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현상으로의 사진, 예술가의 초상,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 전시 마친 사진가 김용호
2024-11-15
글 : 남선우
사진 : 오계옥

사진가 김용호의 말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일찍이 알베르 카뮈가 남긴 명구에 끄덕이게 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것에 대해 가벼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김용호가 사진에 대해 말할 때도 그렇다. 그가 친근한 부산 사투리를 써서만은 아니다. 그는 40년간 패션지와 경제지를 넘나들었다. 1932년생 백남준 선생부터 1994년생 피아니스트 조성진까지 뷰파인더에 붙잡을 수 있는 경력의 소유자가 됐다. 어쩌면 한국영화 팬들에게 그는 ‘<여배우들>의 그 포토그래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용호가 신경 쓰는 것은 그런 사실들이 아니다. 2년 전 그간의 작업을 돌아본 544쪽의 대작 <포토 랭귀지>를 펴내면서도 늘 새롭고 싶다고 썼듯, 그는 항상 다음을 생각한다.

청년의 표정을 한 이 거장은 10월 마지막 주를 전시회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로 보냈다. ‘구찌 문화의 달’을 맞아 치러진 이 행사는 김용호가 찍은 개념 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리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초상으로 채워졌다. 이태원의 파운드리 서울에서 전시를 마치고 구찌 청담 프래그십 스토어 내부로 자리를 옮긴 작품들을 확인하고 돌아온 그에게 대화를 청했다. 김용호의 사무실에 놓인 빨간 테이블에 앉아 그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는 동안, 에메랄드빛 깃털을 가진 앵무새도 경쾌하게 지저귀었다.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

- 지난 10월22일부터 29일까지 구찌 문화의 달을 맞아 전시회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를 열었다. 평일 오후에도 화랑이 북적이더라.

그동안 내 전시에는 주로 전문가들이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일반 관람객이 많았다는 게 무척 기쁘다. 원래 사진전이라는 게 대중적이지 않은 데다 인물전이라 이런 반응이 있을지 몰랐다.

- SNS에도 전시 후기가 많이 보였다.

오늘도 구찌 마케팅 담당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이정재 배우를 휠체어에 태우고 걸으며 <백남준 휠체어 레벨 아이>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 어느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124만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깜짝 놀랐다. 이정재 배우는 그가 20대일 때부터 내가 사진을 찍으며 인연을 맺은 사이이기도 하다. 원래 예술적 감각이 좋은 친구인데 이번에도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휠체어에 앉아보지 않겠느냐는 내 제안에 동참해줬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멋진 퍼포먼스가 되었다.

- <백남준 휠체어 레벨 아이>가 붙은 벽면을 향해 휠체어가 놓여 있는 것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관람객들도 ‘휠체어 레벨 아이’에서 사진을 보게 하고 싶었나.

그렇다. 그 또한 전시의 일부인 셈이다. 내가 백남준 선생의 어시스트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백남준의 눈높이에서 뉴욕을 기록한 것인데, 사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일은 꽤 고통스럽다. 반들반들한 병원 바닥에서야 편안하겠지만 뉴욕 거리에서는 휠체어가 엄청나게 흔들려서 머리가 아프다. 그럼에도 백남준 선생은 말년에도 매일 출퇴근하며 작품을 남긴 것이다.

찍힐 준비된 얼굴이란

<사유>
<도망치는 미친 년>

- 이번 전시에는 네 사람(김수자, 박찬욱, 안은미, 조성진)과 백남준이 중심에 있다. 그런데 왜 ‘두 개의 이야기’(Dual Narratives)인가.

한 사람의 이야기와 한국 문화 이야기를 나란히 두고 보겠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인물 사진만 전시하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심심할 것 같았다.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해보고 싶어 한국적 배경이 담긴 소재들과 모델을 결합했다. 무엇보다 구찌가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으로 전시를 기획했다는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명품’이 문화적 우월감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불편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존중을 표함으로써 대중에게 다가가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의 의미를 더욱 크게 느낀다.

