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의 맥고나걸 교수, <다운튼 애비>의 그랜섬 대부인, <시스터 액트>의 원장 수녀…. 전세계 영화 관객들은 매기 스미스의 얼굴을 본 순간 자신들이 한없이 사랑했던 영화, 시리즈에 대배우가 새긴 깐깐한 눈빛과 엄정한 입매를 떠올린다. 영국의 명배우 매기 스미스가 지난 9월27일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9살. 수많은 동료 배우가 추도사를 남겼고, 런던 웨스트엔드는 무대 위의 영원한 전설을 기리며 10월1일 약 2분간 거리 전체를 소등했다.
1934년 12월 영국에서 태어난 마거릿 내털리 스미스는 1952년 <십이야>의 바이올라로 데뷔했다. 이후 스미스는 1960년 로런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를 연기했고, 1963년엔 올리비에가 창단한 영국 국립극단의 초대 전속 단원으로 활동했다. 스미스의 무대 경력은 영국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는 1970년대에 캐나다로 건너가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클레오파트라, <갈매기>의 아르카지나를 연기해 파란을 일으켰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1987년 <아마데우스>의 작가 피터 셰퍼가 자신에게 헌정한 희곡 <레티스와 러비지>의 주인공을 연기해 토니상 연극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매기 스미스의 존재감은 무대뿐 아니라 은막과 브라운관까지 압도했다. 스미스는 1956년 할리우드에서 신고식을 치른 이후 존 포드, 조지프 L. 맹키위츠, 로버트 올트먼, 스티븐 스필버그 등 미국영화사의 명감독들이 원하는 배우로 자리했다. 스미스는 총 6회 아카데미 시상식 배우상 후보로 지명돼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1969)와 <캘리포니아의 다섯 부부>(1978)로 각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또한 총 9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배우상 후보로 지명돼 TV영화 <마이 하우스 인 움브리아>(2003)로 여우주연상을, 시리즈 <다운튼 애비>로 세번의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스미스의 대표 이미지인 ‘오만한 노부인’ 또한 스크린으로부터 시작됐다. 스미스는 <이모와의 여행>(1972) 속 70대 귀부인 어거스타를 30대 후반의 나이에 분한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까다롭지만 잔정이 많은 노년 여성의 상징이 됐다.
끝으로 매기 스미스는 걸출한 희극배우였다. 영국 연극계엔 그가 1964년부터 희극 <헤이 피버>에 출연할 당시 대사 한줄 “이 대구 요리는 역겨워”로 매회 객석을 폭소로 초토화했다는 신화가 전승된다. 미세한 표정 변화와 발군의 대사 타이밍을 무기로 스미스가 영국 특유의 신랄한 사르카즘 유머를 휘두를 때 스미스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의 위대한 코미디 연기는 <고스포드 파크> <더 레이디 인 더 밴> 등 21세기 영화에도 형형히 살아 있다. 유작은 영화 <미라클 클럽>(2023)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