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다음 세대에 횃불을 건네는 이야기, <파친코> 시즌2 쇼러너 수 휴
2024-10-17
글 : 김소미

전쟁 중의 로맨스,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의 드문 우정, 시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가족의 유산까지. <파친코> 시즌2에선 국적과 세대, 역사적 비극을 넘나드는 사랑의 물결이 더욱 세차게 흐른다. 2022년 <파친코> 시즌1 성공에 이어 시즌2를 이끈 쇼러너 수 휴에겐 “원작 소설 이상의 디테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파친코> 시리즈 이후 Apple TV+와 계약을 맺고 신작 작업에 착수 중인 그는 지금 할리우드 드라마 시장이 주목하는 프로듀서이자 작가다. 작가방에서 이력을 시작해 작품 제작의 전반을 아우르는 쇼러너, 총괄 프로듀서(EP, Executive Producer), 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직함을 넘나들게 된 수 휴와 <파친코> 시즌2에 관해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영상 작업으로 각색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다. 원작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확장력을 갖기 위해 시즌2에선 어떻게 접근했나.

시즌1은 책이 지닌 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를 없애고 과거의 중심 주인공 선자(김민하)와 현재의 손자 솔로몬(진하)이 교차하는 구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점이 핵심이었다. 이번 시즌엔 솔로몬이 작가들의 주요 과제가 됐다. 왜냐하면 원작에선 초반이 세부적으로 묘사되고 선자가 중년에 이르면 전개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는 마치 삶이 주인공들을 쏜살같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파친코> 시즌2 역시 이를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소설보다는 속도감을 늦추려 했다. 훨씬 더 많은 디테일을 상상하는 작업이었다. 시즌1을 작업하다 막힐 때면 이삭(노상현)의 행방불명 후 시장에서 김치를 파는 선자의 모습으로 에피소드가 끝나는 것을 복기하곤 했는데, 시즌2의 실마리 역시 언제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할 때 가닥이 잡혔다. 사람들이 시즌2는 좀더 쉬울 거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각본 작업은 물론이고 프로덕션도 쉽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때문에 모자수의 집과 파친코, 회사 등을 제외하면 세트를 모두 새로 지었다.

- 선자가 상복을 입고 더 그래스 루츠의 <Wait a Million Years>에 맞춰 춤추는 시즌2의 오프닝 시퀀스 타이틀도 정서적으로 강력한 울림을 준다. 어떻게 나온 결과물인가.

이 장면은 놀랍게도 오프닝 시퀀스를 위해 따로 시간을 빼서 찍은 게 아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실제로 자신의 촬영 분량을 찍고 있을 때 잠깐 다른 스튜디오로 와 찍은 것이다. 특히 이삭의 죽음 후 상복을 입은 김민하 배우가 스튜디오에 등장해 즐겁게 춤을 출 때는 그 자체로 너무나 많은 정서적 레이어가 형성되어 강력한 오프닝이 나올 거라고 현장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배우가 작중 현실을 살다가 곧바로 뛰쳐나와 오프닝 시퀀스를 찍은 것이 오히려 훨씬 도움이 된 경우다.

- <파친코> 시리즈를 작업한 작가들의 방은 다양한 국적, 젠더, 인종의 멤버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즌2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하는 과정에서 주로 어떤 논의를 했나.

일단 우리의 진짜 마음을 쓰는 것이 중요했다. 작가들의 성스러운 방에서는 다양한 헤리티지와 가족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부터 교감을 출발한다. 개인적인 기억을 꺼내 서슴없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작가방, 그리고 현장의 모니터 옆에는 언제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휴지가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크루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협업 환경이 <파친코> 시리즈의 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또 극의 가장 중심 캐릭터인 선자의 선택과 방향성을 논의할 때 ‘슬라이딩도어’ 기술을 동원했다. ‘선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할 것’이라고 쉽게 단언하지 않고 ‘만약 선자가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하는 식으로 인생의 여러 가능성을 계속 던지고 답해보는 식이었다.

- 멜로드라마의 줄기 속에서 가족간 세대간의 갈등과 결합이 시즌2 서사의 주요 골자를 이룬다. 주제적으로 고려한 점이 있나.

이번 작업을 하면서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파친코> 시즌2의 멜로드라마성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관문으로 이해해주어 고맙다. 이번 시즌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 횃불을 건네는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자만큼이나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솔로몬이 중요하고 그들이 쇼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데 그것이 사랑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랐다.

-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일본 역사극 <쇼군>이 18개 부문 수상과 더불어 아시아 최초 여우주연상 수상자(<파친코>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한 안나 사와이)를 배출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사용한 <파친코>가 등장한 이후의 현상으로 읽자면, 확실히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자막을 전보다 덜 낯설게 받아들인다는 증거도 된다.

매우 고무적인 성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자막이 들어가는 시리즈물, TV 작업의 어려움을 업계 실무자들은 선명히 체감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의 장벽을 크게 무너뜨리긴 했지만 말이다. 다국어 스토리를 텔레비전에 적용하고, 국제적 출연진과 함께 작업하며, 촬영장에서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는 일에는 많은 조심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촬영된 <파친코> 시리즈는 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이 겪는 사랑과 상실의 복잡한 감정을 좇는다. 이때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적 메시지를 제작진이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그 토대를 탄탄히 세우는가 하는 점이다. 내게 <파친코>의 경험은 우리가 때로 수천 마일 떨어진 상태에서도 캐릭터와 이야기에 대해 원활히 논의할 수 있던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마다 이 이야기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정한 문화적 맥락과 그로부터 생겨난 언어적 복잡성이 스토레틸링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는지, 결과적으로 풍부한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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