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자 / 한국 / 2024년 / 67분 /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10.09 L3 20:30
남자와 여자는 지인의 재혼식 뒤풀이에서 처음 만났다. 모두가 죽은 듯쓰러진 술자리에서 남자는 취한 여자를 등에 업고 귀갓길을 걸었다. 제몸도 가누지 못하는 여자는 실의에 빠져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영경이고 힘겹게 영경을 업고 밤거리를 지나는 남자는 류머티즘을 오래 앓은 수환이다. 쇠락한 육체를 지닌 두 남녀는 몇 번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음주와 업힘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돌아온 강미자 감독의 <봄밤>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말없이 서로를 보듬은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권여선 작가의 단편 「봄밤」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김수영의 시처럼 아릿한 운율감이 먼저 읽힌다. 수환과 영경이 등장하는 모든 순간은 느릿한 삶의 박동을 풀어낸 시어가 되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칠흑 같은 암막은 시간과 인과를 압축하는 행간이 된다. 짙게 깔린 어둠 위로 담담하게 생동하는 한예리와 김설진의 꾸밈 없는 육체가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무엇보다 <봄밤>은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아픔의 몽타주를 발굴해 낸 작품이다. 봄 바람에 옅게 흔들리는 한송이의 목련에도 오래 아프고 오래 사랑했던 두 남녀의 응축된 시간과 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