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마지막 슛 사인을 건네며, 손홍주 전 <씨네21> 사진기자를 보내는 오계옥 사진기자의 에세이
2024-07-05
글 : 오계옥

지난 6월18일 밤 손홍주 전 <씨네21> 사진기자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1995년 2월 “<한겨레>가 만드는 영상 주간지” 창간준비팀에서의 첫 만남부터 불과 한달여 전의 마지막 만남까지, 손홍주 선배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떠오른다.

창간 초기에 매주 무슨 내용으로 책을 채울 수 있겠냐는 영화계 안팎의 우려를 뒤로하고 <씨네21>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손홍주 기자의 역할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구성원 사이에서 유일한 잡지 경력자였던 그의 역할은 당시 <씨네21>의 시작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때? 이렇게 하면 멋질 것 같지 않니? 내 생각에는 근사할 거 같아”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낸 것은 물론, 자신의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태도를 후배 기자들에게 알려주었다. 1989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서울신문사 출판사진부 실습생으로 시작된 사진기자로서의 커리어가 탁월한 인물사진가로 이어진 긴 시간을 돌이켜보면, 열정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와 영화인들에 바치는 순수한 경애야말로 그의 사진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2002년에는 <배우 그 이름으로>라는 타이틀로 개인 사진전을 열었다. 당시 “표지 촬영을 위해 (<한겨레>의) 옥상에 있는 스튜디오로 올라가는 계단은 나에게는 ‘천국의 계단’이다. 나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들과 단독으로 대면하여 그들과 또 다른 영화를 만든다”라고 자신의 작업을 표현한 기억이 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던 시기라 같은 배우를 한해에도 여러 차례 촬영하던 그 시절, 영화의 성격에 따라 배우를 매번 다른 이미지로 포착해내며 화양연화와 같은 인생의 시기를 통과했다.여러 대학과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며 수많은 사진 후학을 키워낸 그는 최근까지 동강사진축제 보도사진가전 파트의 책임자로, 여주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첫 출항을 한 19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데일리를 도맡아서 만든 것은 손홍주 기자의 오랜 자랑이었다. 직접 영화에 출연한 일도 있었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박철수 감독의 <산부인과>에서 형사 역할을, <인어공주>에서 사진사 역할(제주도까지 가서 촬영했지만 편집되어 목소리만 나왔다고 실망해하던 기억이 난다)을 연기했다.

좌중을 휘어잡는 유머러스한 언변과 피아노를 치며 스티비 원더의 를 불러주던 출중한 노래 실력 등은 다재다능했던 인간 손홍주가 지닌 인간적인 매력의 일부분이었다. 30여년 곁에서 지켜본 손홍주 기자는 이보다 더 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열정으로 살았다. 이렇게 빨리 떠나려고 그랬던 건지….

선배,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마지막까지 사진 정리를 하다가 떠나셨다는 말이 그래도 위안이 되었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세요.

손홍주 전 <씨네21> 사진기자의 사진들

창간호 표지를 3페이지 펼침 면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손홍주 기자의 머리에서 나왔다. 관건은 섭외. 아무도 모르는 신생 잡지의 표지를 위해 당대 톱스타와 감독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수십통의 전화 끝에 간신히 12명의 영화인들을 모아 촬영할 수 있었다. 나흘에 걸쳐 촬영한 후 합성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1996년 10월, 영화 <인샬라> 촬영 현장 사진이다. 해외여행도 드물던 시절이라 사막이 있는 모로코로 출장 가는 손홍주 기자를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손홍주 기자는 <살인의 추억> 촬영 현장을 두번 방문했다. 이 사진은 <씨네21> 386호 특집 기사 “겨울, 촬영 현장 습격 사건” 취재를 위한 두 번째 방문(2003년 1월) 때 촬영됐다. 봉준호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난 후 모니터링을 위해 배우들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다.

2010년 1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네명의 감독을 한 프레임에 담아낸 <씨네21> 738호 표지 사진이다.

올바르고 당당하게 영화를 즐기자는 취지의 ‘굿 다운로더 캠페인’은 2009년에 시작되어 몇년간 이어졌다. 손홍주 기자는‘굿 다운로더 캠페인’의 사진을 전담했다.

<씨네21>의 사진 중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이 아닐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탕웨이를 <씨네21> 표지에 실었다.

2005년 6월 <분홍신> 개봉 당시의 배우 김혜수. 김혜수 배우와 <분홍신>이 한데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잘 살아 있다.

이정재 배우도 손홍주 기자를 ‘형’이라고 부르는 남자배우들 중 한명이다. 한국영화계의 주축으로 성장한 이정재 배우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손홍주 기자가 촬영한, 신인배우 이정재의 사진이다.

2012년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세트 촬영장에서 찍은 <씨네21> 861호 표지 사진이다. 동생 손현주가 연기자가 된 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언젠가 내 동생 현주를 <씨네21> 표지로 촬영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컨셉으로 라면 CF도 찍고 싶다고 했는데….

손홍주 기자는 고현정 배우와 <씨네21>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주도 촬영 현장에서 반가운 재회를 했다.

<씨네21> 750호 표지 사진. 2007년 칸영화제에서 전도연 배우가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손홍주 기자가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인어공주>에 함께 출연한 동료 연기자이기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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