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케이팝 파티]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혼자만의 사랑>(김건모, 1993)
2024-05-16
글 : 복길 (칼럼니스트)

누군가의 생일이 1월이나 2월이란 걸 알게 되면 왠지 반갑다. ‘빠른’이라 불리는 그들은 나이를 밝힐 때가 되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출생연도를 말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재빨리 ‘학교 나이’를 덧붙이는데, 나는 그때 드러나는 그들의 한국적인 자존심과 뻔뻔한 태도가 너무 좋아서 속으로 키득거린다. 열두달 중 가장 이른 때에 태어났지만, 세는 나이 일곱에 학교에 입학하면서 원치 않게 무리의 막내가 되어버린 태양의 아이들! 또래 그룹이 숫자와 서열을 터득한 시점부터 그들은 늘 자신의 출생을 해명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며 ‘족보 브레이커’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 같은 아이들! 나이에 대한 그들의 완강한 태도는 사는 동안 수없이 시달리며 형성된 애처로운 결과물이다! 언젠가 그들이 ‘빠른’의 원념을 한데 모아 이 미친 서열과 족보 문화를 파괴하는 히어로가 되어준다면….

아니, ‘빠른’은 이미 히어로일지도 모른다. 한살이 많아도 같이 학교를 다녔으니 친구, 한살이 어려도 같은 연도에 태어났다면 친구. ‘빠른’은 이런 방식으로 나이와 나이 사이의 고리 역할을 하는데 그 고리를 계속 연결하다 보면 이론상 10대와 70대도 친구가 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엄청난 시간을 왜곡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찌 초능력이 아니겠는가? 아마 81년생과 97년생을 ‘동년배’로 묶는 ‘MZ세대론’ 역시 세상에 억하심정이 있던 ‘빠른 히어로’들이 분란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음모일지도 모른다.

해운대로 향하는 ‘MZ카’ 안에는 89년생, 93년생, 96년생, 99년생이 함께 있었다. 직장 동료였던 우리는 제법 허물없는 사이였다. (내가 가장 연장자였으므로 이 서술은 무척 주관적임을 밝힌다.) 다섯 시간 반. 그 긴 여행에 음악이 빠질 순 없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MZ’였기에 대부분의 노래를 떼창했는데 어느 구간부터 99년생 막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 “아뇨. 저 이 노래 처음 들어봐요.” “에이, 거짓말하지 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때 오디오로 흐르던 음악은 핑클의 . 그 노래를 모른다는 건 내 세상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K팝’이란 것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하늘이 열렸다면 거기선 분명 파란 비가 떨어져 이 땅에 만물의 싹을 틔운 것인데 어째서 이런 존재의 기원도 모르는 무지한 영혼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89년생인 내가 80년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99년생인 막내도 90년대를 전혀 알 수 없겠지.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에게 ‘90년대’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니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내 세계에 있을 수 없으니까.

평생을 바쳐 90년대를 사랑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 유재석이 아닐까. 나는 유재석이 <압구정 날라리>를 부르고,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고,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열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이름의 예능을 진행하는 걸 모두 보면서 그의 경험과 애착에 질투가 났다. 그래. 나는 90년대를 겪지 못했다. 그 시기의 대부분을 미취학 아동인 상태로 보냈기 때문이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두꺼운 전화번호부책 냄새처럼 일시적인 심상과 파편들이다. 친구 오빠의 방에 붙어 있던 시카고 불스 브로마이드, 이모가 가지고 다니던 캔디 컬러의 삐삐, 사촌 오빠가 가지고 있던 영화 <비트>의 VHS 테이프, 앙드레 김의 옷을 입고 이마를 맞댄 장동건과 김희선, 소년 잡지에 자주 등장했던 김수용의 만화 <힙합>과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까지. 나는 그 파편을 통해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것처럼 말하고, 그 시대를 그리워했다. 그중에서도 김건모의 노래는 내 안의 90년대가 희미해질 때 그 화질을 복구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잘못된 만남> <핑계> <첫인상> <스피드>. 빠른 템포에 여유로운 멜로디를 얹은 그의 댄스곡이 90년대 나이트클럽이나 번화가 풍경을 소환한다면 그의 발라드곡 <혼자만의 사랑>은 듣고 있는 나를 90년대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가주었다.

노래는 김건모의 스캣으로 시작한다. 요즘 시대엔 결코 허용되지 않을 엄청나게 긴 전주다. 나는 그 멜로디와 함께 타임워프를 한다. 손발이 꽁꽁 얼 것 같은 추운 겨울,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비련의 고등학생. (얼굴은 김민희로 설정되어 있다.) 왕가위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파르페를 시킨 뒤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다 삐삐가 울린다. ‘1004’, ‘8282’, ‘8318’. 나는 울면서 하늘색 공중전화로 뛰어간다. 거리에는 김성재와 신은경처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고 전광판에는 두꺼운 화장을 한 김혜수가 트윈케이크 광고를 한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나는 김건모가 표현하는 이 곡 속의 수많은 물결표와 말줄임표를 느끼면서 울부짖는다. 영원히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90년대 초에 겪은 세기의 이별이 생각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90년대 초의 나는 세살. 그러니까 그건 가짜 이별. 경험하지 않은, 상상의 것. 그 사실에 나는 조금 놀라 황급히 자리를 뜨고 엄마를 찾는다. “나는 그때 노래를 하나도 몰라. 바빠서 그랬나.” 90년대에 30대였던 엄마는 서태지도 김영하도 모른다. 방배동의 카페도, 압구정동의 나이트클럽도 가본 적이 없다. “90년대? 진짜 몰라. IMF 때 너무 힘들어서 딱 죽고 싶었던 거?” 엄마의 말에 내가 머릿속으로 구현한 90년대 세상에 균열이 생긴다. 내가 만든 90년대는 그 시대가 갖고 있었던 절망과 위기가 보이지 않는 비현실이자 익숙한 영화, 만화, 음악으로 꾸며낸 가상의 낭만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미화된 과거가 아니라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는 미래인 걸까.

“이 노래는 알아요.” 드디어 이정표에 부산이 보이기 시작할 때 차에서는 하이디의 <진이>가 흘렀다. 잠에서 깬 막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응답하라>인가? <슈가맨>인가? 아무튼 거기에 나와서.” 막내의 말에 나는 90년대에 대한 나의 짝사랑을 청산하고 싶어졌다. 디제잉 권한을 양도받은 막내가 음악을 틀었다. 사이렌을 쉴 새 없이 울리더니 뚜두, 뚜두, 탕, 탕 소리내며 총을 쏘다 분노에 차서 악을 질러대는 깽판 같은 노래를. 나는 90년대를 전혀 모른다고 말하던 엄마의 얼굴로 말했다. “예전에 노바소닉의 <또 다른 진심>이란 노래가 있었어. 웃기지 마라! 제발 좀 가라! 라는 말을 반복하는 오락실 ‘펌프’ 애국가인데… 그런 록 스피릿이 느껴지네….” 나의 말에 막내가 ‘히익’ 소리를 내며 발끈했다. “록이라뇨. 힙합이에요. 그리고 아이돌이에요. 스트레이 키즈는 완전 메이저인데. 가사 들어보세요. 어서 오십시오. 이 가게는 메뉴 고르기가 쉽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 비둘기까지 까치까지 만족시킵니다. 얼마나 친절해요.” 나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2020년의 사운드를 ‘견뎠다’. 짝사랑을 끝내는 것은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나를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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