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서민의 계급 격차 사랑, 시한부, 기억상실 등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는 그간 우리가 보아온 익숙한 설정이 전면에 등장한다. 지겨울 만도 한데 ‘아는 맛’이 무섭다고 우리는 그 익숙함에 즐겁게 빠져든다. 하지만 박지은 작가 드라마의 매력은 단지 ‘아는 맛’에 있지 않다. 그걸 살짝 비트는 매력이 있달까. <눈물의 여왕>은 재벌 계급 남자주인공과 소위 ‘캔디렐라’로 불리는 서민 계급 여자주인공의 사랑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비틀어 ‘개천’이 아닌 ‘용두리’에서 나온 인재, 백현우(김수현)와 ‘퀸즈’ 그룹의 실세, 홍해인(김지원)의 로맨스라는, 성별 반전 서사를 등장시킨다. 단지 성별만 바뀌었을 뿐인데 꽤 새롭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클리셰’가 계급 격차 로맨스 드라마만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듯, 우리에게 익숙한 가부장사회의 관습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현한 덕분에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가부장제’의 자리가 ‘자본’으로 대체된 설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부작용이 있지만. <눈물의 여왕>은 이제껏 재벌가의 상대인 ‘캔디렐라’의 세계를 지나치게 불행하게 보여주었던 클리셰도 비틀었다. 백현우는 홍해인에 비해 턱없이 가난하지만 그가 자란 용두리는 다르다. 퀸즈가로 대표되는 도시-자본의 대안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퀸즈가의 재건을 돕는다. <웰컴투 삼달리>처럼 지방의 낭만을 보여주는 최근 드라마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활용한 셈이다. 익숙한 것을 조금만 비틀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는 걸 박지은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이 ‘영리함’이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전작 <별에서 온 그대>가 그랬듯 <눈물의 여왕>도 로맨스 드라마 세계의 변화를 불러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CHECK POINT
대한민국 최고 재벌 퀸즈가는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해 30년 동안 준비한 모슬희(이미숙)와 윤은성(박성훈) 일당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진다. 비록 ‘빌런’이지만 퀸즈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해온 모슬희와 입양됐던 윤은성의 ‘30년’을 무시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퀸즈(+용두리)를 선하게, 모슬희와 윤은성을 악하게 단순 대비시키는 것은 올발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