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스타일리시하게 묶고 꼬은 장르의 매듭들, <롱레그스>
2024-10-30
글 : 유선아

1990년대 미국, FBI 특수요원 리 하커(마이카 먼로)는 첫 탐문 수사에서 초능력에 가까운 육감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를 눈여겨본 리의 상사 카터(블레어 언더우드)와 브라우닝은 리에게 ‘롱레그스’라는 서명을 남기는 연쇄살인마가 30년간 자행한 일가족 연쇄살인 사건을 배정하는데, 사건의 공통점이란 생일이 14일인 여자아이가 있는 가족이 희생자라는 것과 아버지가 가족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이다. 리는 오래된 사건 파일을 읽고 분석해 나가는 한편 롱레그스가 작성한 편지 속 암호 해독에 밤낮으로 매달린다. 마침내 리가 암호를 해독하고 연이은 살인사건에 숨겨진 법칙을 발견하게 되면서 조사에 진척을 보이고, 이어 카터와 리는 롱레그스가 과거에 일으킨 살인사건의 생존자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여전히 희생자를 물색 중인 롱레그스가 한발 앞서 남기고 간 흔적으로 인해 카터는 리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게 되고, 리는 카터가 단독범이라 믿는 롱레그스에게 공범이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세운다.

<롱레그스>는 배우 겸 각본가인 오스굿 퍼킨스 감독이 연출한 네 번째 호러 장편이다. 기숙학교와 집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전개되었던 전작 <페브러리>,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그레텔과 헨젤>처럼 <롱레그스> 또한 집은 아늑한 공간이 아니며 가족 역시 안전한 존재가 아닐 수 있음을 통해 공포를 안겨주었던 <더 헌팅>(1963)과 <샤이닝>(1980)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온갖 할리우드의 호러와 스릴러의 레퍼런스가 곳곳에 흩어져 읽힌다. FBI 요원이 살인마와 직접 대치하는 <양들의 침묵>과 <세븐>이나 범인이 남긴 암호를 해독하며 수사하는 <조디악>, 혹은 2000년대 이후 <유전> 등으로도 익숙한 사탄 숭배, 오컬트 장르 요소가 한편의 영화 안에서 부지런히 교차한다. 한 영화 안에 뭉쳐진 공포와 스릴러의 하위 장르 요소를 찾아내는 데에서 오락적 재미를 찾는다면 <롱레그스>는 이 영화에 남겨진 여러 영화의 흔적에 주의를 기울여볼 만하다.

<피그> <드림 시나리오>에서 연기 변신을 꾀했던 니컬러스 케이지의 또 한 차례의 변신 또한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 중 하나다. 소름 끼치는 말씨와 외양에서 어쩌다 예상치 못한 유머가 허술하게 비어져 나오는 듯한 순간이야말로 케이지가 분한 역할이 더욱 기괴해지는 때다. 주연배우인 마이카 먼로는 미제 사건을 수사하는 무뚝뚝하고 사교성이 모자란 특수요원 리를 감정의 고조를 극도로 제한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에 기이한 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흐트러진 시간감 역시 주목할 요소다. 영화의 현재는 9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정작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무드와 스타일은 70년대의 것으로, 과거로 재현되는 70년대는 그보다 더 이전의 시대인 듯 보이는 장면들로 시간감의 착란을 조성한다.

close-up

느릿한 템포의 다소 고전적인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면모에 당장 시선이 간다. 리는 외딴 오두막 같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가 늦은 밤 귀가한 이후의 장면은 공간과 화면의 구성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등 뒤에서 언제라도 누군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불안을 조장하는 프레임, 홀로 있는 집 어딘가에서 나무가 삐걱대는 작은 소음, 점차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닮은 미세한 사운드가 서서히 긴장감을 옥죄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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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감독 스탠리 큐브릭, 1980

겨울 동안 손님을 받지 않고 문을 닫은 호텔에서 한 가족이 지내기로 한다. <샤이닝>에서 어린 아들이 과거와 미래의 끔찍한 환영을 목격한다면 <롱레그스>에서는 아버지가 부재한 리가 과거의 기억을 잃은 현실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펼쳐진다. 리가 해결하려는 30년간의 미제 사건 속 아버지들은 모두 하나같이 <샤이닝>의 아버지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살인의 광증에 이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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