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일요일 – 임수연 기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어제 본 작품들의 <스크린 데일리> 별점을 체크하는 것이다. 리뷰와 별점을 함께 공개하는 <인디와이어>와 <가디언>은 좀더 유심히 살펴본다. 그럼에도 이 별점은 개인적인 감상이나 체감과 따로 갈 때도 많다. 이를테면 어제 공개됐던 자크 오디아르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스크린 데일리> 별점은 2.4점으로 평이한 수준이지만 현지 기자 시사회 반응은 가장 좋았다. 중간에 나가는 기자가 거의 없었고 웃음도 자주 터졌고 프레스 상영이 끝난 후 드물게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해외 감독 인터뷰 전후에 스몰토크를 나눈 외신 기자들 중 올해 칸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로 <에밀리아 페레즈>를 꼽는 이들만 3명을 만났다. 영화제 초청작 답지 않게 ‘통속극’ 같은 스토리가 먹힌 걸까? 갱단의 두목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남자가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며 죽은 척 위장하고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몇 년 뒤 전부인과 자식들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얼굴에 점찍고 나타난 전남편을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야? 비장한 상황임에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지만 이는 영화가 처음부터 의도한 코미디가 맞다. 주인공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기한 실제 트렌스 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폐막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미드나잇 섹션에 초청된 <발코네트>는 심야가 아닌 오전 상영 회차로 보기로 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주연 배우 노에미 멜랑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셀린 시아마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은 TV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 역을 연기 중인 배우 엘리스, 캠걸로 활동 중인 루비, 잘생긴 남자를 훔쳐보며 로맨틱 코미디 소설을 구상하는 작가 지망생 니콜 세 여자 친구. 이들이 강간 가해자 남성의 시체를 은폐하느라 벌어지는 요란한 소동을 담은 호러 코미디라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반드시 노려야 할 작품이 아닐까 ‘오지랖’을 떨어본다. 전반적으로 남성적 시선(male gaze)이 아닌 평등한 관계를 담은 카메라를 보여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연장선상에서 읽어낼 거리가 많다. 카메라 앞에서 가슴이나 음부를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엘리스이지만 그도 부부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여성의 자기 신체 긍정과 젠더 기반 폭력이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5월 19일 일요일 – 조현나 기자
감독 그리고 배우에게 칸영화제 초청은 어떤 의미일까. 기자로서 궁금했던 신작을 프리미어 상영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리라.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로 <주먹이 운다> 이후 19년 만에, 서도철 형사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2018년 <공작> 이후 6년 만에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정해인 배우에게는 이번이 첫 칸 방문이다. 칸영화제에 방문한 배우들은 비슷한 행사 루트를 거치는데 그 중 하나가 포토콜이다. 포토콜 행사가 시작되면 배우들은 국내외 사진 기자들이 가득 모인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해외팬들과 인사를 나눈다. 영화가 상영된 후에는 국내 취재 기자들을 만나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하고, 마찬가지로 해외 매체와도 따로 인터뷰 시간을 갖는다. 배우들은 대체로 차기작 촬영 도중 칸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아 가능한 빨리 귀국을 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고, 때문에 이 모든 일정이 바쁘게 들어간다. <베테랑2> 상영은 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반에 시작해 새벽 2시 반에 끝난다. 영화 반응이 좋아서 기립박수 시간이 길어질 경우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질 것이다. 그리고 21일 오전 10시 반에 감독, 배우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된다. 준비 시간이 부족해 걱정이 되지만 작품만 좋다면 오히려 질문 짜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베테랑2>가 <베테랑>보다 훨씬 어두운 작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과연 얼마나 더 어둡고 변화된 세계가 펼쳐질까. 올해 뤼미에르 극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영될 한국영화.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걸맞은 강렬한 액션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5월 19일 일요일 – 김혜리 기자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이것은 내가 아니다> 상영 전 드뷔시 극장 단상에 오른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경쟁부문에 꼭 포함시켰을 영화”라는 말로 기대감에 불을 지핀다. 40분 남짓한 <이것은 내가 아니다>는 퐁피두 센터가 기획한 전시 일환으로 만들어졌으나 전시가 무산되면서 남겨진 레오스 카락스의 에세이 영화다. 어떤 영화인지에 대한 설명은 영화 시작 3분만에 객석 곳곳에서 새어나온 이름으로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고다르!” 르네 마그리트인줄 알았더니 역시 고다르였다.
