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나답게 살았던 시절에 바치는 사랑의 축가, ‘대도시의 사랑법’
2024-10-02
글 : 김철홍 (평론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난 존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재희(김고은)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부터 모두의 관심을 끌 정도의 특별한 매력을 지녔지만, 이내 너무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흉흉한 소문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흥수(노상현)는 그런 세상의 섭리를 어릴 적부터 깨우친 시민이다. 둘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맘 편히 스무살 시절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이태원. 재희와 흥수는 그곳에서 완전히 자신다운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고 ‘베스트 프렌드’가 된다. 필요에 의해 동거까지 하게 된 둘은 그렇게 혼란스럽고 뜨거운 20대 초중반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모든 역사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는 외장하드 같은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서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보이는 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건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재희와 흥수는 서로를 놓아줘야 한다. 돈벌이와 결혼에 관해 선택해야 할 시기가 찾아오자 둘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33살 재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흥수의 시점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단편 <재희>의 구조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원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한 이언희 감독은, 영화에선 재희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두 주인공간 서사의 비중을 균형 있게 그려냈다. 20대 초중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이성 친구간의 동거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러닝타임 내내 크고 작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두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 또한 비중 있게 다뤄진다. 2010년대를 배경으로 진행되기에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몇몇 장면은 근래에도 이슈가 된 특정 범죄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도시의 사랑법>은 특별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원작도 그랬듯)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도 재희, 흥수와 같은 시기를 보냈거나 (그리고 보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숙한 사랑법의 결과로 울고 웃던 때, 온 세상이 나를 밀쳐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때 당신의 곁에서 함께 세상을 욕해줬던 각자의 ‘재희’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영화에 있다. 두 주인공을 연기한 김고은, 노상현 배우에게도 이 영화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드라마 <파친코>로 한국 관객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 뒤, 처음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노상현의 다양한 매력이 기억에 남을 만하다. 올해 <파묘> 이후 또 한번 주연작을 공개한 김고은 또한 당당해 보이지만 상처도 잘 입는 복합적인 인물을 완벽히 표현해내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분히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Close-up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려낸 2010년대는, 엄밀히 따지면 먼 과거가 아닌데도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 유행한 대중가요와 유흥 문화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흥수가 미쓰에이의 무대를 선보일 때다. 가사가 지금 듣기엔 다소 부끄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 그때 그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우리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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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201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배우 티모테 샬라메의 존재를 알게 된 한국 관객도 많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소수자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들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흥수의 어머니가 그날 밤 극장을 찾아 관람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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