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붕괴할 위기에 처한 공항대교 위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이 재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공항대교 일대엔 극심한 안개를 부른 기상 악화와 대규모 교통사고, 군 헬리콥터 추락과 유독가스 폭발까지 온갖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이송 중 탈출한 군사용 실험견들의 공격이다. 모종의 실험으로 특수 개조된 실험견들은 리더 군견의 지휘에 따라 계획적으로 인간을 습격한다. 정원은 실험견들의 배후에 있는 미지의 연구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존재, 그리고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본인이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음을 깨닫고 딜레마에 빠진다. 최우선으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책무와 본인의 사회적 입지를 지키는 일 사이에서 고민한다. 정부 책임자들은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얽힌 비밀 탓에 인명구조를 망설인다. 결국 정원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정원의 곁에서 딸 경민(김수안)은 아버지가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연구원인 양 박사(김희원)와 렉카 기사 조박(주지훈)은 정원과 사사건건 갈등하지만, 이내 정원을 비롯한 노부부 병학(문성근)과 순옥(예수정), 골프 선수 유라(박주현)와 그의 매니저 미란(박희본)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국가안보실의 에이스인 정원은 ‘정무적 판단’이란 용어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당당하게 내뱉는 인물이다. 피랍 사건의 피해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정무적 판단을 언급하고 정부 지지율을 걱정하며 구출에 미진하게 대응하기도 한다. 국민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공무원이 착실한 방관자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원의 상관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정현백 국가안보실장(김태우)은 이런 정원을 아낀다. 하지만 정원의 태도는 그가 실제 재난 사태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점차 달라진다. 제 가족의 생명이 위태롭고 국가적 조치의 부재가 시민을 위협한다. 이 문제를 직접 겪을 때 일어나는 정원의 윤리적 각성이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중핵이자 양날의 검이다. 재난영화에서 으레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가치 설파가 적잖은 울림을 주지만, 한편으론 정원의 변화가 그가 피해 당사자가 된 후에야 이뤄졌다는 사실이 석연찮게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러므로 영화는 관객이 정원의 서사에 반발하기보다는 충분히 이입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일례로 정원은 완전한 악인이라기보다 <부산행>의 석우(공유)처럼 자기 안위를 우선하는 현실적 캐릭터 정도로 중화되곤 한다. 적절한 정무적 판단으로 사회적 탄탄대로를 걷고, 동시에 가족을 착실히 아끼던 정원의 여러 전사를 제시하면서 그의 지난 비양심적 행위를 대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득하려는 것이다. 주인공을 보통의 악인 혹은 보통의 시민으로 그림으로써 관객 일반에게 보편적인 윤리적 딜레마를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느껴진다. 더불어 정원이 마주한 재난 상황의 고초를 안정적인 프로덕션의 대규모 블록버스터로 시각화하며 영화적인 몰입감을 더하려 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클로즈업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안개의 존재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이미지와 주제를 함축하는 주요 소재다. 그 자체로는 별다른 물리적 피해를 미치지 않는 안개처럼, 사회정치적 윤리의 매너리즘은 그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리고 인간의 여러 악의와 겹칠 때 커다란 위협으로 변모한다.
<부산행>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재난, 미지의 존재에 의한 습격, 인간군상극을 통한 사회 형태의 비유와 소시민 주인공의 윤리적 변화까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부산행>과 여러모로 겹친다. 사회적 재난이 잇따랐던 2014년 이후 <부산행>이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대표적인 이정표가 되었음을 재차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