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이전. 절대 군주정 체제의 프랑스 천민 계급과 자녀들의 삶은 짐작하여 가늠하기 쉬웠다. 죽을 때까지 일하거나 남자와 몸을 섞으면서 살거나. 가난한 재봉사의 사생아였던 잔 보베니에(마이웬)는 둘 중 더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택했기에 매춘부가 된다. 문학과 시, 예술과 쾌락을 거침없이 탐하며 일류 접대부로 성장한 잔의 매력은 후견인 뒤 바리 백작(멜빌 푸포)을 넘어 국왕 루이 15세(조니 뎁)에게 가닿는다. 미와 지성을 갖춘 관능적인 여자는 천하에 가장 권력 있고 부유한 연인을 얻으리라는 오래된 믿음은 그렇게 실현된다. 왕이 사랑한 단 한명의 공식 정부(情婦), 잔 뒤 바리는 프랑스 왕국 역사의 마지막 로열 미스트리스가 되어 베르사유에 입성한다.
익히 봐온 궁정 로맨스를 위시한 심미적 체험으로 가득한 영화 <잔 뒤 바리>는 두 주연배우의 공사를 함께 엮어 읽을 때 더욱 흥미로워지는 텍스트다. 이번 작품에서 연출, 집필, 연기를 모두 해낸 마이웬은 15살 때부터 17살 연상의 스타 감독 뤼크 베송을 연인으로 두었고, 결별 후 홀로 영화를 만들면서 걸출한 감독 겸 배우로 성장했다는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전작 <몽 루아>에서 남자를 왕처럼 떠받들며 사랑하는 여자의 자기 파괴적 연애를 그렸던 마이웬의 자의식이 베르사유에 그대로 이식된 영화가 <잔 뒤 바리>다. 10대의 임신과 출산, 나이 차 큰 연인, 예술가 남편 등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듯한 시도를 해온 40대 후반의 마이웬은 정통 로맨티시즘을 취하며 정석적인 연출력을 선보인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왕의 승은을 입은 여성은 창피와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왕을 사랑하거나, 사랑한다고 믿어야 한다. 이러한 뒤 바리 부인의 마음으로 자상한 성품의 루이 15세를 연기한 조니 뎁을 바라보는 시선은 안팎으로 복잡하다. 칸영화제가 가정폭력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그를 3년 만에 개막식 레드카펫에 복귀시키며 축제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바 있다. 잔 뒤 바리가 생을 바쳐 사모해온 여성의 자유라는 페미니즘의 입장은 혁명 이후에도 다양한 모양으로 배반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