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릿 조핸슨이 챗GPT 4o의 음성 버전 중 하나가 자신의 목소리와 거의 같다는 점을 문제삼으며 ‘오픈 AI’(OpenAI)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왜 하필 스칼릿 조핸슨인가? 그는 영화 <그녀>에서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의 목소리연기를 맡았던 배우다. 챗GPT 4o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샘 올트먼이 그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도 함께 전해졌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사만다의 목소리가 “소비자들이 인간과 인공지능에 관한 급격한 변화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SF영화와 과학기술의 관계, 특히 할리우드영화와 실리콘밸리 테크기업 사이의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인공지능 상상하기>(Imagining AI, 2023)라는 책에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있는 기술과인간연구소 소장인 스티븐 케이브와 같은 대학의 레버헐름 미래지능센터 선임연구원 칸타 디할은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캘리포니아 피드백 루프’라고 명명한 바 있다. 영화 <아이언맨>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와이어드’(Wired)나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 같이 테크 분야의 영향력 있는 출판물 표지에 등장한다. 스타크 역할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연기에 영감을 준 인물이 일론 머스크임을 밝혔다. 머스크 역시 자신의 일에 SF가 영감을 준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심지어 <아이언맨2>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니 올트먼이 조핸슨에게 한 제안은 놀랄 일이 아니다. 챗GPT 4o 출시 직후 올트먼이 자신의 SNS에 ‘그녀’(her)라는 단어를 올렸을 정도니 더더욱. 오히려 이러한 루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핸슨이 올트먼의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자신과 흡사하게 들리는 음성 버전을 삭제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가 진짜 목소리를 내준 덕분에 영화 속 인공지능과 실재 인공지능을 동일시하는 루프에 균열이 생겼다. 하마터면 올트먼만큼이나 <그녀> 속 ‘테오도르’에 빙의한 이들을 수없이 목격할 뻔했지 뭔가.
그러던 중 최근 한 SNS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질문을 접하게 됐다. 질문은 두 가지다. 우선 여성에게 “숲속에 단둘이 있어야 한다면 남자와 곰 중 어느 쪽과 함께 있겠는가?”를 물었다. 안전을 이유로 ‘곰’을 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어서 남성에게는 “여자와 나무 중 어느 쪽에 감정을 털어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곰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나무를 선택하는 남성들이 많이 보였다. 나무는 (여자와 달리) 자신의 말을 언제든 잘 들어주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화형 나무, 아니 대화형 인공지능을 여성과 연결하는 또 다른 루프, 어쩌면 캘리포니아 루프보다 더 오래된 루프가 바로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이 낡은 루프에서 벗어난 인공지능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머지않은 미래에 혹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어딘가에서 ‘루프 밖 인공지능’이 나오는 영화를…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