꿈에 잠긴 감독의 숨소리로 시작하는 이 중편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영화사에서 스크랩한 장면과 카락스 본인의 작품 속 이미지-특히 젊은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유년기에 사랑했던 틴틴 만화, 최근의 전쟁 뉴스, 어린 딸의 모습을 담은홈비디오 그리고 거대한 서체로 화면에 떠오르는 (카락스 특유의 위트가 담긴) 텍스트를 몽타주해 카락스라는 존재를 이루는 물질과 파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여행 직전 서울에서 산 틴틴 티셔츠를 입고 객석에 앉아있던 나는 휘파람을 불 뻔했다. 레오스 카락스는 어떻게 이미지와 시네마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까 묻는 동시에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름다운 몇몇 순간들. 하나. 감독의 어린 딸이 달리며 아빠에게 질책하듯 묻는다. “아빠 왜 어젯밤 꿈에서 나를 안 구해줬어?”감독 아빠가 대답한다. “네 꿈의 연출자는 너란다.”그러니까 우리가 곧 영화다. 둘. 레오스 카락스가 자신감 넘치는 보이스 오버로 “나는 한번도 시점숏을 쓴 적이 없다.”고 선언하더니 곧장 주워담는다. 감독 스스로 예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쁜 피>의 줄리엣 비노쉬가 드뷔시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에 떠오르고 카메라가 끌리듯 다가간다. 줄리엣이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러닝타임이 짧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넘쳐나며 시네마에 대한 신심을 다짐하게 해주는 영화. 칸에서 환대받을 만한 조건의 총망라다. 터져나온 우렁찬 환호에 카락스 감독과 배우 드니 라방 그리고 동행한 인형 아네트-이번에도 출연했다-가 화답했다. 카락스는 나아가 그 자리에서 담배에 불을 붙임으로써 예술가의 무한 자유를 옹호할 절호의 기회를 놓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님 그건 권력이기도 하다는 걸 아시지요?
영화저널 <노트북>이 올해 칸 특별판에서 인용한 통계에 의하면 경쟁 부문 진출이 처음이거나 두 번째인 영화가 폐막식에서 상을 타는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강간 복수극 <리벤지>로 데뷔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경쟁 부문에 올린 <더 섭스탠스>의 조건은 유리하다. 두 번째 장편인데다가 최근 3년간 두 차례 황금종려상을 프랑스 여성 감독이 가져간 바 있고, 작품의 톤마저 앞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티탄>과 <슬픔의 삼각형>을 연상시킨다. 데미 무어가 전성기를 지난 중년 배우 역으로 복귀한다는 사실도 언론의 주의를 끈다.
TV 홈 트레이닝쇼를 진행하는 왕년의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링은 채널 경영자 하비(!)가 젊은 여성을 쓰기 위해 자신과 재계약을 맺지 않을 작정임을 알게 된다. 곧이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더 섭스탠스’라는 장기 복약 프로그램을 은밀히 권유받아 시도하게 된다. 안티에이징을 넘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주는 약물은 수(마가렛 퀄리)를 불러내고 젊음과 미모로 승승장구하는 수는 1주일씩 엘리자베스와 교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더 섭스탠스>의 제목은 약물을 뜻하는 동시에 한 여성의 ‘본체’가 무엇인지 묻고 있기도 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지닌 이 영화는 여성에게,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집요하게 작동하는 연령차별과 외모지상주의를 신체 호러를 통해풍자한다. 이를테면 “저 여자 가슴이 얼굴 한가운데에 있었어야 하는데.”같은 차별 발언이 결국 글자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더 섭스탠스>의 세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파르자 감독은 이미 널리 알려진 모순을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엘리자베스와 수에 대해 영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속성도 외모와 나이 외에 별로 없다. 대신 파르자 감독은 대사를 최소화하는 한편 섭스탠스 투약과 주사에 의한 신체변형의 과정을 독창적으로 시각화하는 데에 아이디어와 능력을 집중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의 비판이라고 믿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