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상처투성이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배우 김고은
2024-10-10
글 : 이유채

올해 초 컨버스를 신고 굿판을 벌였던 <파묘>의 김고은이 이번엔 컨버스에 웨딩드레스 조합으로 스크린을 찾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재희(김고은)는 색다른 웨딩 패션으로 짐작할 수 있듯 개성을 발휘하는 여자다. 줏대 있게 산다는 이유로 조직 사회에서 품평의 대상, 요주의 인물로 찍히지만 상관없다. 그에겐 20살에 대학 동기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을 편견 없이 봐준 게이 친구 흥수(노상현)가 있다. 13년의 우정 어린 시간을 거쳐 재희는 생채기투성이인 자신을 비로소 직시하고 홀가분히 삶의 다음 챕터로 뛰어들어간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김고은은 재희의 슬픔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의 무른 이면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펼치는 연기로 1991년생 동갑내기 캐릭터의 웅크린 등을 가만히 쓸어주고 싶었다.

- 먼저 합류한 뒤 흥수 역 캐스팅이 난항을 겪으면서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꼭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는.

중급 규모의 작품이 귀해진 시대인 만큼 <대도시의 사랑법>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물론 그전에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후루룩’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단번에 집중해서 읽었다. 이 정도 규모에서만 나올 수 있는 캐릭터란 게 있기에 앞으로 다양한 역할을 만나고 싶은 배우로서 지금은 흥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유의미한 스코어가 나온다면 이런 영화가 제작될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 재희는 시나리오에서도 반짝반짝했을 것 같다. 재희의 어떤 점이 눈에 들어왔나.

영화가 다루는 20살부터 33살까지의 세월, 그 13년간의 시간성이 먼저 다가왔다. 자유로운 만큼 명확한 건 없어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20대 초반, 뭔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 20대 중후반, 겨우 여기까지 왔지만 이게 맞나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30대 초반까지의 세월이 공감이 갔다. 재희에게서는 안타까움을 가장 크게 느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강함이 자신의 약함을 가리는 포장지라는 생각이 드니까 눈에 자꾸 밟혔다.

- 재희를 보통의 존재로 해석했다는 인상이다.

그렇다. 재희는 독특한 친구가 아니다. 유년 시절에 부모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그때 받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버려서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서툴 뿐이다. 어떻게 사랑할지가 아닌 상대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해줄지에만 관심이 있는 연애 방식에서 재희의 결핍이 드러난다.

- 주변에 의견을 많이 구하면서 작품을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경우에는 어땠나.

초기에 그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여기서 ‘주변’이란 작품을 함께 만드는 분들이다. 내가 아무리 시나리오를 많이 읽었다 한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분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는다. 현장에서 내 연기를 지켜보는 매니저님의 반응에도 귀 기울인다. 이번 작품도 스태프들이 생각하는 재희와 내가 생각하는 재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으면서 공통의 재희를 만들어나갔다.

- 재희는 어떻게 처음부터 흥수가 자신과 동족임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흥수의 고슴도치처럼 날 선 모습을 보자마자 재희는 ‘저건 포장지에 둘러싸이기 전 내 옛 모습인데’라고 생각했을 거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엉망인 서로를 보듬으면서 때론 먼저 앞서가거나 멈춰선 한쪽을 따라가고 이끌면서 성장해나간다. 그런 드문 우정이 좋았고 둘이 너무나 부러웠다.

- 200벌가량의 의상 피팅 과정을 거쳤다고. 믹스 앤 매치가 창의적인데 구상했던 재희의 의상 컨셉은 무엇이었나.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반대로 이런 느낌은 아니었으면 하는 게 있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신경 쓴 티가 나거나 자유분방하다고 해서 히피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내가 생각한 재희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날그날 손이 가는 대로 입은 건데도 어딘가 남다르게 느껴졌다면 그건 재희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을 거다. 재희는 속이 보일까봐 혹은 누가 볼까봐 가슴을 가리면서 상체를 숙이는 친구가 아니다.

- 패션 센스 때문에 재희는 의상디자이너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이렇게 ‘짐작’한 건,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흥수와 달리 재희의 꿈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였다.

그 점이 중요했다. 재희는 장래희망 같은 게 없는 친구다. 어디든 열심히 취업 준비한 회사에 들어가서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역량을 차근히 쌓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생관을 가졌다. 그런 재희로 사는 동안 ‘목표라는 게 꼭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고 그러지 않는 삶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 재희가 울부짖는 장면에서 그간 맺힌 응어리를 다 끄집어내는 연기를 했다. 심신이 고되지 않았나.

감정에 압도되거나 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그랬던 것 같다. 시나리오에서 그 장면을 읽었을 때 ‘인물이 자기감정을 드디어 터뜨리는 중요한 신이니 여기서는 강조를 딱 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도 집중이 잘됐다.

- 배우는 구구한 억측과 소문이 따라붙는 직업이기도 하다. 평소 어떻게 견디나.

경험 없는 데뷔 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말들에 신경을 썼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지금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알고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한다, 제격이다 소리를 듣겠지 뭐’라는 생각으로 넘긴다.

- 재희의 결혼이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그 점에 있어서 나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재희는 흥수와 지내는 동안 진정한 사랑법을 익혔다. 상대에게 자기가 1순위인지, 2순위인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거다. 결혼은 재희에게 사랑할 용기가 생겼다는 의미다.

- 차기작 <은중과 상연> <자백의 대가>는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유미의 세포들>식으로 돌려 말한다면 어떠한 프라임 세포를 가진 캐릭터들을 맡았나.

<은중과 상연>의 은중은 재희와 다르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만큼 사랑 세포가 커다랗게 자리 잡은 친구다. <자백의 대가>의 모은은 한창 촬영 중이라 시간이 필요하다. 기사 사진을 찍은 뒤 모은이를 생각하며 쇼트커트로 잘랐다. 이게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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