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땅에 쓰는 시’, 조경가의 지혜로 돌보고, 여성 선구자의 집념으로 일궈낸 경관의 영화
2024-04-17
글 : 김소미

초록이 가득한 선유도공원 곳곳을 뛰노는 아이의 발걸음이 <땅에 쓰는 시>의 첫행이다. 소년의 눈높이에서 유영하듯 거닐어보고 때로는 드론카메라의 시점에서 공원의 구조를 조망하다보면, 앞서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를 만든 정다운 감독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공간성에 대한 감독의 일관된 관심사는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조경)를 획득한 최초의 인물,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 흙과 풀로 숨쉬는 드넓은 땅에 안착했다. 사계절의 변화를 담은 풍경과 생태의 고유함을 지키려는 정영선 조경가의 철학이 순리를 따르는 그의 정원처럼 조화를 이룬다. 풀꽃의 시를 써온 인물의 업적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경관만큼이나 인물의 얼굴에도 정성을 쏟으며 베테랑에게 깃든 긴 세월을 함께 전한다. 눈여겨볼 점은, <땅에 쓰는 시>가 조경 활동의 시적 아름다움과 지혜를 전하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 조경가의 생애에 대한 유효한 자각을 이끈다는 데 있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호암미술관 희원, 서울 아산병원 등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누려온 휴식 공간은 누구의 고투 끝에 탄생했는가. 시인으로서의 조경가일 뿐 아니라 작업장의 수많은 인력들과 국가 사업의 향방을 주도한 집념의 선구자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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