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지를 가로지르던 영화적인 움직임은 이제 구식이 되었다. 말을 타고 사막과 평원을 건너던 카우보이, 열차 위에서 모험을 즐기던 방랑자, 자동차를 타고 도심을 누비던 갱스터의 모습은 어느 순간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영토의 확장을 꿈꾸는 수평적 운동을 대신하여 창공을 지배하기 위한 수직적 운동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고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앉아 부를 과시하거나, 비행기나 우주선을 타고 높이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그도 아니면 초인적인 힘으로 비행하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들이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상승에 대한 영웅의 욕망은 파에톤의 마차가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또는 이카로스의 날개가 꺾인 것처럼 좌절로 이어지고는 한다. 수직적인 세계의 비극적 결말을 추락이 장식한 것이다.
디지털 시각효과를 연구한 크리스틴 휘셀은 1990년대 이후 수직축의 세계를 다룬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와이어 제거 소프트웨어, 모션컨트롤, 디지털애니메이션, 몰핑, 모션캡처 등과 같은 디지털 시각효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수직축은 영화의 이야기 전개와 이미지 구성에 있어 필수 요소로 자리 잡는다. 수직축의 이미지로는 고층 건물, 협곡, 기념비, 승강기 통로, 건물 기둥, 뒤집힌 여객선, 높은 타워, 거대한 나무, 공중에서 맴도는 헬리콥터 등이 자주 쓰인다. 수직축의 이야기로는 중력의 법칙에 도전하거나 반대로 그것에 굴복하는 인류 문명과 관련된 것이 많다. 수직의 세계는 자연과 문명의 대결이라는 오래된 도식을 계승하지만, 수직의 세계를 둘러싼 개인, 사회, 역사의 복잡한 관계를 풀어냄으로써 기존의 수평적 세계의 전통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휘셀은 수직성이 중력의 법칙을 둘러싼 복잡한 힘의 다툼을 통해 역사적 변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드러낸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수직성은 시간적 파열과 야만적인 역사적 ‘단절’을 위한 장엄한 상징으로 작동한다.”
<타이타닉>(1997)은 휘셀이 말하는 수직축의 이미지, 이야기, 상징을 고루 갖춘 작품에 해당한다. 여자주인공 로즈의 자살 시도, 선체의 침몰, 사회의 수직적 계층 구분을 반영하는 객실의 구조 등에서 수직성이 드러난다. 그중 선체의 침몰은 시각적 스펙터클과 상징적 의미를 두루 갖춘 경우이다. 그 장면에서 선체는 서서히 기울다가 반으로 갈라진다. 이어서 선체의 후미 부분이 수직으로 기울었다 심해로 가라앉는다. 야외 세트장에서 이루어진 이 장면의 촬영은 야외에 설치한 거대한 물탱크에 실물 크기에 가깝게 복제한 선체 구조물을 집어넣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선체를 기울여서 주요 장면을 촬영한 다음 선체 후미에서 바다로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따랐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선체의 침몰과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계급적 갈등에 기반한 이야기와 결합하여 작품 속 세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의미를 낳는다. 영화는 선체의 침몰에 관한 장면 곳곳에서 1등실의 승객과 3등실의 승객 모두 예외 없이 추락과 익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직의 세계에서 특권적 존재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타이태닉호의 침몰이란 단순히 배와 승객이 가라앉은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오래되고 경직된 사회적 구조가 가라앉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추락의 필연성은 추락에 대한 만인의 공포를 낳는다. <아이언맨> 시리즈와 아이언맨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어벤져스> 시리즈는 수직의 세계와 추락의 공포를 반영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피터 쿠건에 따르면, 슈퍼히어로 장르는 법, 중력, 가부장제 등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린다. 아이언맨 또한 그런 고전적인 슈퍼히어로와 비슷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언맨에게는 기존 영웅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 초자연적, 신비적 탄생의 배경이 없다. 그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영웅이다. <아이언맨>(2008)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슈트를 입고 탈출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비행을 시도하여 탈출에 성공하지만, 추락이라는 쓰디쓴 실패를 맛본다. 이후 그는 새로운 버전으로 슈트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비행과 추락을 반복한다. 아이언맨이 출현하는 여러 작품에서 핵심적인 모티브로 쓰인 비행과 추락은 좁게는 토니 스타크 개인의 성취와 실패를 그리고 넓게는 인류의 위기와 구원이라는 서사와 결합한다. 일각에서는 <아이언맨> 시리즈와 같은 슈퍼히어로영화에서 나타난 추락의 공포가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관점을 따르자면, 추락의 공포가 만연한 세상이 기대한 영웅은 단순히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자가 아니라 추락의 공포에 대해 알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자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2010)에서 추락은 최후의 해결책으로 쓰인다. 이 영화는 엘리베이터의 하강, 미로처럼 이어지는 계단, 기울어진 복도, 넘어지는 의자,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하는 자동차 등과 관련된 장면에서 수직축을 활용한다. 주인공과 그의 일당은 의뢰인이 지목한 표적의 꿈속에 몰래 잠입하여 중요 정보를 빼내는 일을 한다. 작품 속 설정에 따르면, 인간의 꿈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단계가 거듭될수록 현실에 비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가장 높은 단계에 다다르면 림보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수직성은 욕망, 도전, 극복 등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 대신 수직성은 세계의 불안정성과 인간의 무기력함을 상징한다. 표적의 꿈속 세계가 기울어진다는 것은, 표적의 꿈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예고와 같다. 주인공과 그의 일당은 표적의 꿈속에 갇힌 채 림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킥이라는 기술을 쓴다. 킥은 꿈꾸는 자를 넘어뜨리거나 물에 빠뜨려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기술이다. 급작스러운 신체적 변화와 그에 따른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만들어 꿈꾸는 자를 꿈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인셉션> 외에도 자신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수직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락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기울어진 세계를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으로서의 추락. 만약 추락이 세계를 개선할 유일한 기회를 제공한다면, 눈 딱 감고 낙하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추락의 몸짓, 그것은 아직 세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기약 없는 구원에 대한 기다림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