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작별이다. 이우정 우정필름 대표가 2024년 3월2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5살. 1969년 태어난 이우정 대표는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이은 명필름 대표와의 인연으로 명필름의 창립 작품인 <코르셋>(1996)의 제작부 막내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명필름에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공동경비구역 JSA>(2000), <YMCA 야구단>(2002), <광식이 동생 광태>(2005) 등을 거쳤고 제작부장과 제작실장, 프로듀서를 맡았다. <YMCA 야구단>은 그에게 제10회 춘사영화제에서 올해의 기획제작상(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공동 수상)을 안겼다. 심재명 대표는 “명필름이 커가면서 후배들에게도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선량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한다. 뿐만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역량도 대단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제작으로까지 잇는 데 탁월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
생전 고인은 한국 근현대사 속 권력과 사회의 부조리가 야기한 폭력을 직시하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가 제작자로 독립한 첫 작품은 한국전쟁 초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 <작은 연못>(2009)이다. 이후 제작한 <고지전>(2011)은 전국 29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제48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에게 가장 의미가 큰 작품은 <1987>(2017)일 것이다. 고인이 대표로 있던 우정필름에서 만든 <1987>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출발해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신중하게 그려냈다. <1987>로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대상을 받은 그는 연단에 올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열사들과 투사들이 있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살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며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1987>의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는 “이우정 대표는 나처럼 1980년대의 여러 사건을 통과해온 사람이다. 모두가 주인공인 <1987>의 플롯을 단 한명의 주인공을 둔 이야기로 바꾸어야 한다면 나는 이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정우 배우가 분한 공안부장 최 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코멘트도 받았을 정도다. 그때 이우정 대표가 끝까지 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우정 대표가 함께 버텨주었기 때문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전한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강철비2: 정상회담>(2019)을 제작하며 영화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끝내 영화화되진 못했지만 <화려한 휴가>(2007)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의 나현 작가와 홍범도 장군에 관한 영화를 구상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