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기억법> <너는 나의 봄> <돼지의 왕>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로운 사기>까지. 2020년대 들어 배우 김동욱은 무게감 있는 작품을 선택해왔다. 그렇기에 그가 코믹극 <강력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강력반>(이하 <강매강>)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의외로 다가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그 안엔 일찍이 일일시트콤 <못 말리는 결혼>(2007)이 있었고 MBC 연기대상 수상작인 오피스 코미디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2019)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SNL 코리아>에 2번 출연했고, 2022년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선 “코믹 연기는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라는 자부심이 있다”라는 말까지 한 적 있다. 그러니까 사실 김동욱은 코미디 장르와의 재회를 그 어떤 배우보다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그에게 선택받은 <강매강>은 <하이킥!> 시리즈의 이영철 작가와 <감자별 2013QR3>를 공동집필한 이광재 작가가 함께 쓰고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공동연출한 안종연 감독과 <천원짜리 변호사>의 신중훈 감독이 함께 만든 20부작 코믹 수사물이다. 실적 순위에서 만년 꼴등인 송원경찰서 강력2팀에 전 분야 에이스 동방유빈(김동욱)이 반장으로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9월11일 디즈니+에서 공개된다.
- 코미디 장르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코믹 연기는 어떤 즐거움을 주나.
= 우선 독자로서 코미디 대본을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코믹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자연히 즐거움의 요소를 찾고 어떻게 하면 웃음을 줄지를 고민하는데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코미디 작업이 쉽거나 가볍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어두운 캐릭터를 맡았을 때보다는 확실히 힐링되는 순간이 많다. 그래서 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그렇다면 <강매강>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코미디여서인가.
= 최근 몇년간 누군가를 쫓고 살인사건을 다루는 진지한 작품들을 해왔기에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대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타이밍 좋게 <강매강> 대본이 들어왔다. 읽어보니 상황적 재미는 물론이고 캐릭터 하나하나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특히 현실적인 생활형 코미디에 장르적인 코미디가 접목돼 있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코미디와는 결이 다르기에 호기심이 갔다. 그럼에도 연출자의 방향은 다를 수 있어 미팅 때 범죄 수사와 코미디의 비중이 각각 어느 정도인지를 질문했는데 감독님의 대답이 명쾌했다. “우리는 코미디다.” 그때 이 작품은 톤 조절이 어렵겠지만 꼭 출연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 톤 조절이 왜 어렵다고 생각한 건가.= <강매강>처럼 캐릭터의 개성이 뛰어난 작품은 조금만 오버해도 보기에 거부감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적절한 수위를 찾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모두를 웃길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고. 그동안 이 장르를 하면서 경험적으로 알게 된 건 모든 신에서 웃기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신이 재미없어진다는 거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대본에 작정하고 들어간 유머도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웃음이란 철저히 주관적 영역이니까. 그래서 코미디 연기를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캐릭터와 장면의 웃음 포인트가 아니라 맡은 캐릭터의 특성이고 그 장면의 의도다.
- 동방유빈은 의도적으로 귀엽고 때로는 유치한 톤 앤드 매너를 가진 작품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남자다. 그 격차에서 그의 코미디가 발생한다.
= 유빈은 기본적으로 매사에 진심인 친구라고 생각하고 캐릭터에 접근했다. 그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왜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시선을 받고 엉뚱하단 소리를 듣는다. 그 진심이 유빈이 구사하는 코미디의 핵심이다.
- 사내 UCC 콘테스트에 나간 유빈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춤을 춘 이유와 그 신이 왜 웃겼는지 이제 알겠다.
= 그 신에서 유빈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상받을 수 있겠지 하는 전략에서 움직인 게 아니다. 무대에 올랐으니까 최선을 다한 거고 밝은 노래가 나오니까 그 분위기에 맞춰서 적극적으로 춤췄을 뿐이다.
- 유빈이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인물이라는 점을 주변을 살피며 걷고 상대를 빤히 보는 습관, 안경을 추켜올리는 제스처 등으로 표현했다. 지금과 같은 캐릭터의 외적 특징은 어떻게 완성했나.
