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에게 2021년의 기억은 생생하다. 처음 매체연기에 발을 들이던 시절 만난 <지옥>과 박정자, 작품을 들고 처음 찾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이후 많은 것이 바뀐 일상까지. “야외극장에서 다 함께 <지옥> 시즌1을 봤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3년 만에 다시 박정자를 만나니 “낯섦”이 앞섰다고 한다. “박정자도 인생에서 지옥이라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경험한 것이 아닌가. 큰일을 겪은 후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것처럼 이 생경함을 그대로 가져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박정자가 경험한 지옥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김신록은 초반 박정자의 대사 중 “그리움”과 “절망”이라는 상승과 하강의 키워드 사이에서 “그리움의 대상인 아이들에게 가 닿고 싶어 하는 격렬한 욕망”을 추출했다. “부활 후에도 끝없이 욕망하고 좌절하는 인물”이기에 현실에서도 여전히 지옥도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혼재된 수많은 이미지를” 본다는 것이다. “눈앞의 김정칠이 실재인지 환각인지조차 선명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에 얘(박정자)는 왜 또 자냐’는 대화도 나눴다. (웃음)”
개막작 <전,란>에서도 김신록의 존재감은 형형하다. “직접 부딪히며 얻은 삶의 통찰”을 지닌 의병 범동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은 “원인과 결과로 추론하는 이성적인 인물”에 익숙한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천영(강동원)과 종려(박정민) 등 복수와 욕망이 추동하는 인물과 달리 희박한 범동의 전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범동의 몫은 개인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용감하고 선량한 보통 사람이다.” 임진왜란 전후의 의병을 다룬 영화를 독파한 후 범동이 “액션을 너무 깔끔하게 잘 해내지 않았으면” 하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지옥> 시즌2와 <전,란>의 촬영 기간이 겹쳤지만 김신록은 본인에게 “중요하고 꼭 하고 싶은” 두 작품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두 세계가 워낙 달라서 현장에서 의상만 받아도 즉각 그 인물이 되는 힘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박정자와 범동은 어쩌면 김신록이 지금껏 즐겨 택해온 “극적인 상황이나 세계관”의 대표 격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한 발 더 나아가려 한다. “있는 힘껏 나로부터 멀어지는 연기도 여전히 좋지만, 요즘은 나와 거리가 멀지 않은 사람을 덤덤하게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