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의 초반 수지(라시다 존스)와 마사(니시지마 히데토시)가 함께하는 모든 신은 플래시백이다. 만료된 시간에 접속하는 내러티브의 공학 덕분에 부부는 몇번이고 다시 서로를 바라보지만, 각자가 사로잡힌 내면의 고립감이 결국 단절된 현재로 돌아오게 할 뿐이다. 세상 만물에 버겁도록 촘촘히 연결된 시대, 그래서 더 외로운 날들에 <써니>의 로봇공학은 넉넉한 시선으로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는 인간적 소통의 매듭법을 되새긴다. 그러고 보니 두 주연배우를 화상으로 만나 대화한 시간 또한 작품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기회였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부드러운 배려와 시리즈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한 라시다 존스의 밝은 카리스마는 <써니>에의 애정을 바다 건너 모니터 너머까지 온전히 건네주었다. <써니>는 총 10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7월10일(수) 2편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9월4일(수)까지 매주 한편의 에피소드를 Apple TV+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 <써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라시다 존스 기술을 통해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던 차에 <써니>를 만났다. 애도의 무게를 짊어진 채 존재론적 위기에 당면한 인물의 내면을 숨 가쁜 미스터리의 호흡 안에서 표현해야 하는 새롭고 어려운 도전이었다. 평소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했기에 현지에서 촬영하는 경험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고, 정말 즐거웠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써니>의 표면적 메시지는 기술 발전의 명암이지만 그 기저에는 인간과 소통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인간의 영혼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공동 프로듀서인 라시다 존스와 케이티 로빈스, 루시 처니악과의 줌 미팅에서 이들의 재능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일본의 전통 양식과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세트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프로듀서이자 세트와 상호작용하는 배우로서 공간의 문화적 요소에 어떻게 반응했나.
라시다 존스 프로덕션디자인의 모든 디테일이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수지의 집 안 소품 하나하나가 가족 구성원을 형상화하도록 신중히 선택된 것이었다. 과거의 모습을 품은 근미래적 풍경도 매력적이다. 작중 시어머니인 노리코(주디 온그)의 집에는 전통적 향취가 가득하고, 수지의 집은 비교적 현대적이지만 그마저도 무척 일본적이다. 다다미방과 일본식 정원이 최신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며 미래와 현재 모두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 극의 배경인 근미래에는 동시통역 기술 덕에 각자의 언어로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지만 마사(니시지마 히데토시)는 다소 서툴더라도 수지에게 직접 영어로 말하기를 고집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했나.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의 합을 맞춘 경험도 듣고 싶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아마 마사는 통역기를 거치면 자신의 말에 담긴 어떤 정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어 연기는 물론 어려웠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라시다와 나는 미팅을 통해 충분히 마음을 열고 교류할 시간을 가졌다. 정신적인 연결이 이루어진 후에는 연기하는 과정이 그렇게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라시다 존스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이렇게 오래 일해본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니시지마는 영어를 정말 잘한다. 덕분에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연기에 담은 감정은 언어를 초월해 전달된다.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각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장면에서 통역용 이어폰 없이 상대 배우의 일본어 대사에 반응하며 연기해야 했다. 연기하는 매 순간 배우로서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 자문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 언어의 간극을 파고드는 연기의 기술적 측면도 그렇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마사의 성격에서도 니시지마 히데토시 배우가 연기했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가 언뜻 비쳤다. 두 작품을 거치며 소통의 의미에 대해 발견한 부분이 있었나.
니시지마 히데토시 솔직히 말하자면 마사를 연기하며 이전 작품과의 공통점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둘을 닮았다고 느꼈다면 그들이 모두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적인 인물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기술 발전에 의해 점점 사람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오늘날의 모습 말이다. 이전에는 고독감을 괴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기술 덕분에 고립 속에서 오히려 안락함을 누리기도 한다. 현세대의 이런 변화와 단절의 경험이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투영됐다고 생각한다. 마사와 가후쿠 모두 점차 내면의 껍질을 벗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공통점이겠다.
- 라시다 존스 배우가 연기한 수지도 공격적인 말투 뒤에 소통의 어색함을 숨기는 인물이라 느꼈다. 수지의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체화했나.
라시다 존스 수지는 다소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분명히 타인이 흥미를 느낄 만한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삶의 방향성을 잃은 사람에게는 타인의 지지가 더욱 필요하다. 때문에 극 중 수지가 통과하는 여정은 그가 사람과 로봇에 더욱 풍부히 감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좋은 친구, 어머니, 배우자로 거듭날 성격의 씨앗들을 발견해내려 했다.
- <써니>는 외로움을 마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다. 실제 삶 속 외로움에 대처하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나.
라시다 존스 대처 자체를 하지 않는다. (웃음) 외로움은 살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타인과 연결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유대감을 갈구하는 것 같다. 물론 인연은 값지지만 외롭더라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한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공감한다. 특히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내 앞에 놓인 배역을 온전히 마주하는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나는 애초에 고독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친구와의 시간도 물론 사랑하지만 홀로 보내는 순간들 또한 소중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