 트랙부터 끝까지 함께 들었다. <벚꽃엔딩>을 들을 때마다 봄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그날의 한강이 떠오른다. 그래서 봄이 오면 꼭 찾는 노래다. 요즘에는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자주 듣는다. 이런 아들을 낳고 싶다 싶을 정도로 너무 귀엽다!

여름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던 드라마다. 옆에 앉아서 같이 TV를 보곤 했는데, 그때는 인물들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니 왜 그렇게 어머니가 재밌게 보셨는지 알겠더라. 당시 삼순이가 서른밖에 안됐는데도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나. 30대가 돼보니 그런 고민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올해 내가 서른둘인데, 서른밖에 되지 않은 삼순이가 너무 어려 보인다. 나중에 마흔이 되면 또 서른둘의 내가 한참 어려 보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해 다른 마음으로 감상한다.

가을 - 윤도현 <사랑했나봐>,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

가을에는 무조건 발라드다. 윤도현 선배님의 <사랑했나봐>와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는 날씨가 쌀쌀해진다, 가을 탄다 싶으면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반복 재생한다.

겨울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지금까지 6번 정도 정주행했다. 이번에 호주로 여행 갔을 때에도 비행기에서 또 봤다. 그만큼감명 깊고, 날이 추워지면 생각나는 작품이다. 영상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스토리가 담백하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매회 가슴 찡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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