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스튜디오에 종종 붙는 수식어는,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에 어울리지 않게도) ‘변태’다. 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디테일에 변태처럼 집착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과학 자문을 담당한 어류 생체역학자 애덤 서미스는 제작진에 어류의 이동 방식을 포함해 대학원급 강연을 했다. 제작진은 실제 생물학에 기반한 빛의 질감을 연출하기 위해 물고기 비늘의 광학적 성질이 어떤 색깔로 나타나는지 학습하기 위해 실제 물고기를 해부하며 생물학을 공부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과학적 오류를 이유로 이미 작업 중이던 영상을 꽤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수정한 것이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산호초 지대에 차가운 물에서만 자라는 켈프라는 해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라따뚜이>는 생쥐가 요리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비과학적인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디테일은 집요하다. 레미가 주방에서 겪는 어드벤처(?)를 실감나게 묘사하게 위해 실제 생쥐가 냄비 물에 빠졌을 때 기포가 어떤 양상으로 생기는지 일일이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영화를 만들어갔다.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이 연출한 <엘리멘탈>은 제목부터 ‘원소’(화학적 방법으로 더 간단한 순물질로 분리할 수 없는 물질), 즉 화학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만물은 물, 불, 공기, 흙 등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에서 착안한 아이디어가 <엘리멘탈>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탈시티.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불 원소 앰버(리아 루이스)는 “원소끼리 섞이면 안된다”며 그가 거주하는 파이어타운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특히 불에 물이 튀면 손님들에게 변상해야 하기 때문에 물은 각별히 더 감시해야 할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강 반대쪽에서 누수를 점검하던 시청 조사관 웨이드(마무두 아티)가 앰버의 공간으로 빨려들어온다. 그는 가게를 폐업시킬 수 있는 위반 사항들을 열거하며 앰버를 초조하게 만드는데, 심지어 웨이드는 앰버와 그의 가족이 그토록 경계하던 물의 원소다. 앰버는 가게 폐업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 다양한 원소를 만나게 된다. <엘리멘탈>은 미국 내 이민자들의 차별과 갈등 그리고 화합의 가능성을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로 풀어내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엘리멘탈>은 그간의 픽사 스튜디오 영화처럼 내적인 완결성을 가진 세계로 만들어졌다. “<엘리멘탈>은 이민자 가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원소 주기율표는 다양한 가족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를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공존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 원소는 가장 완벽한 비유였다.”(<씨네21>의 피터 손 감독 인터뷰) 실제 세계를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고전적인 물질(물, 불, 공기, 흙)에 빗대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실제 과학 법칙을 따랐다. 애니메이션 및 효과팀과 함께 각 원소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과 다른 원소와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며 엘리멘탈시티의 비주얼을 만들어나갔다.
불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연료, 산소, 연소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다. 불이 물과 만나면 둘 다 사라질 수 있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고 이로 인해 주변의 열을 흡수하면서 온도를 낮춘다. 일부 산소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게 불이 꺼진다. 앰버의 가족이 물을 조심해야 한다고 그토록 일렀던 이유다. 하지만 앰버와 웨이드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서로를 만지자 ‘수증기’가 물과 불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액체가 그 액체의 끓는점보다 훨씬 더 뜨거운 부분과 접촉할 경우 빠르게 액체가 끓으면서 수증기로 이루어진 단열층이 만들어진다. 어떻게 가능할까? 액체는 분자간의 거리가 가까워 열전도율이 높은 반면 기체는 분자간의 거리가 멀어 열전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때문에 단열층은 액체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기체층은 뜨거운 물체의 표면을 코팅하듯 덮고 남은 액체를 들어올리듯 표면과 분리해낸다. 이를 ‘라이덴프로스트 효과’ (Leidenfrost Effect)라고 한다. 프라이팬에 물을 뿌렸을 때 바로 기화되지 않고 한동안 팬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같은 원리다. 불의 색깔을 통해 표면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앰버는 빨간색(600~800도) 혹은 노란색(1100도)을 띤다. (앰버가 화가 나면 파란색을 띠는데, 이때의 온도는 1400~1600도다.) 웨이드, 즉 물의 끓는점인 100도를 훨씬 넘기 때문에 리이덴프로스트 효과가 나타나기에 충분하다.
앰버가 여러 광물을 빠르게 밟아나가며, 웨이드가 물 위를 가로지르며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초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이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속원소나 금속원소가 포함된 물질에 불을 붙이면 금속원소의 종류에 따라 특정한 반응 색깔이 나온다. 리튬은 빨간색, 나트륨은 노란색, 칼륨은 보라색…. 형형색색의 빛깔을 수놓는 불꽃놀이 역시 금속의 불꽃 반응을 이용한다. 무지개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빛은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다르다. 물방울이 프리즘의 역할을 해서 가시광선을 분산시키고 굴절시킨다. 빛이 파장별로 굴절되면서 각기 다른 스펙트럼의 색을 내놓는다. 앰버가 모래에 열을 가해 유리를 만드는 장면은 실제로는 불순물이 섞여 있어 그대로 재현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모래의 주성분은 이산화규소 혹은 실리카( SiO2)인데, 이를 빠르게 녹이고 냉각하면 유리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웨이드의 몸은 빛을 모으는 볼록렌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웨이드는 앰버의 불빛을 자신의 몸에 투영해 나뭇가지를 태운다. (피터 손 감독에게는 역시 초등학교 과학 시간 돋보기로 오만가지를 다 태워보던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46억년 전 원시지구가 탄생하고, 인류가 찾아낸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흔적은 37억년 전 단세포 광합성 미생물의 화석에 남아 있다. 지금 지구는 서로 다른 원소가 충돌하고 결합하며 만들어진 결과다. 다름을 경계하는 대신 포용해야 한다는 지극히 이상적인 메시지는, 결국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거가 다름의 충돌에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화학 원리로부터 추동돼 <엘리멘탈>의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로 전달된다. 굳이 비용을 들여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디테일을 잡아내는 집요함은 이런 순간을 위해 필요하다. ‘변태’ 같다는 말로 압축하기에는, 픽사 스튜디오의 오랜 집착에는 명백한 미학적 근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