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그녀가 죽었다', 인생샷의 배후를 스릴러로 탐구하기
2024-05-15
글 : 남지우 (객원기자)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의 악취미를 따라가며 영화는 시작한다. 버스 옆자리 승객의 핸드폰을 훔쳐보거나 편의점 창 너머로 동네 사람들 신상 캐기를 즐기는 그의 관음증은 직업적 특권을 만나 정도가 깊어진다. 정태는 부동산 매물을 내놓으면서 키를 맡긴 사람들의 거주지에 몰래 들어간다.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칙으로 무장한 그는 오래된 전구를 갈거나 방 청소를 해준 뒤 다 쓴 핸드크림, 줄넘기, 다시는 읽지 않을 러브레터 등 소소한 전리품을 하나씩 챙긴다. 취미 생활을 끝내고 온 그를 반기는 거대한 창고. 족히 수십채의 집들을 드나들어온 듯 보이는 정태의 전리품 창고는 기막힌 기행의 결과다. 부동산을 찾아온 손님 이자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인 한소라(신혜선)는 그런 정태의 다음 타깃이다. 소라의 집 주소와 인스타그램 포스트는 스토커에게 한 여자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의 보고로 활용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레스토랑과 명품 가방을 자랑하면서도 길고양이 보호와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44만 팔로워의 모습에 정태는 집착적인 흥미를 느낀다. 지고지순한 팬심일까, 꼬여버린 애정일까. 다 쓴 전구를 몰래 갈아놓기 위해 소라의 집에 들른 어느 날, 정태는 흉기에 난도질당해 피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녀가 죽었다>는 ‘뭐든 보려는’ 남자와 ‘뭐든 보여주려는’ 여자가 살아가는 소셜 미디어 시대를 스릴러 문법으로 탐색하는 영화다. 남자들은 모두 관음증의 스토커로, 여자들은 모두 노출증의 SNS 중독자로, 각 젠더가 취하는 시선의 방향이 거칠게 이분화된 세계를 그린다. 배우 변요한과 신혜선이 성별의 얼굴을 대표하는 이룩하기 어려운 중책을 맡았다는 점을 알고 연기를 주의 깊게 관람하면 좋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중소형 규모의 한국 상업영화들의 주연으로 견인해온 신혜선 필모그래피의 연장이라는 점, 중견급 30대 여성배우의 티켓 파워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산업의 관심도 상당하다. 극 중 유일하게 중성화된 캐릭터인 ‘오 형사’ 역의 배우 이엘이 어느 정도의 무게중심과 현실성을 더한다는 점 역시 스리 톱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 플레이가 나쁘지 않게 구성되었다는 증거다.

<그녀가 죽었다>의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인스타그램을 살아가는 젊은 여자의 진짜 삶을 추론하려는 시도가 있다. 여성 유저들이 화려한 소셜미디어를 운용하는 데엔 각기 다른 동기와 욕망이 있을 테지만 이 영화의 상상력은 불우한 가정사, 성매매 산업에 취약하게 연루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따분한 추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출판계 화제작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쓴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는 여성 인스타그래머들이 전시하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숙고 없는 비하를 “된장녀나 김치녀의 SNS 버전”이라 분석하며 보이는 자의 배후에는 언제나 보는 자가 있음을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 소셜미디어 스릴러란 장르에 뛰어든 신인감독 김세휘는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이 시선의 권력을 의아하게 바라보기를 시도하면서도 장면과 캐릭터, 이야기를 한데 엮어 박진하게 묘사하는 데엔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

CLOSE-UP

화장한 유골을 만지면 어떤 느낌이 들까. 소라의 시신을 목격한 정태를 압박하는 협박범의 편지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납골당까지 침입한다. 어머니의 유골이라는 낯선 감촉을 느끼며 그 안에 처박힌 증거물을 수습하는 정태와 그가 흘리는 눈물은 비도덕적 인간에게 오싹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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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포비아> 감독 홍석재, 2015

드라마 <미생>(2014)으로 전 국민의 눈도장을 찍기까지 배우 변요한은 독립영화계를 먼저 풍미한 대들보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25만 관객을 동원했던 <소셜포비아>는 소셜미디어와 불운하게 엮이는 우리 시대 청춘의 표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녀가 죽었다>와 포개진다. 10년 뒤 우리 모습은 얼마나 더 이상해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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