- 둘 이상의 사진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딥틱(diptych) 기법으로 김수자와 연잎, 박찬욱과 용두, 안은미와 매화, 조성진과 바위를 매치했다. 이 연상법에 대한 피사체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좋아해줬다. 안은미씨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고 따로 언급해줬더라. 박찬욱 감독과 붙인 용 사진은 올해 신년 인사장을 만들기 위해 찍은 이미지들 중 하나였다. 말수 없고 점잖은 박찬욱 감독이지만 영화는 다르지 않나. 언젠가 스티븐 킹이 “수줍음은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그가 동의한 적은 없지만 박찬욱 감독에게서도 그런 기운이 느껴져 용과 나란히 둬봤다.

-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간의 거리감을 의식하며 사진을 봤다. 전신을 담아야 했던 김수자에게서는 멀어지면서, 악기와 어우러진 풍경을 위해 조성진에게는 다가가면서 찍은 듯했다. 그들에게 어떤 요구를 했나.

광고사진은 정해진 컨셉이 있기에 그걸 설명하고 연기를 유도하지만 인물 사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본인을 표현해달라” 정도다. 예전부터 작업한 분들이고,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있지만 촬영을 위해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경지에 오른 분들은 모델이 아님에도 이미 준비가 다 돼 있다. 본인이 카메라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내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

- 사진 찍힐 준비가 된 얼굴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가 춤추는 사람이건 글 쓰는 사람이건 그림 그리는 사람이건 내가 찍은 사진에서는 아무 정보 없이 얼굴만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만으로 그 사람의 정신, 철학, 삶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으면 최고 아닌가. 그들은 성장하면서 소위 ‘자기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얼굴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 무용가 안은미의 일곱 가지 얼굴을 모은 <희노애락애오욕>도 별도의 연출 없이 나왔나.

내가 주제를 설명했더니 안은미씨가 카메라 앞에서 계속해서 표정 변화를 줬다. 지금 어떤 감정을 찍겠다고 정해두지 않은 채 무작위로 찍었고, 나름대로 그 감정에 맞는 사진을 골라 전시했다. 안은미씨가 순수하게 본인의 얼굴 하나만으로 모든 걸 설명해냈다.

- 박찬욱 감독이 <동조자>를 준비하며 쓴 붉은 수첩을 한장 한장 찍어 이어 붙인 <아니그마>도 오래 들여다봤다. 감독이 순순히 수첩을 내줬나.

실은 박찬욱 감독 인물 사진 외에도 그의 영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보려 했는데 패셔너블한 이미지보다는 인물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계획을 물렀다. 그래도 쉬운 방법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는데, 헬무트 뉴턴 재단의 사진 박물관에서 본 엄청난 아카이브가 떠올랐다. 여권 같은 작은 기록들까지 모아뒀더라. 박찬욱 감독도 세계적인 감독인데, 영화제 출입증이라든지 초대장처럼 본인만 기념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런 쪽으로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수십점의 오브제 중 지포 라이터, 쇼스타코비치 앨범, 책 <아우스터리츠>를 찍었다. 노트도 원래는 커버만 찍으려 했다. 그런데 펼쳐보니 무슨 소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잔뜩 있더라. 그게 <동조자>에 관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저 페이지마다 내가 모르는 굉장한 이야기가 있겠구나, 이게 박찬욱 감독만의 암호겠구나 생각하며 한장씩 찍었다. 개인적으로 그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든다. 스트레이트한 인물 사진도 즐겨 찍지만 대상을 재해석해 내 식대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니그마>는 단순하지만 박찬욱이라는 사람을 잘 설명하는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아니그마>에서 10년 전 김용호 작가가 수백권을 주문 제작해 썼다는 빨간 다이어리와의 연결고리가 엿보이기도 했다.

해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넣은 다이어리를 제작해 주변에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핸드폰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동시에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수첩을 여러 권 썼는데 지금은 그냥 핸드폰에 메모한다. 여전히 손으로 쓰는 스케줄표가 있기는 하다.

- 20년 전 <한국문화예술명인전>에서 박서보 화백, 김남조 시인, 정일성 촬영감독을 비롯한 28인의 초상을 공개했고, 2년 전 이어령 선생의 황혼을 포착한 전시 <목전심후: 모던보이와 함께한 오후들>도 호응을 얻었다. 당신에게 피사체로서 예술가들은 어떤 존재인가.

