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설계자’, 프로가 저렇게 우연에 기대서야
2024-05-29
글 : 김철홍 (평론가)

보통 때였다면 무심결에 넘겼을 만한 사망사건 하나가 서울 한가운데에서 일어난다. 블랙아이스로 인해 중심을 잃은 버스가 보행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안타까운 사건. 이 일의 미스터리는 사망자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연이 아닌 조작된 사건이라고 믿는 한 사람이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살인을 설계하는 일을 하는 영일(강동원)이다. 그 버스 사고로 아끼는 파트너를 잃은 영일은 그날 이후 모든 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이 세상을 조작하는 만큼, 자신을 노리는 상대 역시 치밀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의심은 설계팀에 분열을 일으키고, 다음 작업까지 영향을 준다. 타깃은 전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새 검찰총장 후보인 주성직(김홍파), 의뢰인은 그의 딸인 주영선(정은채)이다. 영일은 수백대의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 현장에서 우연을 조작하려고 하는데 바로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노리고 있는 거대한 존재를 감지한다.

<설계자>는 <범죄의 여왕>을 통해 독립영화로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던 이요섭 감독의 신작으로, 이번 영화 역시 범죄스릴러 장르다. 전반부는 설계자 영일이 어떻게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지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후반부에는 영일이 세상을 떠난 파트너에 얽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비밀조직의 정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영일이 있으며 그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관찰자로 그려진다. 그런 영일은 자신의 자리를 넘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전지적 위치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데, 그로 인해 <설계자>는 단순한 장르영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다층적인 작품이 되기도 한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 하우저(이동휘) 캐릭터를 비롯해 영화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유튜버들의 활용 역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연이란 존재하는가. 이는 영화 속 주요 사건인 정치 스캔들과 맞물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정바오루이 감독의 2009년작 <엑시던트>를 이요섭 감독이 직접 각본화했다. 원작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앞서 말했듯 주요 사건에 정치 이슈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설계자>가 유명 장르영화의 특별한 소재를 단순히 베껴온 영화가 아닌, 개성 있는 한 감독의 재해석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전개가 다소 복잡하고 상대적으로 밀도가 떨어지는 순간이 없지 않지만, 이 또한 실수가 아닌 ‘설계’가 아닐까 되묻게 되는 영화다. 반면 장르영화에서 늘 특별한 감흥을 일으켰던 강동원 배우는 이번 영화에선 다소 익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극 전체를 홀로 이끌어가야 했기에 그 아쉬움이 더 부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맡은 영일을 비롯해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예상 가능한 동선을 밟는다는 것 또한 스릴러영화로서는 단점으로 보인다.

CLOSE-UP

<설계자>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카메라가 만든다. 영화의 카메라가 아닌 언론의 카메라다. 영일의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됨에 따라 희생자가 발생하고, 그러자 현장에 있던 모든 카메라가 그 모습을 제대로 담기 위해 플래시를 터트린다. 그중 누군가는 “클로즈업!”을 외치기도 한다. 영일은 이것까지 설계한 것일까? <설계자>의 카메라는 그 괴물 같은 카메라들을 한 화면에 담아 다시 우리에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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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감독 안국진, 2024

가짜 뉴스와 보이지 않는 조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 최근 개봉작인 <댓글부대> 역시 <설계자>처럼 진실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장르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설계자>가 사회 혼란을 야기한 그 주체의 입장에서 그려낸 이야기라면, <댓글부대>는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 즉 우리가 오랫동안 굳게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대상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을 믿을까 말까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우리를 찾아왔다는 사실만큼은 그냥 웃어넘겨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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