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 ‘매끄러움’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징적 현상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전세계 시민들을 동일한 인터페이스로 끌어들인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수십억 인구의 손가락이 비슷비슷하게 움직인다. 전세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글로벌 기업의 설계는 매끈한 사용자 경험을 향해 최적화한다. 손가락 밑 터치스크린 기기들의 모양새는 비슷해지다 못해 제조사를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피처폰은 물론 스마트폰 초기 시절만 해도 제각각이던 휴대전화기 디자인은 매끄러움의 극단으로 수렴하고 있다. 세계 어느 도시에 가든 글로벌 직영 커피숍과 프랜차이즈 매장이 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게 분위기나 음식 맛을 탐색할 필요는 없다. 거침없이 입장해 스스럼없이 주문하면 예상된 서비스가 제공된다. 매끈해져가는 이용자 패턴 앞에서 국경도, 문화도, 개인의 특성도 경계를 지운다. 매끈함은 시각·촉각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 환경이 강제하는 행동, 생활양식과 그에 따른 인식까지를 아우른다.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매끈함의 뒤편
언제 어디서든 골라 볼 수 있는 수백만편의 콘텐츠들 뒤편에는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알고리즘이 감춰져 있다. 그것들은 당신에게 개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연령과 성별, 취향과 행적 등에 의해 당신과 유사한 패턴의 수만명을 한 묶음으로 카테고리화해놨을 뿐이다. 중앙아프리카의 배터리 원자재 채굴 회사가 벌이는 노동 착취는 터치스크린 밑에 숨겨진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점원의 고된 감정은 엄격한 매뉴얼 뒤에 가려진다. 숨기고 제거하고 범주화함으로써, 매끄러움은 값을 치른다. 흔한 액션영화들의 현란함은 얼핏 매끄러움과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대개는 고도의 노하우로 매끈하게 상품화한 것들이다. 슈퍼히어로영화는 수십채의 건물을 손쉽게 무너뜨리지만 그 안에 있었을 수천명의 시신과 피와 살은 화면에서 제거된다. 최근 10여년 사이 한 차원 도약한 한국 격투 액션의 테크닉을 보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쌓아올린 한국 제작진의 기술력이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급소 서너곳을 찌르는 칼잡이의 손놀림, 실감나게 피를 내뿜는 피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데도 그럴듯하게 나동그라지는 신체들의 움직임은, 영화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살뜰히 발라낸 다음 잔혹성의 정도를 최적화한 상품 이미지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추(醜)도 매끄러워진다. 오락산업이 추를, 역겨움을 착취한다. 그것들을 소비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역겨운 것이 소비에 맞는 형태로 윤색된 것이다”(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이렇게 기획된 매끄러움은 익숙한 성공을 좇아 낯선 것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범죄도시> 시리즈에 예술적 깊이가 없다거나 극 중 범죄자의 인권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타박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그런 얘기는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하다.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한편의 경찰영화가 개봉 일주일 만에 한국 인구의 10%를 모으고 관람가 인구 대비 약 30%인 1천만 관객 동원이 확실시되는 현상의 동인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두 가지 측면에서 관객에게 안심을 준다. 첫째, 처음 방문한 해외 도시에서 스타벅스를 찾았을 때 예상되는 서비스처럼 경험이 검증한 매끄러움이 우리를 안심시킨다. 둘째, 제 역할 하는 공무원 혹은 강력한 공권력을 볼 때 최근의 한국인은 한결 더 안심하는 듯 보인다. 불공정 사회에서 공정 담론이 유행하듯 안심의 수요는 불안 사회에서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 안심을 위해 각종 고문이 용인된다. 마석도 형사(마동석)가 장이수(박지환)의 성기를 부여잡거나 초롱이(고규필)를 때려눕힐 때, 혹은 나이트클럽 사장들에게 진행비를 뜯어낼 때의 행위들은 유머로 포장된다. 자칫 잔혹하거나 역겨울 수 있는 것들도 눈 녹듯 매끈해진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슈퍼히어로가 악당을 물리치는 오락영화로서 준수한 편이며, 다만 반복되는 패턴이 우려스럽다’는 대체적인 평가를 정리하려면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를 짚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이 인물 구성이다.