= 유빈이 어떤 생각과 의도가 있는지 남들 눈에 불명확한 인물로 보였으면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의 상이 머리로는 감을 잡아도 막상 연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유빈을 찾으려고 했다. 이를테면 누가 나에게 이해가 잘 안 간다고 하거나 그런 뜻의 표정을 지었을 때 내 얼굴은 어땠고 어떤 리액션을 했는지 떠올려보고 그런 상황이 찍힌 내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그 속의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유빈은 실제 내 외적 특성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가 됐다. 안경은 내 제안이었다. 그동안 안경을 쓰고 나온 작품이 별로 없기도 하고 이번엔 왠지 액세서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 써봤는데 추리하는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졌다.
-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말하는 유빈의 화법에서 확신이 들 때까지 단정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분명 젠틀한데 묘하게 건조한 말투도 독특하게 다가왔다.
= 일할 때는 오로지 사건만 보고 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에 사무적인 스타일로 말하려 했다. 예컨대 친절한 화법과 말투를 형식적으로 구사하되 친절한 느낌까지는 전달하지 않으려고 조절했다.
- 그렇다면 유빈은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나.= 유빈은 AI가 아니다. (웃음) 사람은 늘 자기가 속한 환경과 관계에 영향받듯 유빈도 새로운 팀 안에서 개성적인 4인방과 함께 일하며 어떤 식으로든 변화한다.
- <강매강>을 소개하는 콘텐츠에서 유빈의 성격을 ‘강강약약’이라고 정의했다. 풀어서 설명해준 다면.
= 원칙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념을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저버리지 않는 사람. 초반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미가 있어 약자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같은 콘텐츠에서 맡은 캐릭터와 비슷한 배우가 한명도 없다는 얘기가 있어 흥미로웠다. 어떤 이유로 유빈과 다르다고 생각하나.
= 유빈과 달리 일상에서의 나는 굉장히 즉흥적인 편이다. 일할 때는 반대인데 <강매강>을 찍을 때는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많이 냈다. 배우들끼리 일단 만나서 이것저것 해보는 현장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리허설하는 동안 각자가 대본을 보면서 고민한 점들을 나누고 때로는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한신 한신을 만들어나 갔다.
- 반장님 역할이지 않나. 강력2팀 멤버들인 무중력 경위(박지환), 정정환 경사(서현우), 서민서 경장(박세완), 장탄식 순경(이승우)의 매력을 소개해준다면. 유빈과 팀원들이 각각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 무중력은 철저히 본인촉에 의존하는 형사라 분석파인 유빈과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 갈등에서 오는 재미가 분명하다. 정정환 경사는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귀여운 캐릭터인데 그 역할을 주로 센 모습을 보여줬던 서현우 배우가 맡은 게 포인트다. 특히 언뜻 같아 보여도 매번 미세하게 다른 고도의 아첨이 받는 상사 입장에서 정말 놀라웠다. (웃음) 서민서 경장도 날 반기는 쪽이 아니라 초반에는 원만한 사이가 아니지만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지점을 서로 알게 되면서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다. 막내 탄식은 사고뭉치 같아도 형사로서 굉장한 능력이 있는 친구다. 기존 멤버들이 놓치고 있던 막내의 장점을 유빈이 끌어내고 발휘할 수 있게 돕는다. 사실 강력2팀이 모두 똑같이 유빈을 반기지 않는데 그 불편감의 표현과 훗날 가까워지는 방식이 다 다르다. 그 점이 <강매강>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에 웨이브에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6~8부작 정도로 재편집해서 공개한다. 김동욱 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씨네21> 1473호의 특집도 뉴 레트로다. 만약 <커피프린스 1호점>이 앞서 말한 기회를 얻는다면 하림(김동욱)으로서 어떤 장면을 꼭 넣고 싶나.
= (잠시 고민하다가) 커피프린스 식구들이 다 같이 과수원에 놀러가서 과일도 따고 물놀이도 하는 장면. 젊은 친구들의 생기 있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 신이다. 와… 촬영했던 때가 지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웃음) 숙소 마당에서 촬영 준비하면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정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