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디스패치]
[시네마 디스패치] Epliogue. 쇠락과 사망 섹션
2024-04-18
글 :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

결국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매거진도, 시네마도 마찬가지다. 영영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독자에게 인사를 남기고 끝을 맺는 잡지도, 영화도 드물다. 다음 호가 더 이상 발행되지 않을 때, 그마저도 혹시나 하고 몇 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을 때에야 우리는 잡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야 비로소 관객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대부분이 그렇다. 모두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고 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만들어지는 동안, 상영되는 동안, 살아가는 동안, 아무도 끝에 대해 예감할 수 없다. 불현듯 사라진다. 인사도 없이.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를 쓰는 동안 쓰고 싶었던 것은 잡지라는 매체에 대한 감각이었다. 때로는 어떤 매체에 소속된 기자라고 상상하며, 혹은 잡지와 영화에 대한 기사를 청탁받은 작가라고 가정하며, 잡지사에서 일하는 가상의 하루를 생각하며 독자들이 공기처럼 읽는 글과, 물처럼 마시는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고민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쓰고 찍는 에디터 대부분은 마감에 쫓겨 제대로 쉬는 날이 없는 경우도 일쑤다. 왜 아직도 그들은 매혹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어째서 그들은 몸과 마음을 수없이 갈아가며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며 사는가. 마지막까지 끝내 정답은 찾지 못했다. 한 영화잡지 에디터가 종이잡지클럽에 놀러온 적이 있다. “정말 간만에 쉬는 날이에요.” 새로 나온 영화잡지 몇 권을 읽던 에디터의 눈은 좀비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잡지 몇 권 읽다가 한국영상자료원에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날에는 집에서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음 주에 김기영 감독 특집 기사를 써야 해요. 과거 평론이나 작품을 다시 봐야 할 거 같아요.

쉬는 날에도 일하시네요.

제가 쓰는 것에 당당하고 싶거든요.

대단하네요.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정말 힘들어요. 약속을 잡을 수가 없어요.

내가 만나본 에디터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잡지가 뭐라고. 기사 하나 쓰기 위해 싸우고, 갈등하고, 고뇌하는 사람들. 이것을 낭만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열악하고 취약한 업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 에도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잡지를 만들고 있다.

사장님,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열심히 하다 보면 보이나요?

미래가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럼 컴컴한 채로 살아야 하나요?

에디터의 질문에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더 밝은 쪽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 도래하지 않을 환상을 말해주는 게 좋은 걸까. 곧 다가올 캄캄한 현실을 알려주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다르게 하면 될까요.

지금 국비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상상하는 거예요.

국비학원이요?

그렇게 생각하면 학원보다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동시에 교육도 정말 빡세게 받고 있는 거니까.

에디터는 정말 멋진 말이라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이득이네요. 심지어 네트워크까지 생기니까요.

곧 상영시간이라며 에디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앞으로 달라질 수 있는데 잡지를 영영 못 떠날 것 같아요. 함부로 다짐하지 말고 때로는 도망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그럼 사장님도 너무 힘들면 도망치세요.

도망쳐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 미래도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

처음 연재를 부탁받았을 때에는 부담감으로 뭘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더부룩한 상태로 지냈다. 그래도 지금은 마치 루틴처럼 무얼 쓸까 고민하고, 자리에 앉아 무엇이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그들이 해줬던 말들을 되뇌었다. 무언가를 읽고 쓰는 행위는 일견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척 교만한 마음이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모든 것에 빚지고 있다. ‘시네마 디스패치’를 연재하면서 수많은 잡지를 읽었다. 한 권의 잡지가 발행되기 위해서, 하나의 기사가 써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늦지 않게 깨달아 다행이다. 잡지에 기여한다는 게, 잡지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애쓴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질문을 스스로 답해볼 수 있었다. 왜 우리는 매혹되어 있는가. 밝지 않은 미래에 머물러 있는가. 그렇다면 잡지에 미래는 존재하는가. 우리가 하는 일에 정답은 존재하는가.

미래가 밝지 않다고들 말하는 업계에 있다 보면 일종의 열패감에 휩쓸릴 때가 있다. 쓰고 있는 글을 누가 읽어줄까. 모든 것이 영상으로 엄청난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는 와중에 종이 매체의 미래가 있을까.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자꾸 밝지 않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냐고 묻는다. 하지만 미래가 밝지 않다고 미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밝지 않은 미래에도 지금 이 순간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오늘의 글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 물론 그들은 마감 때문에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상상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또 미래는 흘러갈 것이다. 그저 여전히 글과 사진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을 바라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이 언젠가는 의미 없이 사라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진실도, 미래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남기는 흔적이다. 연재를 하면서 잡지가 미워지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정작 잡지를 더 사랑하고 매혹하게 되어버렸다. 빛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빛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다. 세상은 밝음과 어둠, 존재와 비존재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 속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무언가를 만들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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