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완호 촬영감독이 남극에서 생애 처음 고래를 목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수중촬영 전문가 김동식 감독이었다. 헬기로 300km를 날아 통신이 잡히는 장보고 기지로 돌아온 그는 메시지를 남긴다. ‘형, 우리 고래 다큐 하나 해봅시다.’ 이 찰나의 순간은 두 사람을 7년의 파트너십으로 이끌었고 그렇게 한국 자연다큐멘터리의 새 역사가 쓰였다. SBS 창사특집 4부작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는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후보로 경쟁한 끝에 예술상을, 제51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극장판 개봉(10월30일)을 앞두고 더할 나위 없는 예열을 마쳤다. 작품의 키 스태프일 뿐만 아니라 모험의 주체이며 발언의 당사자이기도 한 임완호, 김동식 촬영감독이 <씨네21>를 찾아 꿈과 낭만, 경외로 가득했던 삶의 한 단면으로서의 영화 <극장판 고래와 나>를 소개한다.
- 통가에서 혹등고래를 만나는 순간, 7년간 육상과 공중 촬영을 맡아온 임 감독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놓고 잠수한다. “고래를 화면으로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 큰 차이가 있었다”는 코멘트를 듣고서 촬영감독의 목표는 기술과 예술로서 그 격차를 최대한 좁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임완호 스쿠버 장비 없이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그대로 뛰어들면 나 역시 수중 전문가가 아님이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관객과의 경험 차를 좁히고 싶었다. 실제로 내게 맞는 슈트가 없기도 했고. (웃음) 촬영뿐만 아니라 음향에서도 현장감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울음소리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혹등고래의 합창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이걸 들으면 미쳐버릴 정도랄까. 오디오를 통해 듣는 것은 실제와의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김동식 고래는 해녀들처럼 숨을 참고 찍어야 한다. 단 한번도 장비를 멘 적 없다는 점이 이번 촬영의 진실성을 보장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자연다큐멘터리에 8K RED 카메라를 쓰는 감독은 우리 둘뿐이다. 이 카메라의 지향점은 8비트의 방송보다는 16비트의 영화에 있는데, 색 정보 등 훨씬 많은 정보와 거대한 해상도를 담아낼 수 있다는 물리적인 특징이 있다. 우리가 찍어온 고래 영상을 10년, 20년 뒤에 사용하더라도 가장 최신의 퀄리티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 조명의 사용도 궁금하다. 해수면의 경계에서 활동하며 잠수하기도, 솟구치기도 하는 고래의 모습을 빛과 함께 아름답게 포착했는데.
김동식 고래를 촬영할 때는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빛의 반사를 받게 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임완호 수중촬영은 100% 자연광의 결과다. 구름이 껴 물속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날엔 고래 특유의 단일한 색상과 윤곽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날그날 공기의 질이 촬영 결과물의 성패를 결정하는 이유다.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남태평양의 통가와 아프리카의 모리셔스는 그래서 최적의 장소였다. 습도가 낮고 먼지가 없어야 한다는 영상 촬영의 제1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혹등고래 무리의 히트 런(heat run) 장면, 향고래 한쌍의 키스 장면 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 영화는 인간종의 눈과 고래의 눈을 교차편집해 보여주며 ‘고래와 나’라는 컨셉과 주제를 전달한다. 특히 향고래의 부드럽고 선한 눈을 어떻게 찍을 수 있었나.
김동식 고래의 눈이 아주 작아 렌즈에 담기 쉽지 않았다. 스노클링 관광객은 고래에 다가갈 수 있는 거리가 30m로 제한되는데 허가를 받은 촬영팀엔 제한이 없다. 처음에는 105mm 렌즈를 써 당겨보려 했지만 고래가 계속 움직여 포착하기가 어려웠다. 물에서는 사물이 25% 크고 가깝게 보인다는 사실도 계산해야 한다. 결국 고래의 3m 옆까지 가서 50mm 렌즈를 써서 촬영했다. 더 가까이 가서 줌을 쓰지 않는 대신 와이드렌즈로 찍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고래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 합창, 낮잠, 훈육 등 고래마다 행동 특성을 파악해 설계한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행동일수록, 세계 최초에 가까운 기록일수록 우선순위에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과 달라 통제가 불가능하며 누구도 시나리오를 따라주지 않는다.
임완호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래와 인간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딱 두 장면이 필요했다. “세계 최초로 혹등고래가 새끼 낳는 장면을 찍읍시다. 그리고 새끼가 젖 먹는 장면까지 찍읍시다.” 이중 절반만 성공했다. 태어난 지 3~4일 정도 된 새끼를 찍을 수 있었지만 그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을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놓친 것이다. 고래가 뒹굴고 춤추고 하는 것을 누가 시키겠나. 우리가 그걸 찾아 나서야 하고 그 순간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김동식 잠수하다가 애들의 잠을 깨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깨는 순간 멀리 달아나버려 속이 상했다. 이젠 나이가 있어서(만 60살) 프리다이버들처럼 깊이 못 내려가니 내 능력 한도 내에서 어떻게 빨리 찍고 더 가까이 가서 새로운 앵글로 찍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 아직 찍지 못한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나.임완호 우리 둘의 고래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고래의 일생 전체를 포착하는 것이 꿈이다. 고래 한 마리의 일생을 따라가는 건 누구도 불가능하겠지만 혹등고래면 혹등고래, 귀신고래면 귀신고래처럼 종류별 일생을 포착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이번엔 실패한 혹등고래가 새끼 낳는 걸 꼭 찍어야 한다(웃음). 혹등고래만큼은 방대한 영상을 이미 모아놓았다.
김동식 혹등고래가 새끼 낳는 장면,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왕고래가 지나가는 장면을 아직 찍지 못해 엄청난 타박을 듣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