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 7관왕에 올랐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와 양자역학을 가장 창의적으로 다룬 영화 중 하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양자 확률을 설명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즉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라는 긴 제목을 굳이 고집했어야 하는 이유 역시 과학 이론과 연결된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에게는 삼중의 문제가 존재한다. 부모와 관계가 소원한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할아버지에게 동성 애인을 소개시키려고 하고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을 방문해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며 먼 길을 온 아버지에게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는 그와 이혼할 결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웨이먼드가 이혼 서류가 아닌 이상한 장치를 건넨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남편은 스스로를 알파버스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라고 칭하며 이곳의 에블린만이 무한수의 다중우주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파버스에서 뿌리 내리기 시작한 조부 투파키(알파버스의 딸 조이, 알파버스의 에블린이 그의 잠재력을 보고 한계를 넘도록 몰아세웠다가 정신이 산산조각나면서 탄생한 존재)의 거대한 악이 수많은 우주에 혼돈을 퍼뜨리기 시작했단다. 지금 이 세계의 에블린은 조부 투파키에 맞설 유일한 희망이다. 웨이먼드와의 결혼, 미국 이민 등 삶의 매 순간 실패하는 쪽을 선택해서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너무 많은 이곳의 에블린 덕분에 다른 우주의 에블린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이유로 무엇이든 못하는 에블린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최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릭 앤 모티> 등을 비롯한 많은 할리우드 작품들이 차용하는 멀티버스는 물리학자 휴 에버렛의 다중세계 이론에 근간을 둔다.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는 특정한 위치에 확정되지 않고 어떤 위치에 존재할 확률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관측자가 시스템을 측정할 때까지 이 불확실성은 유지된다. 입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기록하면 확률이 하나의 결과가 되는 ‘붕괴’가 일어나 단일 상태가 된다. 여기까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란 이름으로 많이 접해본 개념일 것이다. 물리학자 휴 에버렛은 확률이 붕괴되지 않고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가 무한수의 다른 우주에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상황으로 설명하자면, 에블린이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은 선택지가 사라지지 않고 쿵후를 배워 세계적인 배우가 된 우주가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자 속에 숨은 너구리가 사람을 조종하며 요리하는 ‘라따구리’처럼 어떠한 황당한 상황을 상상해도 그것이 존재하는 우주가 있다. 그렇게 영화는 다중우주를 전제해 양자경의 과거 출연작을 포함해 SF, 액션, 코미디, 무협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혼종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판을 깐다.
에블린은 다른 우주의 그와 연결됐을 때 그의 무술 실력까지 이어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우주와 우주를 연결해 서로의 기억, 기술, 감정까지 공유하는 ‘버스 점프’ 역시 양자역학 이론에서 출발했다. 고전물리학의 파동이 그렇듯이 두개 이상의 양자 상태도 각기 확률을 더해 확률적으로 정해진다. 이를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에블린의 선택에 따른 무한수의 시공간의 중첩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즉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서 배웠던 이중 슬릿 실험으로부터 설명 가능하다. 빛이 입자라면 두개의 구멍 중 한쪽을 통과해야 하는데 대신 슬릿 너머 벽에서 파동과 같은 간섭 무늬가 관찰됐다. 마치 하나의 광자가 동시에 두곳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이를 삼중 슬릿, 사중 슬릿, 오중 슬릿으로 구멍 개수를 늘려가며 실험해보면 어떨까. 마치 빛은 동시에 네다섯곳을 통과하는 것처럼 더더욱 복잡한 패턴이 나타난다. 아예 구멍 숫자를 무한정 늘린다면? 벽은 사라지고, 빛은 가능한 모든 시간 모든 경로를 거쳐 모든 것을 통과하며 서로 중첩된다. 이렇듯 서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개 이상의 양자가 상호 의존하는 것을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고 한다. 각기 다른 일이 벌어지는 무한수의 분리된 우주가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의 에블린과 다른 우주의 에블린이 연결 가능한 것이다. 다만 그 방식에 대한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은 행동, 즉 종이에 손가락을 네번 베인다든지 챕스틱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든지 추계적 경로 알고리즘에서 가장 개연성 없는 생뚱맞은 행동을 할 때 다른 우주와 연결될 수 있다는 발칙한 발상을 제안한다.
내가 A가 아닌 B를 선택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성취하지 못한 환상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자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조부 투파키는 우주와 우주를 오가는 ‘버스 점프’ 훈련으로 혹사당하다가 모든 우주와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한 뒤 객관적 진리에 대한 믿음과 도덕관념을 잃은 존재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조이가 수많은 우주에서 겪었던 좌절과 배신감과 분노가 거대한 악을 만들었고 급기야 스스로를 파괴하려고 한다. 그는 “세상 모든 건 진동하며 중첩하는 미립자의 무작위 재배열에 불과”하기에 모든 것이 부질없고 성취하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만이 남는다고 냉소한다. 반면 웨이먼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룬 다른 우주의 잠재성과 자신이 연결될 수 있다면 오히려 세상을 ‘다정하게’ 대하면서 자기파괴와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각기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조이와 에블린의 기억과 감정이 서로 얽히면서 비로소 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에블린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위로하고 가족애를 회복한다. 근원적 허무를 인정하되 그 안에서 현재의 긍정을 찾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태도는 결국 무한한 시공간을 전제한 니체의 영겁회귀나 동양사상과도 닮은 점이 많다.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을 장르적 실험의 근거로 삼아 철학을 경유해 가족의 위로를 전하는, 지성과 논리가 따뜻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통섭의 마스터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