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도파민의 시대에 생의 의욕을 집요하게 고양하는 아드레날린 시네마
2024-05-22
글 : 정재현

전력망 붕괴, 폭염과 팬데믹, 화폐 가치의 하락….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인류를 위협하는 대혼란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된다는 스크린 밖 진리를 강조하며 영화 속으로 뛰어든다. 모든 자원이 품귀한 파멸의 시대, 영화의 작중 배경은 문명 붕괴 후 45년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지의 풍요가 가득한 녹색의 땅에 살던 소녀 퓨리오사(애니아 테일러조이/알릴라 브라운)는 바이커 군단에 납치된다. 퓨리오사의 어머니 메리 조 바사(찰리 프레이저)는 맹렬한 집념으로 바이커 군단을 추격하지만 끝내 딸의 눈앞에서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그날 이후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리틀 디멘투스’라 불리며 그와 바이커 군단이 벌이는 흉포한 약탈과 폭력에 내내 노출된다. 바이커 군단은 가스타운을 정복하기 위해 임모탄 조(러치 험)가 압제하는 시타델에 쳐들어가고, 민족간 혈맹을 이유로 퓨리오사를 임모탄 조의 신부로 넘긴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신부들이 처한 유린을 목도한 후 ‘화물꾼 소년’으로 둔갑해 유능한 정비공으로 살아간다. 한편 시타델의 근위대장 잭(톰 버크)은 조수로 일하는 퓨리오사의 전사로서의 자질과 복수심을 간파한다. 잭은 퓨리오사에게 시타델로부터 벗어날 힘을 가르쳐주겠다 약조하고 둘은 황무지의 전사로서 무공을 쌓는다. 세월이 흘러도 황무지의 무법자로 군림하는 디멘투스가 무기농장을 점령하려 하자, 퓨리오사와 잭은 디멘투스와 바이커 군단을 처단하려 나선다. 그리고 퓨리오사의 심중엔, 디멘투스를 향한 원한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후속작이 9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제목에 쓰인 사가(saga)가 말해주듯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연작을 영웅소설 혹은 대하소설로 만들려는 조지 밀러 감독의 야심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영화는 의수를 단 사령관 퓨리오사가 어떻게 전사가 되었는지 고전소설 속 영웅의 일대기 구조를 차용해 148분간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놓는다. 전사(前事)의 여백을 두고도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내러티브에 만족했던 관객이라면 프리퀄의 스토리텔링이 다소 생경하거나 불만일 수 있다. 외전의 특성상 설명이 불가피한 서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조지 밀러 감독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러닝타임 중 애니아 테일러조이의 대사는 30줄 정도에 불과하다”(<텔레그래프>)라고 밝혀 화제를 모은 인터뷰를 떠올리지 않아도, 영화는 대사 대신 프레임으로 언어 이상의 감동을 전하며 전작의 매력을 계승한다. 퓨리오사의 머리카락이 절벽 끝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숏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든지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퓨리오사의 전사를 단 한숏으로 드러내는 순간이 유독 그렇다. 고강한 액션 역시 막강한 활력을 자랑한다. 특히 퓨리오사의 액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은신과 등반 위주의 동작에서 카 체이싱과 격투로 나아가는데, 매 액션 시퀀스마다 퓨리오사만의 액션이 지닌 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살아 있다. 유토피아가 사라진 시대에 어떤 가치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지에 관한 조지 밀러의 날카로운 통찰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CLOSE-UP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눈’이다. 퓨리오사에게 고통을 선사한 숙적인 동시에 퓨리오사의 자질을 발견해낸 멘토인 디멘투스는 퓨리오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직시하도록 강요하다가도 다른 경우엔 눈을 감아도 좋다고 말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망원경과 조준경에 눈을 대고 적들을 응시한다. 와중에 가장 형형한 눈빛은 역시 퓨리오사를 연기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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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메이커>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2015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호주 출신 감독 조지 밀러와 호주 출신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다. 호주 출신 영화인들이 사막에 대해 지닌 은근한 애향심은 말해 입 아프다. <드레스메이커>는 호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조슬린 무어하우스 감독이 만든 패션영화다. 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는 배우 리암 헴스워스가 호주 사막에서 남성미를 과시하며, 영국에서 장시간 거주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보다 훨씬 긴 세월 영국에서 자라고 활동한 케이트 윈슬럿이 퓨리오사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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