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시리즈의 팬들에게 동재는 아픈 손가락이다. 지방대 출신 ‘흙수 저’에 이렇다 할 라인도 없지만 나름 자기 살길 찾겠다는 생존본능이 그를 스폰서 검사로 만들었다. 이창준(유재명)의 마지막을 목격한 뒤 갱생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만 결국 동재는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시즌2에서는 납치 사건에 휘말려 시청자들을 마음 졸이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디즈니+ <비질란테>에 이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 로 온 스크린 섹션에 초청된 이준혁은 서동재의 캐릭터를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그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완성했다. 있는 그대로 동재의 투명함을 보여주되 그를 애써 선해하는 술수를 쓰지 않는 이준혁의 정공법은 시리즈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캐릭터로 별개의 드라마가 제작되게 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한국 드라마 업계에서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온 것은 <좋거나 나쁜 동재>가 처음이다.
- 예전에 <비밀의 숲> 시리즈의 동재가 싫어서 그냥 극중에서 죽었으면 좋겠 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안다. (웃음) 그런데 그를 주인공으로 기획한 <좋거나 나쁜 동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다가’였다. 처음에는 동재를 다시 연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는 소비자로서 똑같은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인터넷 댓글을 보라고 하더라. 사람들이 이렇게나 동재의 스핀오프를 원한다고 말이다. 가볍게 시작했던 작품은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얼마 전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극장에서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에이리언> 시리즈와 <프로메테우스>를 다시 보고 나서 <에이리언: 어스>가 나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너무 감사했다. 페이스 허거에 완전 꽂혔다. 심지어 <에이리언 VS. 프레데터>까지 품었다. 아, 다들 이런 마음이었나? (웃음) 그 전에는 특정 작품을 단독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다가 어떤 캐릭터와 친밀해지는 감정을 새롭게 알게 됐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서동재를 최대한 보여주자는 마음이 커졌다.
- 주인공도 선역도 아닌 서동재를 시청자들이 좋아하고 심지어 귀여워(?) 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시 내게 오는 대본 중에는 서브 캐릭터, 특히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악역이 많았다. 동재는 클리셰를 전복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고 연기하고 싶더라. 원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나 <장고:분노의 추적자>의 주인공처럼 클리셰를 전복시킨 캐릭터들이 재밌지 않나. 현실에서는 보기 싫은 유형이 지만 우리가 가지 못할 길을 가기도 한다. 하는 짓을 보면 웃겨서 마음껏 조롱도 할 수 있다. 또 동재 같은 캐릭터가 내 편으로 돌아올 때 오는 쾌감이 있다.
- <비밀의 숲> 시즌2에서 납치까지 당하고 온갖 고생은 다 했는데 결국 청주 지검으로 발령받았다. 승진도 계속 후배들에게 밀리고 있다.
서동재 사건이 이슈가 된 만큼 그의 비리도 이슈가 됐다. 동재를 품어주는건 이창준 정도 되어야 가능한데 그가 사라졌으니 가장 큰 라인도 날아가 버렸다. 검사 조직 내부에 동재의 라인이 없을 수밖에 없다. (황)시목(조승우)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친구다. (웃음) 서울대 출신도 아니다. 어떻게 상상해도 동재에게 좋은 길은 없다.
- <비밀의 숲>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작품의 톤은 전혀 다르다. 블랙 코미디에 훨씬 가깝다.
맞다. 원래 블랙 코미디를 좋아한다. <비밀의 숲> 대본을 받았을 때 동재를 하고 싶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이나 아담 맥케이의 영화들, <더 메뉴>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블랙 코미디 장르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좋거나 나쁜 동재>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 참고했던 연기가 있나.<비밀의 숲> 시즌1과 시즌2에서 내가 했던 연기를 다시 봤다.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 (웃음) 시즌1은 거대한 악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시즌2는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신도 있었다. 내가 두작품에서 동재를 다르게 연기했더라. 두 가지 모습을 잘 버무려서 <좋거나 나쁜 동재>의 동재를 만들었다.
- 평소 신작 예술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시네필이라고 알고 있다. 영화를 보며 연기에 대한 영감을 얻는 유형인가, 혹은 분리하면서 보나.
후자다. 영화는 영화로 본다. 영화를 보는 것과 찍는 것은 다르다. 마치 남이 해주는 밥이 내가 요리해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 것처럼 편하게 볼 수 있다.(웃음) 배우의 에너지로 끌고 가는 영화를 볼 때 나중에 저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있지만.
- 그럼 올해 부산영화제 기대작은 무엇인가.(이)동휘가 나온 <메소드연기>가 재밌다고 해서 기대된다. 그리고 <서브스턴스>가 좋다는 말을 주변에서 진짜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작 극장에서 영화를 볼 시간이 나지 않아서 슬프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