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나영(권유리)은 바깥세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주민들의 하루를 담고 한집 사는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나영에겐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나영의 행복은 가족들의 변화로 인해 깨질 위기에 처한다. 엄마 정옥(길해연)이 돌연 재혼을 발표하더니 고등학생인 동생 성운(현우석)은 갑자기 서울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영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볼링이다. 나영은 친한 볼링장 주인 미숙(박미현)과 서울에서 온 다정한 외지인 해수(심희섭)의 도움을 받아 볼링이란 낯선 세계에 눈을 뜬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한 <돌핀>은 주인공을 인간의 손을 떠나 레인 위의 질주를 시작한 볼링공에 빗대어 풀어낸다. 줄곧 변화를 두려워하던 나영은 집안의 대소사를 겪고 볼링이란 새로운 취미를 만나면서 도전하는 삶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도랑에 빠져 굴러가던 볼링공이 마지막에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볼링핀을 쓰러뜨리는 기적 같은 순간과 맞닿는다. 긴장감이 감도는 볼링장의 분위기와 볼링공이 굴러가는 소리를 생생히 담은 볼링 연습 장면은 스포츠영화가 주는 짜릿한 즐거움을 안기기도 한다. 이야기에 듬성듬성한 부분이 많고 답답한 마음을 짜증으로만 표현하는 일면적 캐릭터는 이 영화의 간과할 수 없는 약점이다. 엄마의 재혼과 동생의 서울행은 돌발적인 선언에 그칠 뿐 사건으로 구체화하지 못해 영화는 공허하게 전개된다. 주민들의 사연이 가득한 옛 볼링장을 핵심 공간으로 쓰고 외지인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켰음에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점이 결정적 패착처럼 보인다. 비중에 비해 주인공 나영의 존재감이 약한 것도 아쉽다. 나영이 왜 그토록 자기 세계에만 머물려 하는지, 그의 가슴속에 쌓인 가족에 대한 응어리는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한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걸 그룹 소녀시대 출신 배우 권유리의 성실한 연기와 음지에 빠진 주인공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연출자의 끈질긴 시선이 이런 약점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