명인전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길을 내준 선배 예술인을 기록하자는 취지였다. 더 긴 이야기는 이어령 선생을 찍은 경험을 빌려 답하고 싶다. 선생은 처음에 사진을 찍겠다는 내게 “사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카메라가 있다, 자동차가 있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자기 얼굴이 찍힌 사진이 이미 많기 때문에 더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이었고, 그에게 누가 사진을 찍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가 사진을 예술로서 바라보지 않는 듯해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위한 구술 마지막 날 내가 찍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이 사진에서 내가 보인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선생은 그제야 사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한 게 아닐까. 사진가로서 가슴 뛰는 찬사였다.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선생이 조금만 더 일찍 사진을 이해했다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사진학과가 생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내 사진이 대상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하길 바란다. 그게 사진의 역할이기도 하고.

낯선 작업을 기다리며

<비룡승운>
<빛나는 청춘>

- 지난해에는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라는 18분가량의 단편영화를 선보였다.

AI를 이용한 영상 제작 기법을 만든 회사 펄스나인이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아 스테판 모의 연작소설 <서울 마을들>을 원작으로 한 네편의 단편을 찍는 프로젝트를 했다. 스테판과 아는 사이인 내가 참여하게 됐고, 맘에 드는 단편을 골라 작업을 시작했다.

- 4585장의 사진과 짧은 영상을 엮어 영화를 완성했다.

제목은 라틴어로 ‘서울 벌레들에 대하여’라는 뜻인데 너무나 좋아하는 크리스 마커 감독의 영화 <환송대> 영향을 받아 스틸 무비 형식으로 만들었다. 원작이 귀신 설화에 가까운 데다 서울 골목의 잊힌 존재들을 비춘다. 글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내 식대로 편집해 이미지를 추출해봤다. 얼마 전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각색한 영화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쓴 칼럼을 재밌게 읽었는데,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본 사람으로서 공감했다.

- 광고사진이나 개인 작업에 반복된 동물 탈 모티프가 영화에도 등장하더라. 호랑이 탈을 쓴 남자가 주인공이고, 토끼 탈을 쓴 소녀도 나온다.

어설프게 연기해서 전달력을 떨어뜨릴 바에야 설명이 부족해 보이더라도 미스터리를 살리고 싶었다. 일본의 노(能)나 중국의 경극처럼. 그리고 호랑이와 토끼는 나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내년은 뱀의 해인데, 앞으로도 십이지신을 등장시키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 하염없이 돌아다니다가 널브러지기도 하는 그들에게서 도시 생활의 피로감이 비쳤다. 중반부 굿판에서 해방감이 전해지기도 했으나 마무리는 쓸쓸하더라.

장자의 호접지몽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굿판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느껴지길 바랐다. 이 영화가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 <죽음의 섬>에서 시작해 그 그림으로 다시 끝나지 않나.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 저서 <포토 랭귀지>에 은퇴 후 말년을 유유히 즐기는 한가로운 작가로 살지는 않으리라고 적었다. 이 다짐은 유효한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초대 회장이 “싱귤러리티(특이점)가 온다”라며 은퇴를 번복했었다. 나 또한 AI와 더불어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미래가 궁금하다. 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남들에게 달려 있을 뿐 활동은 꾸준히 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게 무한한 지금, 해보지 않은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에도 도전하면서.

김용호가 사랑한 영화·시리즈

리플리: 더 시리즈

<리플리: 더 시리즈>(2024)

“흑백영화를 좋아하는 나를 최근에 감동시킨작품은 넷플릭스의 <리플리: 더 시리즈>다.옛날 사진 보는 느낌을 주는 정교한 매력과 긴장감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멈추지 않고감상했다.”

<욕망>(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그중에서도 <욕망>을 꼽고 싶다. 우연히 살인 현장을찍은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언젠가 그런 작품을 찍어보고 싶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들

“한국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와<파이란>(2001)이 떠오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고, <파이란>은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아직도 그 시절한국영화를 좋아한다.”

사진제공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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