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는 장르영화의 기술을 투과해 철학적 질문을 던져온 드니 빌뇌브 감독이 하드 SF의 대가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기본적인 모티브와 골자는 같다. 외계 비행체가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12개 지역에 동시다발로 나타난다. 각국 정부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외계 생명체와 접촉을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언어 해독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애덤스)와 이론물리학자 이안 도널리(제러미 레너)가 지명된다. 두 사람은 매일 외계 비행체를 찾아 ‘일곱개의 발’이란 의미를 담아 헵타포드라고 명명된 외계인과 대화를 시도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너희가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이 질문을 이해시키기 위해 두 학자는 최대한 많은 어휘를 공유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워나간다.
글이 영상화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 감각을 이해시키는 방식이다. 영화는 외계인이 시제도 앞뒤 방향도 없는 원형의 비선형 철자법을 쓴다는 점에서 출발,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는 사피어 워프의 가설(언어 상대성 가설)을 인용해 그들의 목적론적 사고 체계에 바로 접근한다. 루이스는 일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지각하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직선의 선형적인 시간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파편적인 미래를 동시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헵타포드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서로 ‘페르마의 원리’를 등장시킨다. 원작의 물리학자 게리(영화 캐릭터 이름과 다르다.-편집자)는 헵타포드들이 페르마의 원리에 반응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루이스에게 묻는다. 이름만 거창할 뿐 한국 정규교육에서 ‘빛의 굴절’은 초등학교, ‘굴절의 법칙’은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익숙한 개념이다. 빛은 서로 다른 물질의 경계면에서 굴절한다. 만약 빛이 공기에서 물로 진행한다면 매질의 속력이 더 느린 물쪽으로 굴절한다. 그리고 이는 빛의 이동시간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따른다. 페르마의 원리다. 여기서 잠깐. 미분을 변화율, 적분을 면적이라고 러프하게 이해하는 툴을 가져와보자. 함수를 미분, 그래프의 변화율이 0이 되는 순간은 최댓값 혹은 최솟값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최대 혹은 최소가 되게 하는 변수를 찾는 방법을 ‘변분법’이라고 일컫는다(변분 원리는 미시경제학에서 이윤 극대화를 가능케 하는 생산량을 구하는 과제나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데도 쓰인다). 빛이 이동시간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따른다는 문장을 좀더 수학적으로 다시 쓰면, 빛은 가능한 모든 경롯값을 보여주는 함수를 변분했을 때 0이 되는 시간을 택한다. 중요한 것은, 외계에서 온 헵타포드는 페르마의 원리를 빛의 굴절에 관한 가장 단순한 설명으로 간주하며 방금 당신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변분을 대수학보다 더 초보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헵타포드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수학 체계를 갖고 최소나 최대를 자명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방식으로 지각한다.
“힘이 작용하면 가속도가 붙는다.”(F=ma) 통상적인 물리법칙은 원인(F, 힘)과 결과(a, 가속도)가 선명한 데 반해 페르마의 원리는 어딘가 이상하다. 빛의 가장 빠른 경로를 알기 위해서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빛은 자신이 어디로 움직일지 결정하기도 전에 먼저 ‘최소화’라는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네 인생의 이야기>는 “페르마의 원리는 합목적적이고 거의 목적론이기까지 하다”고 설명한다.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원작보다 물리학자의 비중과 수학적 설명을 덜어낸 대신 언어학자 루이스에게 집중한다. 이는 단지 대중영화로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각색이 아니다. 기하학 대신 기억을 섞는 절묘한 몽타주가 <컨택트>의 수학기호가 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헵타포드의 회문식 언어처럼 루이스의 내레이션을 통해 연결된다. 루이스의 과거를 담은 플래시백으로 오인하게끔 그의 미래를 예고한 플래시포워드를 구성하며 영화 중반까지 혼란을 주는 것은 관객 또한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사고의 전환을 맞는 각성을 영화 형식적으로 경험케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의 동시적 지각이 가능하다면 현재는 과거에 의해, 미래는 현재에 의해 고정되어 바뀌지 않는다. 결정론의 반대편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정해진 미래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자유의지가 가능하다면, 이는 미래를 알고 있고 이는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만약 삶이 정해진 과정과 끝을 향해 흘러간다면 이는 허무주의로 귀결될까? 루이스는 헵타포드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이안과 헤어지고 딸 한나가 불치병으로 죽는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대체 불가능한 사랑이 있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의 총합이다. 루이스는 무한한 삶의 갈래 중 이안과 한나가 주는 기쁨을 감각하는 길을 택해야 그가 지향하는 가치의 총량이 극대화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아닐까. <컨택트>는 수학의 변분 원리, 최대치의 설득을 아름다운 플래시포워드를 통해 해내는 영화다. 그리고 이는 무기력이 아닌 루이스의 능동적인 선택이 분명하다고 대변하는 에이미 애덤스의 단호한 얼굴은 영화 매체와 배우의 힘이다.
혹자는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만 등장하는 클라이맥스, 지구에 온 목적이 “무기를 주다”라고 답한 외계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분열하는 세계 각국의 갈등이 지나치게 상업 블록버스터영화 같다거나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나이브하다고 비판한다. 미래를 함께 지각함으로써 중국군 사령관에게 전해야 할 말을 떠올린 루이스의 능력이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살인사건을 막는 프리크라임처럼 편의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컨택트>의 외교 갈등은 영화가 줄곧 다루는 언어와 소통의 담론을 국제 정세로 확장한 것에 가깝다. 방사능복을 벗고 기꺼이 헵타포드와 직접 교류하기로 결심한 루이스가 삶이라는 숙제를 이전과 다른 태도로 수행하게 된 것처럼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다른 사유 방식을 열어준다. 이는 학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문명의 초석이 언어인지 과학인지 논쟁했던 루이스와 이안은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 (“당신은 언어에 대해 수학적인 접근 방식을 쓴다”). 언어가 과학을 통해 발전하고 과학이 언어를 통해 풍부해지는 것처럼 <컨택트>는 예술 역시 과학을 통해 보다 풍요롭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과학은 단지 영화를 통해 교양 지식을 얻는다는 식의 교육용 자료를 넘어서서 예술을 창작하고 읽는 매력적인 프리즘이 된다. 앞으로 이 코너가 영화 애호가들에게 영화를 읽는 새로운 앵글을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임수연의 이과 감성
분명히 어릴 땐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씨네21> 기자가 되어 있었다. 대신 영화를 조금 다르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