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맨>
넷플릭스 |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글렌 파월, 아드리아 아르호나 / 공개 6월7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존재에 관한 링클레이터식 농담, 그리고 힘 빼기의 기술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배우 글렌 파월의 공동 각본으로 빛을 보게 된 실화 바탕의 범죄영화인 <히트맨>은 가벼운 몸집으로 불쑥 심오한 훅을 날리는 영화다. 2001년, 미국 잡지 <텍사스 먼슬리>는 10년간 60여명에 대한 청부살인을 의뢰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남자는 사실 청부살인 근절을 위해 경찰이 고용한 가짜 히트맨으로, 낮에는 강단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다가 밤이 되면 냉정하고 마초적인 킬러로 변신한다. 정확히는 기가 막히게 연기한다. 철학 교수 게리(글렌 파월)는 의뢰인으로부터 명확한 살해 지시를 이끌어내기 위해 론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킬러를 연기하고, 연극적 정체성의 열망도 함께 충족해나간다. “자아는 우리가 어디에 있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는 그는 남편의 살인을 의뢰한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물론 소심한 게리가 아니라 유능한 남성 론으로서다.
<히트맨>은 적잖이 평범한 인상을 유발하는 소품일 수도, 감독과 이력과 결부해 장면 뒤편의 흥미로운 그림자를 생성해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어느 쪽이건 자아와 페르소나의 교차, 혼란, 중첩을 다루는 링클레이터의 능란한 솜씨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리가 매디슨에게 실체가 탄로난 이후부터 영화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두 인물로 양립하려는 열정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마치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생존한 링클레이터 자신의 환유처럼 다가온다. 그는 12년씩 한 소년의 생애를 좇는(<보이후드>) 동시에 <슬래커> <버니> <스쿨 오브 락>을 만들어온 감독이다. 말하자면 링클레이터 또한 자신의 인물들처럼, 혹은 우리 모두처럼 공연을 한다. <어디갔어, 버나뎃>에 이은 일탈하는 정체성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대화 신의 리듬, 컨셉추얼한 장면들이 주는 재미는 확실히 한수 위다. /김소미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웨이브 | 감독 크리스 스위니, 던 섀드포스 / 출연 아네트 베닝, 샘 닐, 잭 레이시, 조지아 플루드 / 공개 6월7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스포츠와 서스펜스 사이의 아득한 간극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은퇴한 조이(애넷 베닝)와 스탠(샘 닐) 부부는 적막한 저택에서 평화로운 황혼기를 보내는 중이다. 어느 늦은 밤 그들의 집에 급작스럽게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정체 모를 여성 사반나(조지아 플루드)가 데이트 폭행을 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며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한다. 하룻밤 사이 조이와 사반나는 금방 친구가 되고, 사반나가 조이의 집에 눌러살기로 하면서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여섯달 뒤 조이가 실종되면서 그녀의 자녀인 트로이와 로건, 브룩, 에이미는 실종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다.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을 쓴 리안 모리아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스포츠 장르와 추리 장르를 넘나드는 내러티브와 캐릭터 하나하나의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캐릭터의 깊숙한 트라우마에 닻을 내리지 못하는 평범한 연출이 아쉬움을 남긴다. /김경수 객원기자
<브리저튼> 시즌3 파트2
넷플릭스 | 감독 톰 베리카, 트리시아 블록 / 출연 니콜라 쿨란, 크라우디아 제시, 루크 톰슨, 폴리 워커, 니콜라 코클런 / 공개 6월13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오만과 편견>에서 <자기만의 방>으로 부화하기 직전의 순간
19세기의 영국 사교계는 멀리서 볼 때는 우아하지만 가까이서 볼 때는 더없이 냉혹하다. 여왕의 눈에 들지 않으면 외면당하기 일쑤며 베일에 싸인 채로 활동하는 작가 레이디 휘슬다운의 펜 하나로 개인의 평판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브리저튼> 시즌3 파트2는 브리저튼 가문을 중심으로 한 제인 오스틴풍 로맨스를 다룬 지금까지의 서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파트1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페넬로페의 성장담을 다루지만 로맨스보단 여성의 자아 정체성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파트1이 여성의 우정과 연대에 초점을 두었다면 레이디 휘슬다운임을 숨긴 채 살아온 페넬로페가 작가로의 삶과 여성으로의 삶 중 무엇을 택하느냐 고민하는 과정을 담으며, 이전보다 더욱 진보적인 여성관을 그려낸다. 시즌1, 2에서 드러났던 화려한 비주얼과 격정적인 로맨스도 여전하지만 서사가 시즌1만큼 치밀하지는 않다. /김경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