성공 모델
<공공의 적>(2002)의 강철중(설경구)은 권투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강력반 형사다. 법보다 주먹이 우선이다. 상대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에 어떤 폭력도 인정된다. 그렇게 “나쁜 놈은 잡는 것”을 선언하고 저돌적으로 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잔챙이’ 범죄자를 붙잡아 고문하고 협조를 얻어낸다. 안수(이문식)와 용만(유해진), 대길(성지루) 등이 그의 물리력과 공권력 앞에 꼬리 내리고 수사를 돕는다. 당시 단역급 배우였던 이문식, 유해진 등이 약방에 감초 같은 유머로 대중에 얼굴을 각인시켰다. 강력반장(강신일)은 시종 핀잔을 늘어놓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강철중을 위해 규정도 거스를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다. 정보과 출신 막내(김정학)가 강철중을 따르며 지원한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팀 마석도’의 서장, 반장, 팀원들이 이 구도에 올라탔다. 배우 박지환, 고규필 등이 이문식과 유해진의 대를 잇는 캐릭터다. 역시 출연 후 인기가 급상승했다. 올해 속편이 공개되는 경찰 액션 <베테랑>(2015)은 서장-반장-주인공-팀원 라인의 남성 연대가 한층 두드러진 사례로, 유머 담당 범죄자-극악무도 빌런-충직한 수하로 그어지는 라인이 익숙한 트랙을 만든다. 이 구도에는 원형이 있다. 감독 류승완이 부단히도 빌려 쓰는 성룡의 작품들이다. 슈퍼캅 액션으로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는 그 교과서적 모델이다. <폴리스 스토리2: 구룡의 눈>(1988)의 후반부, 경찰 상황실과 현장을 무전 연결하며 이뤄지는 팀플레이는 이후 경찰영화들이 줄기차게 차용해 <범죄도시4>에까지 이어졌다. 언급된 작품들 모두 시리즈 1편에서 주조연 캐릭터 빌드업에 각별히 공을 들여 흥행에 성공한 사례들이다.(사진참고)
이 가운데 <공공의 적> 1편과 <범죄도시> 시리즈에 여러 차례 보이는 공통점들을 눈여겨보자. 범죄조직원들뿐 아니라 휘발유(윤병희), 자동문(신현용) 등 나이트클럽 예명으로 등장하는 여럿이 마석도를 돕는다. 특기할 점은 이들 대다수가 지역 방언을 쓴다는 점이다. <공공의 적>의 이문식과 유해진이 소화한 개성 넘치는 사투리를 포함해, 강철중에게 얻어맞고 설설 기는 범죄자들 모두가 방언 사용자다. 마석도의 조력자들은 중국 동북부 지역부터 경상남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출신 지역의 다양함을 자랑한다. 이번 4편에서 진행비를 대는 나이트클럽 사장들은 충청도 출신이다. 마석도의 부하 경찰은 전부 서울말을 쓰는데, 제도권 밖 조력자들의 대사는 사투리다. ‘조폭=지방 출신’이라는 한국영화의 이같은 양식화는 언어사회학에서도 관심 갖고 있는 테마이거니와, 당신이 한국영화를 볼 때 폭력배들의 사투리 대사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글의 주제인 매끈함과 관련해 좀더 심사숙고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문화상품의 어떤 양식화는 우리 인식을 매끈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복과 누적의 차이
시리즈 1편의 중국 동포, 2편의 베트남 공안, 3편의 일본 야쿠자 및 중국 마약조직에 이어 4편에서 한국 경찰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필리핀 경찰관들까지를 이어보자. 할리우드가 제3국을 다루는 태도, 나아가 제국의 욕망이 아른거린다(2편을 미러링해 미국 형사가 한국에 도피한 미국인 범죄자를 잡겠다고 한국 경찰의 지시는 아랑곳 않은 채 서울에서 기물을 파손하고 다니는 영화를 상상해보자). 1편 장이수의 첫 등장 장면에는 그의 명패가 한자로 써 있다. ‘長夷帥’, ‘오랑캐 이’에 ‘우두머리 수’다(중국 동포를 ‘오랑캐 두목’이라고 일컫는다면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이 영화에서 중국 동포 출신 조폭은 물리칠 상대이거나 이용할 대상인 반면 한국 조폭 황 사장(조재윤)은 피해자다. 마석도는 황 사장에게 방검복을 챙겨준다. ‘조폭 타자화’에도 차별이 있는 셈이다. 장이수는 2편에 이어 4편에서도 경찰로 위장해 작전에 투입된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에 사용된 다음 버려진다. 이게 영화의 엔딩이다. 관객들이 웃는다. 다시 한번, 후련하게 나쁜 놈 때려잡는 오락영화에 뭘 이렇게까지. 문제는 이야기를 기획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대개는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은 채 뭔가가 가려지거나 숨겨지거나 제거된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들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자체를 성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는 도시 전체를 때려부수는 이미지의 매끈함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담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왔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을 괴롭히는 건 빌런이 아니라 자신들의 폭력이다. ‘소코비아 사태’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토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찾아와 비난한다. “우릴 위해 싸운다고? 당신 자신을 위해 싸우는 거겠지.” 어벤져스는 절대악에 맞선 자신들의 활동이 또 다른 폭력을 불러 복수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문제로 고뇌한다. 그렇게 시리즈 회차를 거듭할수록 플롯의 반복이 아닌 서사에 층을 쌓아가면, 관객 감상에 얹히는 레이어도 두툼해질 수 있다.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진가구(성룡)가 맞는 위기는 ‘이번 사건에서 손 떼’라는 상부의 손쉬운 설정이 아니다. 보다 조직적인 악당의 계략에 의해 스스로 모순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나간다. 8편까지 활약을 예고한 마석도 형사가 다음에는 남아시아 어딘가로 관객을 데려가 안내하는 곳이 현지인만 아는 맛집일까, 아니면 스타벅스일까. 반복과 누적은 다르다는 것을 제작진은 고민해줬으면 한다.
P.S. <범죄도시4>의 개봉 첫 주말 상영점유율은 81%를 넘었다. 한국 오락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범죄도시>가 일주일에 500만 관객을 쓸어담기보다 3개월간 상영점유율 30% 정도를 유지하며 손익분기점의 2배인 700만 관객을 달성하는 시리즈였으면 좋겠다. 나머지 70%의 상영을 통해 제2의 마동석도, 제2의 박찬욱도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싱클럽을 운영하며 지역 독점을 피하기 위해 회원 수를 제한한다는 마동석 배우 역시 그런 풍경을 원하는 제작자라고 여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