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자연의 TVIEW] 콘텐츠로서의 민희진 기자회견
2024-06-07
글 : 이자연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두 차례 진행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사건이나 논쟁의 단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특히 두 번의 기자회견은 공통적으로 시각 정보를 발판 삼아 화제성을 이어갔다. 여성 대표가 주도하는 기자회견 자체가 워낙 드문 장면이었거니와 보편적으로 예측 가능한 공식 석상 복장과 달리 초록색, 노란색 등 유채색의 캐주얼한 의상은 기존 ‘공식’을 무시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되었다. 등장인물의 역동적인 표정은 또 어떤가. 어른의 책임을 말하며 오열하다가도 “죽긴 내가 왜 죽어” 하고 금세 얼굴을 갈아 끼우고, 기자의 면박에 “저를 혼내실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명확한 목소리로 선을 긋는 장면은 그 어떤 드라마에서보다 입체적이다. 그런 민희진 대표를 향한 2030 여성들의 지지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콘텐츠적 데자뷔랄까. <마녀의 법정> 마이듬(려원),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차현(이다희), <런 온> 서단아(수영) 등 일을 잘하기 위해 차라리 ‘미친년’이 되기로 선택한 가상 인물에 대한 환호가 지금의 현상 위로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가상의 세계에 국한된 특징이라고 여겨온 인물의 극적 실재를 경험한 여성들은 구체적 공감을 기반으로 민희진쪽의 손을 든다. 다만 드라마처럼 단 하나의 엔딩으로 깔끔하게 종결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바라보기만 하는 시청자 역할을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한다. 해당 기자회견을 단순한 기업 분쟁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여성들은 민희진 대표의 호소를 토대로 공통된 경험을 교차시켜 연대를 이뤘다. 고위 간부가 직면한 한계가 내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깨달음과 실천적 행동.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지닌 콘텐츠적 속성이 남긴 여운이다.

CHECK POINT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민희진 대표를 “가부장적인 직장과 싸우는 젊은 여성”이라고 표현했지만 같은 사안을 다루는 국내 미디어의 관점은 사뭇 다르다. 거대 모기업과 싸우는 젊은 여성 임원을 두고 ‘뉴진스맘’이라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장을 헤드라인으로 뽑는 뉴스 매체들을 비롯하여 이를 화보 패러디로 차용한 성인잡지 <맥심 코리아>, 희화화로 사건의 무게를 축소한 <SNL 코리아>까지 무딘 더듬이가 대중의 눈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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