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궁극의 아이디어맨,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에 출연한 힙노시스 멤버 오브리 파월
2024-05-09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스콜피온스,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 제네시스, 에스, 10CC, 피터 가브리엘, 윙스, AC/DC, 티렉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영국의 디자인회사 힙노시스가 협업한 록뮤지션의 이름만 나열해도 록의 황금기 계보가 자연스레 그려진다. 1968년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월에 의해 설립된 힙노시스는 록밴드의 앨범 커버를 주로 제작해왔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Wish You Were Here》 등이 대표적인 작업이며 아티스트들과 직접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독창적인 시도를 해왔다.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이하 <힙노시스>) 개봉과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전시에 맞춰 내한한 오브리 파월을 만났다. “내가 죽은 후에도 힙노시스의 작업은 영화 속에 계속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기쁘다”라며 그는 영화와 앨범 커버 제작과 관련한 비하인드를 들려주었다.

- 제작자인 콜린 퍼스의 전화 한통으로 영화 <힙노시스>가 시작됐다고.

= 콜린 퍼스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힙노시스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줬다. 관련 책을 읽고 앨범도 많이 갖고 있을 정도로 그는 힙노시스에 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콜린 퍼스가 영화를 할 생각이 있냐길래 알겠다고 했다. 제작비는 마련돼 있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 (웃음)

- 영화의 오프닝 신과 클로징 신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직접 박스를 등에 메고 건물로 걸어들어가 담겨 있던 작업을 꺼내 보여준 뒤, 포장해 다시 등에 메고 걸어나가는 형식이다. 누가 낸 아이디어인가.

= 안톤 코르베인의 아이디어였다. 그가 이 작품의 감독을 맡게 된 뒤 내가 말했다. 아카이빙된 힙노시스의 작업물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지만, 영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영화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 이후에 안톤 코르베인이 내게 힙노시스 작업의 원본 사진이 있는지 물었고, 그것을 인쇄해 박스에 넣은 뒤 내가 등에 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는 건물은 나의 집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지만 전적으로 그를 신뢰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집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중에 영화로 봤을 때는 무척 감동받았다.

- 앨범 커버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 첫째로 뮤지션과 이야기를 했다. 그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스튜디오에 들러 대화를 나누곤 했다. 둘째로 가능하다면 가사를 미리 읽으려고 했다. 10CC의 경우는 가사가 재밌어서 주로 가사에 기반을 뒀다. 레드 제플린의 앨범 커버를 작업했을 때는 곡도 없고, 가사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폴 매카트니는 항상 아이디어가 있었다. 우리 생각을 듣고 난 뒤엔 그것도 좋다며 자신의 아이디어와 우리의 아이디어, 두개를 함께 작업해 달라고 한 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더 좋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비틀스다. 비틀스에게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겠나. (웃음) 어쨌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리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그것으로 작업하길 선호했다.

- 핑크 플로이드의 《Animals》 커버를 작업할 때하늘에 띄운 커다란 핑크 돼지 풍선이 날아가는 사고가 있었다. 그런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다.

= 그런 게 삶이지 않나. (웃음) 큰 풍선을 도시 복판에 띄우는 그런 시도가 50여년 전에는 훨씬 쉬웠다. 아무도 우리의 작업에 관해 질문하거나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Wish You Were Here》에서 불이 붙은 채 악수하는 남자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다른 시대라 가능했는데 이젠 런던에서 핑크 돼지 풍선을 띄우는 것 같은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디지털 작업과 비교할 때 수작업의 장점은 무엇인가.

= 훨씬 환상적이다. 1970년대에는 여러모로 작업 공정이 더 복잡했다. 카메라와 롤필름을 가져가 정확한 위치에 두고, 촬영한 뒤 현상한 필름을 크게 인쇄하고. 그때 스튜디오에는 신중하게 사진 작업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콜라주를 할 때 사진 끝부분을 사포로 비벼 얇게 만든 뒤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그런 공정이 주로 6주 정도 걸렸다. 요즘에는 포토숍으로 2시간이면 할 수 있다. 그만큼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주어지는 시간도 훨씬 빨라졌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작업에 관해 충분히 고민하고 그곳에 감정을 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힙노시스는 모든 걸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소구할 수 있었다.

- 가장 좋아하는 앨범 커버를 골라준다면.

= 사막에 빨간 공들이 놓여 있는 나이스의 《Elegy》다. 힙노시스의 커리어 초반, 우리가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한 뒤 채택된 첫 작품이다. 당시 우리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로코의 사하라사막으로 가고 싶다고 하자 소속사에서 보내줄 테니 작업은 망치지 말라고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막 위에서 이틀을 소요했다. 해가 지는 저녁의 사막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그때 스톰과 나는 음악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작업도 앨범 커버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게 이 작업이 힙노시스의 티핑 포인트가 됐다.

- 최근에는 영상 작업도 병행한다. 앨범 커버부터 영상까지 폭넓게 작업할 수 있었던 배경은.

= 언제 변화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1980~90년대에 CD가 나오기 시작했고 MTV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스틸 픽처에서 무빙 픽처로 넘어가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영상 회사를 시작했고 우리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 레드 제플린과 같은 밴드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밖에도 많은 TV광고와 장편 극영화를 만드는 등 나는 일하는 방식을 바꿔나갔다. 1990년대에는 폴 매카트니의 월드투어 무대를 제작하면서 그들이 더 큰 스타디움과 같이 더욱 흥미로운 장소에서 일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외에도 유명한 갱스터나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화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수익을 많이 내진 못했지만 만들면서 재밌었고, 특히 영상을 편집할 때 즐거웠다. 음악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록스타와 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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