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에서의 한 달
예술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끌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삶의 다음 장면으로 서둘러 이행하는 것이 익숙한 것이 현대사회지만 어떤 사람은 그러한 속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쓴 하샴 마타르가 그랬다. 그가 끌린 것은 시에나파의 그림들이었는데 13세기부터 14, 15세기에 걸쳐 활동한 시에나파에 매료된 그해에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히샴 마타르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카다피 정권하에서 반체제인사로 지목됐다. 1979년부터 가족과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0년에 납치돼 아무 표시도 없는 비행기에 실려 리비아로 압송된 뒤 감옥에 갇혔고, “소금이 물에 녹듯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에나에서의 한 달>에서 그는 마음을 잡아끈 그림들 앞에 자주 서서 시간을 보냈다. 하나의 화폭 안에서 그는 매일 다른 것을 보았으며 매일 같은 것을 보았다. 꿈, 새로운 만남, 익숙한 해석과 새로운 발견의 나날이었다. 이 여정은 지극히 내적인 것이기에 시에나파의 특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라면 독서는 한없이 무용에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목적을 정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하여, 매장의 관습에 대하여, 발견하고 발견되는 지고의 기쁨에 대하여 말한다. 알게 되기로는 여상한 얼굴로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죽음이 찾아온 적이 있다는 평범한 진실. 이탈리아어 선생님은 대화 중에 갑작스레 일년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인근 도시에 사는 오래된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그들 부부의 것이 될 뻔했던 아이의 유령을 상상한다. 그리고 죽음의 도상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낙원’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다시 그에게 말을 건다. 그는 적는다.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이 생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이제 받아들인다.
내 눈 속에 사는 사람
배우 김정태의 첫 번째 시집.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도루코’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 여러 작품에서 괄목할 연기를 선보인 김정태의 삶과 내면의 시상을 접할 수 있다. “바다와 물빛/ 밤과 불빛/ 낮과 햇빛/ 궐련 같은 추억 뻑뻑/ 함께 마시던 금단의 포도주/ 입가에 아직 묻어나/ 시퍼렇게 질린 겨울의 입술”(<여수> 중에서)로 노래하는 삶은 곡절이 깊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었을 때가 많다. 시처럼 노래처럼 에세이처럼 써내려간 책. 아버지와 형이 여러 편의 시가 되어 그의 마음에 몇번이고 찾아오는 장면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비바람 불던 날/ 빨랫줄에 앉은 빗방울을 세던 우리/ 미셸 페트루치아니 몇 곡에/ 점심밥도 잊었지// 쓸쓸한 가을이면/ 이 동네만큼 묵은 된장이며/ 막 버무린 냉동 가오리무침/ 그리고 붕장어 굽는 냄새와 어깨동무하고/ 우룡산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신혼4>) 김정태는 그 모든 상실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찬연히 빛나는 삶의 순간들을 길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